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증희 을지재단 명예회장 소천

전증희 을지재단 명예회장 소천

  • 김미경 기자 95923kim@doctorsnews.co.kr
  • 승인 2023.09.0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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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간호장교 자원, 초기 군 간호학 근간 마련
개인 자산 출연해 범석장학재단 설립, 27년간 연구비·장학금 수여

전증희 을지재단 명예회장.

남편 범석 박영하 박사와 함께 을지재단의 발전을 이끌어 온 전증희 을지재단 명예회장이 9월 1일 향년 94세 나이로 소천했다.

전증희 회장은 1929년 7월 8일 출생으로 1945년 춘천간호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간호장교로 자진 입대했고, 초임지는 대전 제2육군병원 수술실이었다. 부상병이 속출하는 수술실에서 전증희 회장은 군 간호학의 근간을 마련하고 간호 분야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1952년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범석 박영하 박사(을지재단 설립자)와 전쟁터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부는 오늘날 을지재단을 함께 일궈왔는데, 부부가 모두 한국전쟁이 참전한 것은 의료계를 통틀어 손꼽힐 만한 일로 여전히 회자된다.

전증희 회장은 1953년 대위로 예편하고, 남편인 범석 박영하 박사와 함께 1956년 서울 을지로에서 박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했다. 을지재단의 시초인 병원에서 전증희 회장은 헌신적인 내조는 물론, 개원 초 야간 간호와 병원 전반 업무를 처리하며 을지재단 성장에 큰 힘을 보탰다. 

1968년부터 1994년까지 재단법언 을지병원 상임이사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산하 의료원의 환자 간호와 간호행정 발전에 힘을 쏟았다. 당시 전증희 회장이 만든 을지의 간호행정 매뉴얼은 전국 병원에 퍼져나가 기본 교과서로 회자될 만큼 주목받았고, 이런 노력은 현 을지대학교의료원 간호체계의 기틀이 됐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는 을지재단 부회장으로 재임하며 의료사업을 통한 국민 보건 향상에 주력했다. 의사, 간호사 등으로 이뤄진 을지의료봉사단을 창단해 무의탁 노인, 소년소녀가장, 수재민을 위한 무료진료소 개설 등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봉사를 꾸준히 실천해왔다. 전증희 회장은 이때마다 앞장서서 현장을 방문해 지역민과 함께했다.

후학양성과 인재육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97년에는 개인재산 10억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범석학술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으로서 27년간 2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또 600여명의 우수한 연구자들을 발굴해 연구비 지원 사업과 범석상 시상을 전개, 국내 유수 장학재단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10년 사재 37억원을 사회에 환원했고, 2013년 남편인 박영하 박사가 소천하며 남긴 전 재산 172억원을 학교와 재단에 기부했다. 이렇듯 의학 발전과 후학 양성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전증희 회장은 2013년 5월 7일 영면한 고 범석 박영하 을지재단 설립자가 안장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된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준영(을지재단 회장), 딸 박준숙(범석학술장학재단 이사장), 사위 최원식(을지대의대 정형외과학교실 석좌교수), 며느리 홍성희(을지대 총장) 등이 있다. 

유족들은 조화와 부의금을 정중히 사절함을 알리며, 조문은 9월 1일 오후 12시부터 받겠다고 알렸다. 빈소는 서울 노원을지대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오는 9월 3일 11시 발인한다. 장지는 4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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