민간 의료기관 '출생신고 의무제' 유감

민간 의료기관 '출생신고 의무제' 유감

  • 김강현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KMA POLICY 특별위원회 위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5.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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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병원 분만 대신 위험한 분만 조장…산모·신생아 건강 '위협'
비밀출산·태아 '알 권리 보호' 함께 논의…일본 '내밀출산제' 살펴봐야

김강현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KMA POLICY 특별위원회 위원) ⓒ의협신문
김강현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KMA POLICY 특별위원회 위원) ⓒ의협신문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4월 17일에 출생신고를 부모가 아닌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토록 의무화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의료기관의 장이 아동의 출생 후 14일 내에 출생자의 모의 성명 및 주민등록번호, 출생자의 성별, 수 출생연월일시 등을 시·읍·면의 장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한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아동보호를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의료기관에 떠넘기는 것이 기막히고 국가의 능력이 의심스럽다"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모두 보고하게 되어있기에 산모의 개인정보를 토대로 일정 시기 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각 지자체에서 신고 의무자에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계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실수로 신고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에 관한 책임 역시 민간의료기관이 짊어지게 되는 불합리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서 "일부 사례에서는 출산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의료기관에 출생 신고 의무를 부과하면 병원에서의 분만을 피하게 만들어,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22조(과태료)는 '신고의 의무가 있는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간 내에 하여야 할 신고 또는 신청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당사자인 부모가 출생 후 1개월 내에 신고하지 않아도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는데, 하물며 제3자인 의사 등에게 신고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법리상 맞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일본도 부모가 출생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친족 등의 동거인, 출산  시 의사·조산사, 부모 이외 법정 대리인 등의 순서로 기재와 신고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며, 의무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출생증명서(왼쪽)와 출생신고서 서류를 각각 작성해야 한다. ⓒ의협신문
우리나라는 출생증명서(왼쪽)와 출생신고서 서류를 각각 작성해야 한다. ⓒ의협신문

우리나라는 출생증명서(자료1)와 출생신고서(자료2)를 별도 양식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일본은 출생계(出生屆)와 출생증명서(出生證明書)가 한 장의 양식(자료3)이다. 의사 등이 관련 내용을 기입하여 부모 등에게 제공하면, 나머지 내용을 기재하여 관계기관에 제출하면 된다. 따라서 출생신고서를 제출할 때 출생증명에 따른 오류나 위·변조 우려가 없다. 

일본의 출생계와 출생증명서. 의사 등이 출생증명에 관한 내용을 기입하여 부모에게 제공하면 나머지 내용을 기재해 관계기관에 제출하면 된다. 한 장의 서류에 출생에 관한 내용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의협신문
일본의 출생계와 출생증명서. 의사 등이 출생증명에 관한 내용을 기입하여 부모에게 제공하면 나머지 내용을 기재해 관계기관에 제출하면 된다. 한 장의 서류에 출생에 관한 내용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의협신문

출생신고를 부모가 고의로 피하는 것은 출산 자체를 숨기고 싶어할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도외시한 채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하면 안전한 병원 분만 대신 위험한 분만을 조장해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산모와 출생아를 위험에 빠지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출생신고 의무를 의사 등에게 무리하게 부과하기보다는 비밀리에 분만하려는 임산부의 불가피한 사정을 해결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이렇게 출생한 태아가 출생 이력을 알 수 있도록 '알 권리 보호' 대책도 논의해야 한다.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안 시행으로 입양 시 출생신고 의무화와 가정법원 허가제(입양허가제) 도입 이후 우려했던 대로 영아 유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비밀출산제와 익명출산제 도입 등을 지속해서 논의하고 있다. 

2022년 7월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재판은 '베이비 박스'에 영아를 유기한 혐의로 산모를 기소한 사건에서 베이비 박스 운영시설 담당자와 상담을 거쳤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비밀출산제(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베이비 박스와 관련해 논의되고 있는 주된 쟁점은 과연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할 일을 다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이번 판결은 친생부모의 책임을 묻는 판결일뿐 별개로 봐야 한다"면서 "비밀출산제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도 아동에게서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이기 때문에 해당 판결과는 결이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익명(匿名)으로 아이를 포기할 수 있는 공적 구조(公的 構造)가 아직 성립되지 않은 상황이며, 베이비 박스 제도는 여성의 익명성을 보호하는 측면은 있으나, 자신의 출생에 대한 아이의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일단 아이를 넘기면 되찾아 올 수 없어 친자 간 영구적 단절이나 안이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본이 2019년 3월 발표한 '임신(妊娠)을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여성에 대한 해외(海外)의 법·제도에 관한 조사연구 보고서'에서는 모두 임신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여성에 의한 자녀 포기가 큰 사회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사대상 5개 국가의 대응책은 문화·전통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유기·영아살해 방지'나 '태아 생명 보호'에, 독일과 프랑스는 '위기 상황에서 여성 구제'에, 영국은 '위기상황에서 여성 구제와 여성 양육태도에 관한 위험 해소'에, 한국은 '미혼 여성 구제'에 관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청소년 연구소 보고서(2011)에서는 익명에 의한 아동위탁제도가 영아 살해나 신생아 유기의 방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독일 보고서에서는 익명에 의한 아동 위탁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지원 제도를 확충하고, 관계 기관과의 연계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울러 내밀출산제도(內密出産制度)를 통해 여성에 대한 사전·사후 상담과 자녀의 출생 여부에 관한 알 권리를 중시하고 있다. 또 여성의 본명을 포함한 신상정보를 기록해 여성 익명성 보호는 일정 정도 제약을 받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익명 출산(匿名 出産)에서는 사전 상담이나 자녀가 출생을 알 권리를 보장하는 구조가 있지만, 여성이 공적 증서상의 신분정보를 제시할 의무가 없고, 또 자녀가 엄봉(嚴封)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동의가 필요한 등 독일과 비교하면 여성의 익명성 보호 정도가 강하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익명으로 자녀를 포기할 수 있는 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어떤 법 제도가 여성의 권리를 진정한 의미로 보호하는지, 어떻게 자녀의 알 권리와 조정해야 하는지에 관해 아직 논의 중이다.

또한 일본 호적법 49조(출생으로부터 14일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한다)가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약 1만 명의 무호적자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혼 후에 새로운 파트너와의 아이가 태어난 경우로, 일본 민법 772조의 2항(법적 이혼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전 남편의 자식으로 추정된다)에 의거하여, 새로운 파트너와의 아이임에도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전 남편에게 절차를 받는 것은 저항이 있는 경우가 많아, 출생 신고를 내지 않고, 무호적이 되어 버리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즉 법률이 무호적자(無戶籍者)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격이다.

우리나라 민법 제844조(남편의 친생자의 추정)(③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도 같은 취지여서 같은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이처럼 임신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여성 중에는 이를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병원의 진찰을 받지 않고 모자의 생명에 위험한 고립(孤立) 출산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 자혜병원은 2019년 12월에 도입한 '내밀출산'으로 병원에만 신원정보를 밝히고, 병원은 이 정보를 보관하여, 아이가 장래 자기의 출생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생통보제 ⓒ의협신문
국민권익위원회는 출생통보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의협신문

일본은 2022년 9월 30일 법무성과 후생노동성이 도도부현·지정 도시를 포함한 각 기관에 대하여 '임부(妊婦)가 그 신원정보를 의료기관의 일부 사람에게만 밝히고 출산했을 때의 취급에 대해서'라고 하는 이른바 '내밀출산 가이드라인(지침)'을 통보했다.

'내밀출산 가이드라인'
□ 임부가 신원정보를 의료기관의 일부 사람에게만 밝힌 출산을 '내밀출산'으로 정의한다.
□ 신원정보는 의료기관 내에서 적절히 관리한다.
□ 신원정보를 자녀에게 공개하는 경우 임부의 동의를 얻는다.
□ 신원정보는 오랫동안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시구정촌(市區町村)이 직권으로 아동의 호적을 작성할 수 있다.
□ 의료기관은 임부에게 신원을 밝힌 후 출산하도록 설득한다.
□ 내밀출산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익명으로 출산을 인정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으로 갈등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정중한 상담을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17년 평가보고서를 통해 임신상담시스템 확충으로 내밀출산제도가 정착되고, 다른 익명의 자녀 위탁 이용건수를 줄이는 데 이바지했다고 보고 했다. 하지만 영아 살해나 신생아 유기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으며, 부모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 출생증명서를 작성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익명 출산과 출생 등록을 '익명 출산'이라고 한다. 익명 출산 여성은 2개월 이내에 아이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03년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가 자녀의 출생을 알 권리를 보장하는 유럽인권조약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아동권리에 관한 조약위원회의 권고 등에 있듯이 아동의 출생에 관한 알 권리를 충분히 준수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처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익명출산 문제로 다양한 고민과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행정편의를 위해 분만에 관여한 의사 등 즉 개인에게 공적 사무처리 의무를 부과하는 법 제정만 생각하기보다는 외국의 사례를 연구해 불가피한 사정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을 보호하면서 아울러 신생아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 제정만 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 양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현명한 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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