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협 "오진단 이유 형사 처벌…소송 위험 큰 필수 과 전공 기피 이어져"
고의과실이 아닌 경우엔 처벌하지 않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기대
대동맥 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응급의학과 전공의에 대해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해 의료계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개원의협의회가 필수의료의 붕괴가 가속화 할 것을 우려했다.
지난 8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대동맥 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응급의학과 전공의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대개협은 8월 21일 입장문을 내고 "전공의 1년차의 오진단에 대한 무리한 판결로 필수의료의 붕괴를 가속화 할 것"이라며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 판결은 2014년 흉부 통증을 호소하면서 내원한 환자에 대해 응급의학과 1년차 전공의가 경증질환으로 오진단했고, 이후 대동맥 박리가 진행돼 양측 다발성 뇌경색으로 인한 인지기능의 소실 및 사지마비 등의 뇌병변 장애가 발생한 사건이다.
1심 재판부는 2021년 11월 4일 업무상 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에 대해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2심 재판부 역시 2023년 8월 17일 항소기각 판결했다.
이와 관련 대개협은 "전공의는 수련병원 및 수련기관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받는 피교육자의 신분을 가진 근로자이며, 1년차 전공의란 해당 수련 과정을 시작한 지 1년이 안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이어 "가장 기초적인 진단과 술기를 숙지하고 진료와 치료를 시작하는 의사로 경험 부족과 미숙함은 피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면서 "법원은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의사에게 형사법의 조문을 들어 완전무결한 진단과 처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대한민국 사회와 법원은 의료사고에 대해 과도한 책임을 묻고 무리한 벌을 내리고 있다"면서 "국가별로 의사의 기소 현황을 비교한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의사는 1인당 일본의 265배, 영국의 895배 더 기소를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는 의사를 법정에 세우기 용이한 법 조항의 적용과 의료의 특수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하고 있다"면서 "의사는 진료 중 사소한 실수도 '업무상 과실'이 인정돼 쉽사리 형사 처벌과 행정처분에 따라 자격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개협은 "결과적으로 인명을 다뤄 소송의 위험이 큰 전문과목의 전공을 피하게 되고, 이는 필수 과의 기피와 '응급실 뺑뺑이' 같은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의사를 구속했지만, 최종 무죄가 선고된 2017년의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 사망 사건이 소아청소년과 지원 기피로 이어져 수년 후 어떤 사회 문제로 비화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봤다"고 상기했다.
대개협은 "의사에게 사소한 실수도 죄를 따져 묻고 벌을 내린다면, 사회 정의가 실현되고 감정적 응어리가 해소되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로 특정과, 특히 인명을 다루는 필수 과를 기피하게 되고, 진료를 방어적으로 수행하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해와 바람의 우화처럼 의사 처벌을 앞세우는 강하고 억누르는 힘만으로는 대한민국 의료계가 처한 문제는 더욱 악화될 따름이고, 결국 사회적 비용과 국민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개협은 "의료분쟁에 대한 중재 및 배상보험 체계의 강화, 고의과실이 아닌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정당한 진료의 형사법 면책 등 따스하고 부드러운 햇살 같은 정책으로 필수 의료의 붕괴를 막고, 최선의 진료가 가능한 의료 환경에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