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한 이성적 판단'
민주주의 사회 국민 기본 덕목…"의료계 먼저 앞장서야"
모든 학문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검증된 지식의 미래 지향적인 내용을 허용한다. 참다운 교육이란 지속해 발전하는 신지식을 가르치는 것이고 또한 그 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의학교육이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지식의 습득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의료행위는 공익의 철학을 수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의사는 사회 지도자로서 자질과 품격을 갖추는 교육에도 충실해야 한다. 의학은 최첨단 지식을 이용하는 첨예한 학문이기 때문에 항상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 판단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의료행위에 접근하는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다음 세대 의사들은 임상진료 시 인공지능 의사와 협업이 필수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긍정적인 대책을 학습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현대 의학교육의 내용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고 복잡한 첨단 학문이 돼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의학교육의 다양성, 다원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COVID-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러한 주장은 좀 더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즉 의학교육이 의학지식의 습득에만 국한됐던 과거의 교육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의사는 사회적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다원적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그래야 다원화 사회에 필요한 바람직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다원화된 의학교육에는 의학은 물론이고 사회·문화·경영 등 미래 사회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이 포함돼 있다.
필자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의과대학 교육의 전 과정(6년)에 인공지능 교육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주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최근 국내의 몇몇 의과대학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개념이 포함된 의학교육을 시도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의과대학은 분명 그렇지 않은 의과대학 대비 비교 우위적인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고 졸업하는 의사 역시 품격이 다른 의사가 될 것이다.
의학교육의 변화 속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또 다른 분야는 자유 민주주의의 시민의식과 덕목을 함양하는 교육이다. 이는 의사가 이 사회를 구성하는 전문가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시민의 덕목을 갖춘 모범적인 사회인으로서 신뢰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시민의 덕목을 쌓는 것은 건전한 사회 발전을 위한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 중의 하나다.
자유 민주주의 시민의 덕목을 갖추기 위한 핵심은 우리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는 생각과 행동이 반드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한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한 민주시민의 덕목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를 실천하고 습득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또 다른 덕목을 아우를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모든 국민이 이런 참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의 기본 덕목을 갖춘다면 국가사회는 어떤 혼란에도 빠져들지 않고 미래 지향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20여 년을 다양한 요구의 집단행동과 시위가 끝날 줄 모르고 있다. 이런 형태의 집단적 시위는 진행 과정을 통해 본래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 행태가 마치 17세기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말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 War of all against all)을 방불케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오직 살아남기 위한 기본적인 투쟁 같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기주의적 생각이 짙게 깔려있어 보인다.
시위에 참여하는 상당수의 사람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정치 투쟁으로 변형되는 데 깊이 관여하고 있다. 마치 심리적 지배(gaslighting)를 당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들 같은 모습도 간혹 눈에 띈다. 그러므로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우리 사회는 생명력을 상실한 병든 사회로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시위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법적인 의사 표현 방법을 좌시할 수는 없다.
선동은 필연적으로 과격한 시위를 불러오고, 이는 사회 불안의 요소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렇게 군중심리를 이용한 선동과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핵심적 요인은 이들이 민주시민의 덕목을 인식하지 못해서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시민들의 기본 덕목인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런 교육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지속해 이뤄져야 하며 생활 속에 스며들도록 습관이 돼야 한다. 이것은 민주시민으로서 자기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과거 이러한 교육을 받은 일도, 받을 기회도 없었다. 국가사회가 중요한 책무를 소홀히 했다는 증거다. 이는 국민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획득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편 국가의 통치행위 자체가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모습을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유 민주시민의 덕목을 추구하고 지키는 모습이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이 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생활 속에 자유 민주시민의 덕목이 생활화 되고 국민의 생각과 행동은 합리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정치적 이유와 권력자들의 잘못된 집착으로 국민들이 시민의식이나 덕목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도록 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민화 정책이 이어 온 것이다.
필자는 과거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에 의료계 언론사가 중심돼 실시했던 '윤석열 대통령에 바란다'라는 의견 수렴 행사에 의학계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제시한 일이 있다. 기고문을 통해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지만, 핵심적인 두 가지를 건의했다.
첫 번째는 의료계는 정부의 대척점에 있는 반정부 단체가 아니고 국민건강 수호의 최일선에 서 올바른 정부 정책에 협력하는 단체임을 확실히 인식해 달라는 것.
두 번째로 간곡히 부탁한 것은 국민에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통해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국민의 합리적 삶을 위해 실행해야 하는 의무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정부의 행정 역시 이에 버금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늪에 빠져 있다. 그러나 민주시민의 덕목을 모르고 오로지 각자가 즐기기만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한 개인과 국가사회를 병들게 할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귀중한 교육을 책임질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교육이 모두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러나 누구도 걱정하지 않고 있다. 모든 사람은 오로지 사회관계망이나 유튜브 개인 방송의 허망한 내용을 통해서 정제되지 않은 내용에 물들고 있다. 그러므로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진정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의식구조를 가진 의료계 만이라도 먼저 앞장서야 한다. 우리 미래 사회의 아주 중요한 운명이 자유 민주시민 덕목의 습득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15일
於 鶴汝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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