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응급의학의사회·응급의학회·대전협 "응급의료 붕괴 위기" 한 목소리 우려
사명감에 선택한 응급의학 중도 포기율 "한국, 미국의 10배 이상…후회도도 높아"
의료계 적극 나선다 "필수의료사고처리특례법, 응급의료기본계획 속도 붙어야"
대구 10대 청소년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사망한 사건으로 해당 환자를 처음 진찰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피의자 수사에 들어가자, 응급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한 의료계가 즉각 수사 중단과 시급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는 7월 3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공동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로 비화하기 전 응급의료체계 손질에 나서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의료체계 공백의 책임을 개인 전공의에게 지우는 것은 정부의 마땅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응급실 과밀화 개선과 응급의료진 법적 안전망 구축을 촉구했다. "의료계는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으며, 언제든지 국민건강권을 위해 정부와 적극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과 함께다.
해당 사건에 대해 이필수 의협회장은 "당시 환자는 의식도 명료했고 혈압과 맥박 등 활력징후도 정상이었다. 골절 출혈 증거도 없어 외상에 따른 중증도는 높지 않았다"며 "그러나 대면진료 후 극단적 선택이 의심돼, 환자·보호자와 상의 후 보호병동과 정신의학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전원했다"고 설명했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응급의료진료지침대로 진료한 전공의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어느 누가 응급의학과를 전공하겠느냐. 필수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인 응급의료 붕괴가 몹시 우려된다"며 "국민들이 언제든 양질의 필수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김원영 응급의학회 정책이사도 "처음 확인한 환자 히스토리는 3m 높이에서 떨어진 발목 부상으로 의식도 멀쩡했다. 어느 응급의학의사라도 경증으로 봤을 것"이라며 "환자가 4층 높이에서 추락한 것은 나중에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역시 현장 실사조사까지 동원해 엄정히 수사했으나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매듭지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에서 이를 유념해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에서 달리 더 특별한 것이 나온 것이 없다면, 전공의의 선의의 의도를 인지하고 수사를 빨리 종결시켜 현장에서 근무하는 필수의료진의 동요를 막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료 체계의 붕괴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전했다.
강민구 대전협회장은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책임만 종용하는 필수의료 과목을 수련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며 "필수의료 행위를 했을 때 과연 보호받을 수 있을지 우려와 함께, 전공의를 직접 조사하고 처벌까지 이뤄진다면 앞으로 지원하기 어렵겠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응급의료는 붕괴 위기를 넘어 이젠 파국으로 가는 것 같다. 이런 위기는 최근의 일이 아니라, 지난 10여년간에 걸쳐 서서히 악화되던 것이 몇 가지 사건을 통해 당금에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일 뿐"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응급의학과 수련을 그만둔 전공의도 있고, 앞으로 지원하지 않겠단 전공의도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전공의 중도 수련 포기율을 살펴보면 응급의학과가 1% 미만으로 제일 낮고, 다시 전공을 선택해도 응급의학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90%대다. 환자를 살리는 일에 보람을 갖고 있고 그런 일을 하고 싶어 선택했기에 만족도가 높으며, 수익이나 편의를 좇았다면 다른 전공을 했을 것"이라며 "그에 비해 우리나라 응급의학과 전공 포기율은 수년 전에 10%를 넘었다. 다시는 응급의학과를 하지 않겠다는 응답도 40%"라고 토로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응급실에서 환자를 볼 때는 하루에도 수백번씩, 수초 안에 판단을 한다. 그 판단이 100% 항상 옳을 수는 없으나, 응급현장에서 환자에게 제일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선택을 한다"며 "비록 그 선택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응급의료 진료행위이며,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등 필수의료진 법적 부담 해소 ▲지역완결적 최종치료 응급의료 인프라 구축 지원 ▲비정상적 응급실 이용행태 개선 ▲정부 정책수립에 의료현장 의견 수렴 ▲대구 해당 응급의학과 전공의 피의자 조사 즉각 중단을 공동으로 촉구했다.
김원영 이사는 "병원 전단계에서 중증도 분류와 그에 걸맞은 의료기관 유도가 가장 중요한데, 지금까지는 119 구급대에서 환자나 보호자 의지에 따라 이송하는 것이 관례였다"며 현 응급이송체계를 지적하고, 이형민 응급의사회장도 "가까운 병원은 최종치료가 불가능하고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과밀화가 심각하다. 지역완결형 의료 역시 지역에서 모든 중증도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이 한 곳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을 보탰다.
특히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등 법적 안전망 구축이 거듭 강조됐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착한 사마리아인법이라고도 불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합의로 통과됐음에도 6개월 동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국회와 정부에서 법안을 서둘러달라"며 "어떤 의사가 환자를 살리고 싶지 않겠느냐. 살리고 싶다. 소신 진료, 최선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꼭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김원영 이사는 이에 크게 공감하고 "응급의료법에서는 모든 의료기관이 정당한 수용불가 사유가 있을 시 의무적으로 한 곳에서 해당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곧 응급실이 꽉 찬 '풀베드' 상태에서 누군가는 병상을 비워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병상을 뜬 환자는 모니터링도 안 될뿐더러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며 "법적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1일 발족한 중앙응급의료정책추진단과 향후 5년간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에 대해서도 "5개년 계획이 막 킥오프를 한 시점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몹시 안타깝다. 좀 더 속도감 있게 진행하도록 의견을 전달하고 있고, 추진단 쪽에서도 분명하게 공감하고 있어 빠른 행동에 나서줄 것이라 믿고 있다"고 전했다.
강민구 대전협회장도 "배후진료 여력은 없는데 환자를 받으라 하고, 중증환자를 무조건 수용하라 하고, 경증환자 진료도 거부할 수 없는 실정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완벽한 진료를 수초 내에 판단해서 진료하라며 그 책임을 전공의 개인에게 지우고 끝내려 한다. 체계의 문제는 개인이 떠맡을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과감한 재정투입 등을 통해 최종치료가 가능한 의료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