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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예방접종 덤핑'과 '전문가평가제'
'예방접종 덤핑'과 '전문가평가제'
  •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5.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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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위반, 전문직 단체 '자율규제' 해결 더 효과적
의협 '전문가평가제도' 더 능동적으로 활용·발전시킬 책임 있어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의사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은 정의하기 어렵다. 편의상 개인적 차원과 단체적 차원의 복층구조로 설명한다. 개인 차원의 전문직업성은 정직·근면·환자우선·인간존중·책무성·소통 등 가치와 의무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일반 도덕적 교육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유교적 덕목을 중요시하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의과대학 입학 전 초·중등 교육과 가정교육을 통해서도 이미 노출됐던 내용이다. 그러나 단체적 차원의 전문직업성은 우리 문화에 없던 개념으로 이해를 돕기위해 임상적 자주·직무 윤리 그리고 자율규제의 3대 요소로 구분해 설명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계급사회였다. 양반 계층은 사·농·공·상의 사회 계층 구조에서 생계를 위한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지 않았다. 유럽에서 의사, 이발사-외과의사, 약료사로 직업에 의한 단체구성을 한 것과는 달리 동아시아는 의사라는 특정 직업으로 단체를 결성하거나 조직을 만들어 직군의 이익과 자율에 대한 체계는 갖추지 않았다. 

해방 후 현대적 국가 운영에 미숙한 우리나라가 많은 법을 일본의 법 제도를 참고해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의료법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이는데 의사 전문직의 단체구성도 법으로 전국을 단위로 하는 중앙회를 둘 것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직업에 의한 길드의 역사와 같은 전문직 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충분한 식견이 없었기에 전문직 중앙회의 기능이 무엇인지는 명확한 지침이 없었다. 다만 법은 중앙회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나라의 법으로 설립 근거를 제정한 전문직 중앙회는 아마도 의사의 단체적 직업전문성 구현을 위한 장치로 추측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정작 단체적 차원의 전문직업성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는 비교적 최근인 21세기에 시작됐다. 

의사의 전문직업성 강화를 위해 보수교육에서 임상이 아닌 윤리와 법규 등 의무평점이 법으로 제도화됐다. 의무평점을 위한 관리도 매우 철저해 강의 시작과 종료 그리고 출석이 매우 엄격하다. 의무평점 취득을 위한 보수교육에서 단체적 차원의 의학전문직업성 강의는 다양한 반응을 연출한다. 의무평점에 대한 반감으로 약간의 분노와 자조적인 표정이 역력한 회원도 있고 반면에 의과대학이나 전공의 교육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주제로 시종일관 경청하는 모습도 보인다. 질문도 다양해 자율규제의 정착에 대한 회의론의 제기와 반대로 새로운 배움과 이해로 우리나라도 자율규제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성급한 주장도 보인다. 

자율규제에 대한 설명으로 종종 북미와 유럽의 해외사례를 소개한다. 강의 후 참가자 중 한 회원은 외국의 사례는 우리나라와 관계없어 관심이 없다는 다소 냉소적인 의사 표명과 함께 근처의 다른 개원 의사가 예방접종 덤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 질문을 했다. 돌이켜보면 생각을 일깨우는 자극적 질문(probing question)이다. 우리나라 의료가 시장경제에 의한 자유경쟁 체제라면 덤핑이 허용될 수도 있어 보이나 모든 의사가 강제 요양기관으로 지정돼 있고 모든 국민이 대상인 국가의료보험 체제에서는 예방 접종의 덤핑은 분명히 전문직무 윤리를 위반한 것이다. 덤핑은 환자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 상품으로 이용된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예방접종 덤핑을 한 회원에 대한 처리와 재발 방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의 해결책은 통상 복지부의 단속이나 누군가의 고소·고발을 통해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방접종 덤핑을 하는 의사도 스스로 이런 행동이 전문직 품위 손상임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업은 소규모 자영업의 형태이기에 덤핑을 마케팅 전략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덤핑에 대한 법적 처리를 위해 화가 난 회원이 나서서 고소, 고발은 한다고 해도 법적 절차에 대한 의무로 귀찮은 일에 시달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덤핑은 동료 회원이 다른 회원에게 피해를 준 것인데 이미 피해를 본 회원이 고소자의 의무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신적 시간적 손해를 다시 감내해야 하는 사실은 덤핑 사태를 분노를 삭이며 참고 견뎌야만 하도록 만들고 있다.

만일 우리나라에 선진국 의사단체와 같은 자율규제가 정착됐을 때 과연 예방접종 덤핑이 가능하였을까? 라고 반문해 본다. 

물론 불가능하고 덤핑을 한 회원에 대한 전문직 단체의 징계와 규제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전문직의 자율 기제가 없다 보니 법이나 관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실제적이고 효율적 조치는 기대하기도 작동하기도 어렵다. 복지부도 이런 일로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은 달갑지 않은 귀찮은 업무로 여길 수 있다. 복지부도 결국은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고발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이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예방접종 덤핑과 같이 의료 수준(standard)을 위배하는 각종 사안은 전문직 단체 내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전문직 자율 개념이 정착하기 어렵다고 하나 고도의 학력과 직무의 복합성에 대한 의사 집단의 잠재적 역량을 고려해보면 전문직 자율규제 도입과 실천이 그렇게 어려운 사안인가? 라고 반문해 본다. 처음부터 본격적인 자율 기구의 설립과 운영은 매우 도전적 과제이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회원에 의해 발생하는 흔한 문제부터 전문직이 주도하는 단체적 차원의 선제적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자율 정착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회원 보호가 대한의사협회의 최우선이라는 주장을 구현하려면 회원에 의한 나쁜 의료를 방지하고 선량한 회원을 위한 구체적인 보호조치가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미 도입돼 실적도 보여준 전문가평가제도를 더욱 능동적으로 잘 활용해 발전시킬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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