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정책, 대전환 필요하다

보건의료정책, 대전환 필요하다

  •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9.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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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 지식 갖춘 '필수의료인력' 운용 전환
제대로 된 보상·효율적 활용 방안 필요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의협신문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의협신문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의 핵심은 건강보험을 통한 보장성 강화였다. 총의료비에서 공적 재정으로 공급되는 의료비 비중을 높여 본인 부담금을 줄이는 것이 목표인 보장성 강화는 여야 정당에 관계없이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내세우는 필수 공약이었고, 이런 시도는 건강보험이 자리를 잡는 초반에는 큰 역할을 했다. 

보장성 강화를 위해 건강보험료율이 꾸준히 상승했다. 직장가입자 기준 보험료율은 2006년 4.48%에서 2023년 7.09%가 됐고 장기요양 보험료율까지 더하면 약 8%에 달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국민 1인이 일 년간 쓰는 평균 의료비 중에서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보장률은 2006년 64.5%에서 2012년 62.5%로 하락한 후, 2021년 64.5%로 다시 상승했지만, 최근 20여 년간 제자리걸음이다. 

OECD 보건통계자료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GDP 대비 의료비는 10년 전 6.7%였으나, 작년 9.7%로 소득 대비 45% 상승했다. 큰 폭으로 증가하는 의료비에 비해 개선되지 않고 있는 보장률,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노인 의료비의 증가로 원인을 돌리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것만이 아니다.

암 환자의 경우 필수 검사나 치료비는 건강보험에서 95%를 지원하고 있고, 5%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암 환자의 건강보험보장률은 95%가 돼야 한다. 그러나 2021년 실제 암 환자의 보장률이 80.2%에 불과한 이유는 건강보험이 지원하지 않는 비급여 의료서비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시도하더라도 건강보험 보장률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데는 필수 의료에 대한 저수가 정책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 수술할 외과 의사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다 구급차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 소아과 의사 부족으로 인한 부모들의 '새벽 오픈런', 산과 의사 부족으로 인한 모성사망비 증가 등의 사회현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중증 질환자에 대한 외래 진료 수가는 1만원~2만원에 불과하고, 여러 명의 의료진이 동시에 투입되는 분만이나 큰 수술의 수가 역시 병원의 행정비용이나 간호사 인건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의료기관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비급여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게 구조화됐다. 치료효과가 입증된 필수의료행위는 건강보험 급여 영역에 대부분 포함돼 있다. 비급여 영역으로 아직 남아 있는 의료서비스의 대부분은 효과가 불확실해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원가 이하의 저수가라는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않으면서, 환자들이 비급여진료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 선별급여 혹은 예비급여 등의 이름으로 비급여 의료비 중 일부를 급여로 전환해 줬다. 특정 비급여 진료의 수가를 낮춰 급여화하면 또 다른 고가의 비급여 의료기술이 새로이 등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산과나 소아과, 응급의학과처럼 비급여 서비스가 적으나 의료 분쟁의 소지가 큰 진료과는 환자가 많아도 병원은 의사를 더 고용하지 못한다. 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남아 있는 의사들이 과로와 스트레스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현실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응급실과 소아과·산과·외과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병원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지역별로 의료기관을 더 건립했으나, 필요한 의사가 없어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그 원인을 의사 부족이라고 이제 의대를 더 설립하겠다고 한다.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고 지방의대를 만들었지만, 졸업생들이 지방이 아닌 수도권에서 일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의사들이 자신이 원하는 진료과를 선택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에 이런 접근은 근본적인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2022년도 대한민국은 GDP 대비 의료비를 9.7% 사용하기 시작해, OECD 국가의 평균치와 같은 수준으로 의료비를 사용하는 국가가 됐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필수의료인력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해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제한된 시간에 환자를 더 많이 보는 양적인 방법으로 대처해 왔으나,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제한된 의료자원을 필수 의료를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즉, 의료비의 양적 보장보다 필수 의료를 중심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이뤄야 한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의료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효과가 불확실한 의료기술에 대한 비용 지원을 늘리지 말고, 직접 환자를 진료하는 필수 의료인력의 인건비를 적정하게 책정해 병원이 더 많은 의사와 간호사를 고용할 수 있게 해서 의료인 1인당 환자 수를 줄여야 한다.

의료인들이 비급여진료에 의존하지 않고 필수 의료서비스 중심으로 진료해도 의료기관 운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수가 체계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응급수술로 생명을 구할수 있는 환자들조차 제시간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건강보험 보장률의 의미는 무엇인가? 단순 통계상의 보장률을 올리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변화된 사회 환경을 반영해, 보건 의료정책의 목표설정에도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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