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
녹색 칠판에 백묵으로 딱 제목만 꾹꾹 눌러 쓰시고 상고머리들을 향해 나직이 말씀하시곤 했다
"뚫어지게 쳐다봐라, 뚫린다."
문득 내다본 병실 창밖
빌딩 틈새로 수액이 솟구쳐 나무 한 그루 새처럼 튀어 오른다
우듬지에 매달려 떠 있는 시선들
후두둑 소나기 비집고 배롱나무 꽃이파리 알몸으로 흩어진다
황황히 흉벽 뚫고 잘려나간 붉은 허파꽈리
꽃 피듯 낙엽 피고
잎맥 틈새로 모든 색깔 빨려들어
바람이 통째로 얼더니 눈이 숨 가쁘게 내리고
하얗게 우거진 눈보라
샤갈의 붉은 당나귀 눈망울을 싣고 온다
여독 녹아내리는 나른한 눈망울
반쪽의 허울만 남아 숨 가쁜 허파꽈리에
둥둥 공기방울을 달아
둥둥 눈초리를 매달아
▶전 한림의대 교수/<문학청춘> 등단(2013)/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시집 <가라앉지 못한 말들> <두근거리는 지금>/산문집<늙은 오디세이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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