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극복 지름길 '유전상담'…제도화 첫발 '의료행위 인정'

희귀질환 극복 지름길 '유전상담'…제도화 첫발 '의료행위 인정'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6.0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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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영 의원·희귀질환재단,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방안 마련' 토론회
의사-환자 모두 "법적 근거 갖춘 유전상담은 의료행위 인정해야" 입모아
일본, 25개 대학에 유전카운슬러 양성과정…한국 유전상담 교육기관 4곳뿐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한국희귀질환재단은 5월 3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국내 <span class='searchWord'>유전상담</span>서비스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span class='searchWord'>유전상담</span>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한국희귀질환재단은 5월 3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국내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유전상담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했다.

희귀질환지원센터 지원사업에 '유전상담'을 포함하는 희귀질환관리법이 지난 5월 25일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희귀질환자들의 질환 극복을 돕기 위해서는 유전상담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특히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유전상담을 의료행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한국희귀질환재단은 5월 3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국내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유전상담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했다.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은 "유전상담은 최소한 30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가 없이는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될 수 없다"면서 "우리나라도 유전상담사를 배출하고 있지만 행위코드가 없어 활성화가 쉽지 않고, 어렵게 배출한 상담사들이 재인증을 받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가족 내 재발되거나 대물림될 수 있는 유전성질환 극복을 위해서는 환자와 고위험군 가족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질환을 숙지하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지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내 의료 현장에서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정착될 수 있도록 의료행위 코드를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

유전상담이란 질환의 유전적 요인이 환자와 가족에게 미치는 의학적, 심리적 영향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과정이다.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성 질환으로 치료제가 없을 뿐 아니라 치명적인 장애를 초래한다. 게다가 대물림으로 인한 경제적, 심리적 부담도 크다. 때문에 부모를 포함한 가족 중 비슷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유전상담에서는 가족력과 환자의 병력을 통해 특정 유전질환의 위험을 평가하고, 유전질환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제공함으로써 환자가 자신에게 알맞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된다. 

그러나 유전상담서비스는 전문성과 장시간이 소요되는 특성상 임상유전학 전문의 한 사람이 도맡을 수 없다. 진료시간이 3∼5분에 불과한 국내 대학병원 여건 상 의사가 30분 이상 소요되는 유전상담을 급여 없이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사와 유전상담사가 한 팀을 이뤄, 진단은 유전자 검사결과를 토대로 의사가 하고 상담·소통은 유전상담사가 맡는다면 환자와 가족들이 의학적, 유전학적,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질환을 충분히 이해하고, 희귀질환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범희 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유전상담 활성화를 위한 운영체계 구축 방안' 발제를 통해 "희귀질환은 80%가 유전질환으로 환자뿐 아니라 가족을 포함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희귀질환자들에게는 '나와 같은 환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임신은 해도 되는가', '내가 받을 수 있는 국가 지원은 무엇인가' 등의 정보가 필요하며 이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게 유전상담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질병관리청과 함께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이 교수는 "연구결과 환자 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30분 이상의 설명인데 (현실적으로 의사가 직접 하기는) 불가능하다"며 "팀을 구성해 시간을 갖고 정서적인 안정까지 제공하는 유전상담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범희 교수는 "유전상담을 위해서는 내원 전 준비, 상담, 진단검사 후 상담 등 세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이를 표준화 해 프로토콜을 마련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현재 진행 중"이라며 "희귀질환 거점병원에서 유전상담 서비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서비스 향상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내 유전상담 서비스를 확대하려면 교육 과정을 확대하고 상담을 의료서비스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정선용 아주의대 교수(의학유전학)는 일본 유전상담 교육과정과 의료서비스 현황을 소개하고 유전상담 서비스 확대를 위한 제도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유전상담외래', '유전외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임상유전전문의와 인정유전카운슬러(유전상담사), 간호사가 팀을 이뤄 유전질환 상담·진단을 진행하고 환자를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일본 전역 127개 의료기관에서 유전상담이 이뤄진다.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인정받기 때문에 당연히 비급여로 진료비 청구도 가능하다. 

유전질환 교육과 진료에 공들이고 있는 교토대학병원은 임상유전전문의 등 의사 10명과 인정유전카운슬러 5명이 유전외래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초진은 1시간에 9900엔(약 9만 3400원)에서 시작해 30분마다 4950엔(약 4만 6700원)이 추가되며,  재진은 15분당 2530엔(2만 3800원)이다.

도쿄대학병원, 오사카대학병원, 규슈대학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이 비슷한 규모로 유전외래 관련 진료팀을 운영하고 있다.

임상유전전문의와 인정유전카운슬러 양성 프로그램은 전국적으로 이뤄진다. 지난 2002년 임상유전전문의제도위원회에서 임상유전전문의 인정제도를 시작해 올해 3월 기준 총 1727명이 임상유전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비의사인 유전카운슬러 양성도 한국보다 활성화돼 있다. 지난 2005년 인정유전카운슬러제도를 도입한 이후 올해 5월 기준 총 356명이 교육 과정을 마쳤다. 처음 2개 대학에서 첫 발을 뗀 교육과정도 전국 25개 대학(대학원 과정)으로 확대됐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2006년 아주대 대학원이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설치하고 유전상담사 양성을 시작했지만 현재 대한의학유전학회 인증 유전상담사는 62명에 그친다. 유전상담 교육기관도 4개 대학 대학원이고 그나마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정선용 교수는 "지방 소재 대학원에도 유전상담 교육과정을 설치해야 하며, 의료기관이 비급여로라도 유전상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엄춘화 씨(두센근이영양증 환아 어머니)는 "유전상담을 통해 한 가정에 대물림되는 질환을 끊을 수도 있고 다양한 안타까운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며 "하지만 몇 분의 짧은 진료시간은 충분한 유전상담이 이뤄지기엔 너무나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학적 전문지식도 필요하지만 유전상담사를 통해 (질환에 대해) 자세하고 쉽게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환자 및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알 권리'로 유전상담서비스를 제공 받고 싶다. 유전상담을 정부 재정 여건이나 의료기관 수익구조로만 보지 말고 희귀질환 가족과 그럼에도 소중한 생명을 지키며 하루하루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 가정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엔젤만증후군 환아를 자녀로 둔 조애리 씨는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아이가 스무살이 됐는데 아직도 질환에 대해 잘 모른다"며 "희귀질환 진단을 받게 되면 충격과 혼란으로 가정이 붕괴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조애리 씨는 "미국과 일본의 유전상담사 제도가 너무 부럽다. 우리나라는 왜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도화가 시급하다"며 "건강보험 급여를 해주면 좋겠지만 일본처럼 10만원 정도 비용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혜인 유전상담사(서울대병원 내분비외과 간호사)는 "희귀질환 및 유전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적절한 유전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유전상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접근성 및 가용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전문적인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인증된 유전상담사를 교육하고 채용해 전문적인 유전상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전상담은 환자와 가족은 물론 동료 의료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진단도 이어졌다. 

이화윤 유전상담사(화순전남대병원 전남권역희귀질환센터)는 "유전상담 과정은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검사 전 상담과 검사 후 결과 상담, 가족 대상 추가 검사와 교육, 분과 간 협력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유전상담을 전담하는 유전상담사가 희귀질환센터에 근무하게 된다면 환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함께 근무하는 동료 의료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희귀질환자들을 위해 유전상담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지원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장은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유전상담 필요성에 공감하고 희귀질환자와 가족에게 유전상담이 여전히 미충족 수요여서 관련 지원 요구가 크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라며 "질병청은 적극적인 국가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유전상담체계 운영지원사업을 시작했다. 희귀질환자 거주지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사업을 확대·고도화해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성훈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토론회를 통해 유전상담 제도화에 대한 많은 요구를 듣고 이해했다. 유전상담 서비스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제도화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제도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발의해 국회를 통과한 희귀질환관리법을 통해 유전상담 지원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제도권 진입을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이번 토론회를 공동 개최한 신현영 의원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은 질환의 정확한 증상, 경과 과정, 유전 경로 등에 대한 의학적, 유전학적 사실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과 재발 위험 방지를 위해 명확하고 현실적인 안내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유전상담은 환자와 가족에게 의학적, 심리적 이해를 돕는 소통의 과정이며, 국제 표준에 맞춰 희귀질환 유전상담서비스가 활성화되고, 환자와 가족들에게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유전상담서비스의 제도적 안착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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