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목소리 대변 지령 5000호
의료 전문언론 선호도·신뢰도 1위
"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창간 사시-의권옹호·의도앙양·의료문화 발전·의정쇄신
창간 사훈-창의발휘·책임완수·신속정확·인화단결
[의협신문]은 2023년 6월 26일자로 지령 5000호를 발행했다. 1967년 3월 21일 창간호부터 지령 5000호까지 56년 동안 매주 쉬지 않고 독자 회원의 직장과 가정을 찾았다. [의협신문]이 창간하며 내건 의권과 의도의 외길을 돌아본다. 지령 5000호는 의료계의 공론지로, 국민보건에 기여하는 공기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발로 뛰며 기록한 56년 의료계 역사다. 【편집자 주】
"본지는 명실상부한 의협의 대변지이기에 앞서 보다 공정한 위치에서 우리의 지상목표인 의도앙양과 의권신장을 위해 대내적으로는 회원의 결속과 단결을 도모하고, 대외적으로는 의협의 지로와 정책을 뒷받침하면서 범보건의료계의 공론을 정확·신속하게 펴고 나아가서는 해외 각국과의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국민보건에 기여보비하는 사회 공기의 기능을 다할 것을 창간에 즈음해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醫協新報(의협신보)]는 56년 전 1967년 3월 21일 창간사에서 의사의 정신과 의권을 드높이기 위해 대내적으로 회원의 결속과 단결을, 대외적으로 의협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전문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천명했다. 아울러 보건의료계의 공론지이자 국민보건에 이바지하는 사회 공기의 기능에 충실할 것을 선언했다.
대내외에 천명한 [醫協新報]의 역할과 가치를 실천하며, 묵묵히 걸어온 56년의 역사가 바로 지령 5000호다.
[醫協新報] 창간을 논의할 당시인 1966년 12월 31일 대한민국 의사 수는 8852명. 인구 수(2864만 7176명)와 대비하면 의사 1인당 인구 수는 3283명에 달했다. 2023년 6월 현재 의사 수는 11만 3039명으로 1966년과 비교하면 13배가 늘었다. 인구 수(5140만 521명)와 대비하면 의사 1인당 인구 수는 455명으로 7배 이상 의사 접근성이 향상됐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보건의약계 전문언론은 1955년 창간한 의사시보(醫事時報, 현 후생신보), 1960년 서울시의사회 기관지로 창간한 서울醫事週報(현 의사신문), 1954년 약계 전문지 藥事時報(현 약업신문)를 비롯해 藥界新聞(1964년), 한국약업신문(1966년, 현 보건신문) 등이 신문을 발행했지만 의협을 대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협의 단결을 저해하는 논조를 펴면서 궁지에 몰아넣는 사례가 발생했다.
보건의료계 현안 진단·공론 형성·대응방안 제시
1966년 제18차 광주 대의원 총회 '의협주보 발행안' 정관 개정안 통과
의협 내부에서 의협의 주장을 정당하게 알리고, 의료계 안팎의 왜곡된 정책과 주장으로부터 의협과 회원을 보호할 수 있는 기관지를 창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이기 시작했다.
의협은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1963∼1964년)을 역임한 17대 박주병 회장 집행부를 중심으로 창간 계획을 수립, 1966년 4월 17일 열린 제18차 정기 대의원 총회에 '의협주보 발행안'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했다. 광주 총회에서는 명주완 서울시의사회장의 제18대 의협 회장 당선과 정관 개정에 의해 처음 대의원 총회 의장제 시행에 따라 이면재 의장(부산)을 선출한 것을 계기로 갑론을박 끝에 '의협주보 발행안' 결의를 이끌어냄으로써 기관지 창간의 근거를 마련했다.
창간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서울시의사회 내부에서 [醫師新聞] 공동 운영과 통합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진 것. 두 차례 임시총회, 전체이사회, 5차에 걸친 11인협의회, 3차에 걸친 특별위원회 등을 통해 통합 협상이 10개월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기관지 통합을 위한 협상은 절충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내 무산됐다.
의협은 기관지 인가 조건인 자체 인쇄시설을 확보하고, 의협 회관(서울시 종로구 관철동 44-5) 옥상에 가건물을 설치하는 등 법적 제반사항을 갖춘 끝에 1967년 3월 9일 공보부에 주 2회 발간 특수주간신문 발간등록(등록번호 다-184호)을 마무리했다. 3월 10일 명주완 대한의학협회장, 김사달 공보간행이사 등 임원진과 신문사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현판식을 열었다.
대한의학협회 기관지 [醫協新報] 1967년 3월 21일 창간호 발행
1967년 3월 21일. 의협 기관지 [醫協新報]는 의권옹호·의도앙양·의료문화발전·의정쇄신을 사시로, 창의발휘·책임완수·신속정확·인화단결을 사훈으로 내걸고 창간호를 발행했다.
창간호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인술보국', 이효상 국회의장의 '수도춘회' 등 축하 휘호와 박목월 시인의 '난초를 생각한다' 축시를 게재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단체인 대한의학협회의 위상에 걸맞는 [醫協新報]의 창간에 세계 보건의료계 수장과 정관계 인사들의 축하 메시지가 답지했다.
[醫協新報]는 전국 각지에 있는 회원들의 목소리를 올곧게 담기 위해 지사 및 지국을 확장했다. 1967년 6월 7일 서울을 제외한 10개 시도 의사회장을 지사장으로 임명하고, 6월 22일에는 전국 160곳 시군구의사회장을 지국장으로 선임하면서 명실상부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췄다.
창간 초기 특수주간신문 등록 조건이던 인쇄시설을 갖추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문선·정판·제판·윤전에 이르는 제작업무 전반을 운용하기에는 인력·재정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
마침 관계 당국에서 신문발간 지침을 기관지 성격의 신문발행은 인쇄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변경함에 따라 신아일보사(서울 중구 정동 소재)에서 창간호를 발행한 이후 지령 2호부터 39호(1967년 8월 3일자)까지는 산업경제신문사에서, 40호부터 1991년 10월까지 현대경제일보사(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1999년 3월까지 경향신문사에서 외부 제작에 의존했다. 1999년 4월부터는 인쇄를 제외한 신문 제작을 자체 인력과 장비를 통해 운용하고 있다.
언론사 사전 검열·기관지 통폐합 위기 의료계 입장 대변…전문언론 자리매김
[醫協新報]는 창간 초기 광고 배정을 주도한 제약사 광고실무책임자 모임인 'PR구락부'의 비협조와 기존 전문지의 견제 속에 적자 경영에 시달렸다. 1972년과 1980년 정권 변혁기의 언론사 사전 검열과 기관지 통폐합 위기도 겪어야 했다.
경영과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醫協新報]는 기획과 특집 기사를 통해 선진국 의료제도와 학술적 진전을 소개하며 꾸준히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의료일원화·의료전달체계·의료분쟁·의료보험·의약분업 등 의료계에 불어닥친 난제와 숙원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 여론을 조성하는 역할도 도맡았다.
정부·국회·유관단체는 물론 각 대학병원과 시도의사회를 주요 출입처로 정해 보건의약계 현안을 진단, 대응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공론을 형성하고, 의료계의 입장을 대변했다.
의료계 여론 대변…2005년 인터넷 의협신문 창간
정부 정책·제도 개선 강행 비판 의료계 숙원 제도 개선 대안 제시
[醫協新報]는 정부의 강압적인 의사 면허세 철폐, 지정업무 종사 명령, 영업세 부과, 의료유사업자 입법, 보건소법 개정 , 의과대학 신증설 정책 등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
의료계 숙원 사업인 강제지정제 전환, 의료사고 피해 구제법, 공제회 설립, 의료신분보장정책, 의료개혁 추진 등 의료정책과 제도 개선에 힘을 실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누적된 저수가·저부담·저급여 의료제도의 왜곡과 규제 속에 억눌렸던 민의를 분출한 의약분업제도 강행을 계기로 의권투쟁의 생생한 현장을 기록하며 의료계 여론을 대변했다.
[의협신문]은 의료계의 대변자이자 전달자로서 의학전문대학원제도 도입, 약대 6년제, 의료영리화, 원격의료 도입, 의대 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등 일방적인 정책 강행에 저항하는 현장을 지켰다.
응급실 폭행 피해 의사 단독 인터뷰와 릴레이 캠페인을 통해 진료실 안전을 위한 법률 개정의 물꼬도 텄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간호법을 공약하지 않았다는 단독 보도를 통해 여론의 물줄기를 돌리기도 했다.
국내 소외 계층은 물론 수해·지진·태풍 등 외국 재난 현장에 취재기자를 파견, 나눔과 온정의 손길을 담아냈다.
[醫協新報]에서 [의협신문]으로 변화 [DOCTORSNEWS] 일일 방문자 1만명
[의협신문]은 1998년 3월 창간 31주년을 맞아 전면 가로쓰기 편집으로 읽기 편한 신문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섰다. 1999년부터는 외부 신문사에 의존해 제작하던 신문을 자체 인력을 통해 편집·출력까지 진행하고 있다.
2000년 10월부터는 1면 전면광고 대신 기사를 전진 배치, 대외적인 신인도를 높이고 있다. 2004년 1월에는 신문 제호를 한자 [醫協新報]에서 한글 [의협신문]으로 바꾸고 역사적 전통에 새로운 변화를 덧입히는 기틀을 다졌다. 2015년 1월에는 창간 이후 전 지면을 PDF로 DB화함으로써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5년 3월 21일에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인터넷 의협신문 [kmatimes]를 창간했으며, 2010년 3월 21일 현재의 [DOCTORS NEWS]로 제호를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DOCTORS NEWS]는 2023년 6월 현재 하루 방문자 1만 명을 뛰어넘어 의료계는 물론 국민에게 다가가는 의학전문언론으로 새로운 도약을 계속하고 있다.
의대생·공보의 등 명예기자 제도 운영 시·수필 등 회원 위한 문화·예술 공간
[의협신문]은 의과대학생을 비롯한 예비의사와 공중보건의사·군의관 등 젊은 의사를 대상으로 명예기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명예기자들은 임상 및 기초의학 분야는 물론 사회·문화·경제·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의사 회원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의사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아울러 젊은 의사와 기성 의사의 이해와 공감대를 넓히는 소통의 가교 역할도 하고 있다.
새로운 100년 준비 발로 뛰며 쌓아올린 5000호
[의협신문]은 정책 좌담회·KIMES 경영 세미나·시사적 글쓰기 아카데미 등 회원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회원들의 여가 활동도 주도했다. 1969∼1971년에는 의사 바둑동호인들의 기력을 겨룬 전국의료인바둑대회를 주관했으며, 1971년부터는 의인미전을 열어 동양화·서양화·서예·공예품 등 의사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1969년 시작된 의사연식정구대회는 서울·부산·대구지역 등을 순회하며 7회까지 열렸다. 1974년에는 전국의사테니스대회로 전환해 2000년대 후반까지 의사테니스 동호인들의 버팀목이 됐다. 1969년 선보인 제1회 전국의료인 친선낚시대회에는 회원과 가족은 물론 치과의사까지 참여하는 열린 공간을 제공했다.
[의협신문]은 시·소설·수필·그림·사진 등 장르에 구분 없이 회원들의 예술 작품을 소개하며 문화 공유의 장을 열고 있다.
현재 '책 세상', '시가 있는 삶', '기고',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등을 통해 문화와 예술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국내 최고 권위 보령의료봉사상 제정39회 시상식…400여 '인술 인생' 조명
1985년 보령제약과 함께 제정한 '보령의료봉사상'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의료봉사상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술로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의료인들을 발굴해 참된 의료인상을 알리고 의술의 존귀한 가치를 정립하고 있다. 올해 39회 수상자를 낸 보건의료봉사상은 지금까지 400여 회원의 인술 인생을 세상에 알렸다.
전문언론 선호도·신뢰도 1위 새로운 100년 향한 도전 계속
[의협신문]은 각종 매체가 범람하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보건의료계 대표언론으로 손꼽히고 있다.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파악한 [의협신문]과 [DOCTORS NEWS(인터넷 의협신문)]의 매체 선호도(61.7%)와 신뢰도(72.6%)는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의협신문]과 [DOCTORS NEWS(인터넷 의협신문)]은 '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를 슬로건으로 ▲보건의료 정책과 제도 개선 ▲직업전문성 확보 ▲자율규제 확립 ▲의약학 발전을 통한 국민건강 향상 ▲의약 및 의료산업 발전을 지향하는 의학전문 언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령 5000호]는 지난 56년 동안 역대 발행인·편집인과 의협신문 취재 및 편집기자와 광고를 비롯한 업무 직원들이 한 발 한 발 힘 들이고, 애를 써 쌓아올린 각고(刻苦)의 결과물이다.
[지령 5000호]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양심에 따라 소신껏 진료를 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더 깊이 고민하고, 한 발 더 뛰어다니겠다는 다짐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의협신문]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의로운 의료문화를 만드는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응원과 질책을 바란다. 지금까지 독자께서 보내준 성원을 엄숙한 마음으로 가슴에 새기며, 새로운 모습으로 100년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