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파티마병원·경북대병원, 시정명령·보조금 중단·과징금 부과
영남대병원·삼일병원·나사렛종합병원·바로본병원 무혐의 처분
醫 "정부 실패 의료기관 전가한 상투적 대응...근본 대책 마련해야"
대구 청소년 사망사건과 관련해, 대구파티마병원 등 지역 응급의료기관 4곳이 시정명령과 보조금 지급 중단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됐다.
의료계는 "정부의 실패를 의료기관에 전가한 상투적 징벌적 대응"이라고 비판하면서,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대구광역시에서 발생한 응급환자 사망사건 조사 및 전문가 회의 결과를 토대로, 관련 8개 의료기관 중 대구파티마병원·경북대병원·계명대동산병원·대구가톨릭대병원 등 4개 응급의료기관에 대해 응급의료법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을 실시한다고 4일 밝혔다.
환자가 최초 내원했던 대구파티마병원은 응급의료법에 따른 중증도 분류 의무 위반, 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거부 등의 사유로 시정명령 및 보조금 지급 중단,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게됐다.
119 구급대원과 함께 환자가 응급실 입구 인근으로 진입했으나 당시 근무 중이었던 의사가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지 않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한 진료 등이 필요해 보인다는 이유로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것을 권유한 것 또한 정당한 사유없이 응급의료를 기피할 수 없도록 한 응급의료법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대구파티마병원에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재발방지대책 수립, 응급실 전문의 책임 강화방안 수립 등을 골자로 하는 시정명령을 내리고, 처분일로부터 6개월 이내 이를 이행토록 요구했다. 아울러 그 이행기간 동안 응급의료기관 평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며, 응급의료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 부과처분도 함께 내렸다.
환자가 두번째 내원한 경북대병원 또한 같은 사유로 동일 처분을 받게 됐다.
조사단은 환자 내원 당시 응급실 근무 중이던 의사가 중증외상을 의심하면서도 중증도 분류를 시행하지 않았고, 가용병상이 있었으며, 진료 중이던 다른 환자들 중 상당수가 경증이었는데도 환자를 받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봤다.
계명대동산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정당한 사유 없는 응급환자 수용거부로 시정명령과 함께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받게 됐다.
사건 당시 계명대동산병원은 외상환자 수술이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신경외과 의료진 부재를 이유로 환자를 수용치 못했다고 밝혔는데, 조사단은 이를 정당한 응급환자 거부 또는 기피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 병원 외 환자 수용 요구를 받았던 영남대병원, 삼일병원, 나사렛종합병원, 바로본병원 등은 조사를 통해 확인된 정황상 법령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행정처분 대상에서 제외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의 대응 과정에서 대구 지역의 다양한 응급의료 주체 간 연계·협력이 매끄럽게 작동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지방자치법에 따라 대구광역시에도 제도개선을 권고하기로 했다.
제도 개선 내용은 ▲지역 응급의료 자원조사 실시 후, 결과를 반영한 이송지침 마련 ▲이송체계 정비를 위한 지자체·119 구급대·응급의료기관 간 협의체 구성 및 이송 지연 사례에 대한 정기적 회의 운영 ▲응급의료정책 추진 지원을 위한 응급의료 전담인력 확충, 지자체·소방·의료기관 협의체 확대 운영 등이다.
아울러 사건 이후 발표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23∼2027)'에 따라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기본계획의 주요 과제들을 조속히 이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그간 의료계는 지속해서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무너지는 응급의료체계와 필수의료를 정상화해 달라고 정부·국회·보험자단체에 요구해 왔지만 외면해 왔다"면서 "이번 대구 청소년 사망 사건은 지원과 회생 대책을 외면해서 비롯된 정부의 실패를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 전가하는 상투적인 징벌적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가 응급의료와 필수의료를 지원하지 않고,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땜질하면 필수의료와 응급의료 분야의 지원율 하락 사태와 숙련된 기존 인력의 이탈을 유발하는 나쁜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며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라는 식의 미봉책에 절망한다"고 밝혔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의료진이 격무와 의료사고 처벌 위험에서 벗어나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 특례법 제정 ▲전공의 및 전문의를 포함한 필수의료 분야 인력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강화 ▲필수의료 인력 근무환경 개선 ▲전폭적인 재정 투입을 통한 필수의료 수가 인상 및 공공정책수가 확대 등의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원 연세의대 교수(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는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119구급대, 응급의료기관 등 응급의료체계 각 단계별 응급의료종사자의 인식 개선과 역량 확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효과가 의심스러운 행정처분보다는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필수의료와 응급의료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이 현장에서 속도감있게 집행되기를 기대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