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피그 클럽(Guinea pig club)

기니피그 클럽(Guinea pig club)

  • 황건 전문의(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5.10 16:25
  • 댓글 2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건
황건 전문의(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중에 '모르모트'는 그 어원이 특이하다. 

네덜란드에서 기니피그를 마멋(marmot)으로 착각해 '마르모트'로 부르던 것이 일본에 전파되며 '모르모트'로 불려서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학생시절 논문의 재료 및 방법에서 기니피그를 처음 보고는 서아프리카 국가 기니에서 사육된 새끼 돼지인 줄로 오해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길이 25∼40cm 몸무게 0.5∼1.5kg 정도의 설치류이다. 1780년부터 실험동물로서 결핵, 백신, 알레르기 등의 연구에 사용돼 왔는데, 요사이는 애완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간혹 실험에 쓰이는 동물이라고 사람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이름을 자신들의 모임에 붙인 환자들이 있다. 바로 매킨도(Archibald McIndoe, 1900-1960)에게 수술받은 비행사들의 모임이 기니피그 클럽(Guinea pig club)이다.

의사라면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라도 매킨도수술(McIndoe operation)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1938년 매킨도가 '선천성 질 없음증' 환자에게 피부이식을 통해 질을 만들어주는 수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화상치료의 선구자다.

이차대전(1939-1945)때 공군이 활약하는 대량 공습이 시작됐다. 비행기가 추락하며 불길에 싸여 화상을 입는 조종사와 민간인들도 많았다. 

뉴질랜드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사촌인 길리스(Harold Gillies)와 개원한 매킨도는 이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으로 복무하며 퀸 빅토리아 병원(Queen Victoria Hospital)에서 화상환자와 눈꺼풀을 소실한 환자 등을 치료했다. 

당시 중증 화상환자는 탄닌산(tannic acid)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고작이었다. 탄닌산으로 치료한 화상부위는 건조해지며 죽은 피부가 제거돼, 항생제가 발달하기 전에는 이 방법으로 감염을 줄이고 사망률을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탄닌산을 바르면 환자는 매우 심한 통증을 느끼며, 화상이 낫고도 심한 흉터가 남았다. 더 나은 치료법을 찾던 매킨도는 바다로 추락한 조종사들이 육지에 추락한 이들보다 흉터가 더 적은 점에 주목하고, 화상환자를 식염수로 목욕시키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것은 탄닌산을 이용한 방법보다 훨씬 편안하고도 안전했으며, 치료 기간이 단축되고 생존율을 높일 수 있었다. 매킨도는 또한 피부이식 뿐만 아니라 길리스가 시행하던 피판술을 적용해 넓은 부위의 화상을 치료했으며, 구축된 관절의 재활을 강조하는 등 현대 화상치료의 기반들을 그때 마련했다.

1940년의 브리튼전투 때 켄트 상공에서 격추된 영국군 조종사들은 매킨도의 치료를 받았다. 그 곳에서 부상 조종사들은 기꺼이 매킨도의 '기니피그'가 돼 길게는 2년정도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목숨을 살려주고 기형을 회복하도록 애쓴 성형외과 의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그들의 모임을 '기니피그 클럽'이라 이름 지었다. 

당시 수술을 20회 이상 받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완전히 망가진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팔과 어깨, 가슴 등에서 줄기 피판을 만들어 위쪽으로 끌어당겨 코, 눈꺼풀, 입술 등을 재건해 눈을 감고 숨을 쉬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재건했다. 수술 결과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퍽 나아진 모습이 됐다.

이 기니피그 클럽의 문장은 날개가 달린 기니피그로 매우 인상적인데, 1941년 결성돼 2007년 해체됐다. 정기모임에서 얼굴의 기형을 가진 클럽 회원들이 술잔을 들고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집도의사 매킨도를 둘러싸고 있는 사진을 보면 전시에 생명을 구하고 기형으로부터 회복시켜준 군의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영국에 3개월 간 연수할 때 국립 초상화박물관을 몇 번 관람한 적이 있다. 그 때 종두법을 시작한 제너나 멸균 소독법을 창시한 리스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길리스와 매킨도의 초상화를 봤다. 

돌아와서는 그의 논문들을 찾아 봤다. 그의 논문 가운데 감동적인 구절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처음에도, 마지막에도, 언제나 환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It must at all times be kept in mind that the most important person is first, last, and all the time the patient)." 

환자에 대한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주로 외상환자를 수술하는 성형외과의사로서 환자나 가족에게서 진심 어린 감사의 편지를 받을 때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매킨도를 둘러싸고 노래 부르는 그의 환자들 '기니피그 클럽'이 생각난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