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의료현안협의체, 6월 중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 개최
'과학적 근거' 기반 적정 인력 논의...미래 의료수요 분석 수급 추계
의료사고 법적부담 경감 법률 마련...전공의 환경 개선 함께 추진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의사인력 재배치와 확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막연히 의사인력 증원을 통한 낙수효과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인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양측이 과학적인 근거 자료를 놓고 따져보자는 얘기다.
다만 그 검증방법 등을 놓고 초반부터 샅바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등 향후 논의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8일 10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고, 의사인력 재배치와 확충방안을 논의한 결과,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양측은 초반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최저 수준이며,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이에 따른 의료 수요를 고려할 때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해법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개혁하고, 전문의 중심으로 필수의료를 재편해 가야한다"고 말했다.
의료계를 향한 압박 수위도 높였다.
이 정책관은 "의대정원 논의는 여전히 의료계 내부에서 금기시되어 있고, 의협은 의료계 내부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며 "더 이상 논의를 회피해서는 안된다. 조속한 시일 내에 준비해달라"고 요구했다.
의협은 의대정원 증원이 최근 논란이 된 응급환자 뺑뺑이 사건, 소아청소년과 대란 등 필수·지역 의료 문제의 유일한 해법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의사들이 필수 진료과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 필수 진료과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이광래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단협의회장은 "모든 의료사고는 형사고발로 시작해 민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친다"며 "의료행위 중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경우 형사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의사로서의 삶에 대한 회의를 감당하기 어려렵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선택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률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요구했다.
의대정원 증원이 만능 열쇠가 될 수는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광래 회장은 "설사 의대정원이 늘어난다고 해도 13년 후에야 전문의가 배출된다. 공백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의대정원 증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현재의 의대생과 인턴들이 필수의료과에 지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기존 건강보험 틀에서 해결하기 보다는 정부·지자체·국회에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3시간 가까이 비공개 회의를 진행한 끝에 적정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을 논의키로 결정했다.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을 전제로, 양측이 객관적인 근거를 놓고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확충에 필요한 적정 의사인력 규모를 따져보자는 얘기다.
'확충된 의사인력이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로 유입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단순히 의사인력 증원을 통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 확충된 의료인력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로 유입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해 이행키로 했다. 특히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제정키로 했다.
이 밖에 근로시간 단축과 연속근무 제한 등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개선방안도 함께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양측은 이달 중 적정 의료인력 논의를 위한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을 열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키로 했다. 다만 운영방식 등을 놓고 적잖은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어, 향후 치열한 샅바싸움이 예상된다.
실제 이날 브리핑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전문가 포럼을 일회성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밝힌 데 반해, 의협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면밀한 검토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며 다른 입장을 보였다.
전문가포럼에 참여해 미래 의료수요와 필요 인력 수급을 추계하고 검토할 전문가 선정을 놓고도 양측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결과를 반영한 최종 의사결정 또한 정부 측은 "전문가 의견 수용"을, 의협 측은 "의료현안협의체서 재논의"로 엇갈린 답을 내놨다.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은 "그간 국책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의 추계 결과들이 주로 공개·인용되어 왔으나,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의 연구결과는 다르다"며 "단순히 의대정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구호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자료를 바탕으로 면밀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인력 확충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라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이정근 상근부회장은 "그간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패키지 정책'들이 함께 논의해 왔다. 이제 이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할 때"라면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분야에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 합의사항]
1.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한 의사인력 확충방안을 논의한다.
1) 미래 의료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필요인력 수급 추계
2) 의사인력 수급 모니터링 등 객관적인 사후평가를 통한 정원 재조정 방안 마련
3) 이를 위해,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 개최
2. 확충된 의사인력이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로 유입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1) 확충된 의사인력이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로 유입되는 구체적·종합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고, 철저하게 이행
2) 의료사고에 대한 법률 제정 등 법적 부담 경감 방안 마련
3.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개선방안을 마련한다.
1) 근로시간 단축, 연속근무 제한 등을 포함한 개선방안 추진
2) 전공의 1인당 적정 환자 수 추계 및 단계적 감축
3) 전공의 수련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방안 마련
4) 전문의 중심의 의사인력 운영 개선방안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