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신병원 폐쇄병동 내에서 자살을 시도해 사망한 정신질환자에 대하여, 환자의 사망에 의료기관 측의 과실이 있다고 하여 민사 책임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이 알려지는 등, 의료기관 내에서 환자가 자살을 시도하여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되어 환자 또는 유가족,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및 민간보험사 등이 의료기관과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선고된 판례에서 법원은 의료진이 자살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자살 위험도 평가 등을 적절히 실시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하였다고 인정하였는데, 이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부당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자살기도자의 70%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 중 70%는 주요우울장애 환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우울삽화 기간 중에는 항상 자살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자살은 그 자체가 질환이 아닌 하나의 행동으로, 대부분 심한 정신질환의 경과로 일어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살 위험도 평가는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되는 평가 수단이지만 실제 임상적으로 특정 시점에서의 자살을 예측하는 것에 직접 활용되기에는 적지 않은 난점이 있다. 왜냐하면 자살을 실행한 사람들의 특징이 자살을 실행하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과의 차이는 있지만, 한 개인을 두고 특정 시점에 자살할 것이라는 예측은 현재 활용 가능한 여러 위험도 평가 척도를 적용한다 해도 어렵다.
즉, 특정인이 곧 자살을 실행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나누어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평가요소는 없고, 따라서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기준이나 정량화된 객관적인 검사 방법이 없는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 자살이나 자해 충동 행위에 대한 예견 가능성 측면에서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자살 위험도 평가 과정에서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과실과 환자의 사망이라는 악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한편 다른 사건에서 정신의료기관 폐쇄병동에서 자살을 시도하여 사망한 환자의 기저 노동능력상실이 전혀 없음에도 자살 시도 전 노동능력이 온전히 존재함을 전제로 의료기관 측의 손해배상범위를 판단한 판례도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손해배상 관련 소송에서 가해행위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던 기왕증으로 인한 노동능력상실에 따른 부분은 가해자가 배상하여야 할 손해배상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데, 재판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맥브라이드 장해평가방법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할 정도의 환자일 경우 전신장애율이 100%로 산정되므로 자살 시도 이전부터 이미 상당한 노동능력 상실이 존재하던 환자에 대하여 자살 시도 이전 환자의 노동능력이 온전히 존재함을 전제로 하여 손해배상의 범위를 산정하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
이에 더하여 또 다른 사건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환자 본인의 정신적 손해에 따른 위자료를 인정하기도 하였는데, 환자 스스로 죽기 위하여 자살을 시도하여 사망한 것은 스스로가 위난을 자초하여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죽음에 이른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해당하므로 이에 관하여 다른 친족의 정신적 손해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환자 본인의 정신적 손해가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음에도 환자 본인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책임을 인정하는 것도 상당히 부당하다.
비록 어떠한 이유로든 환자들이 의료기관에서 다치거나 사망하는 것은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의료기관 내에서 발생한 환자의 자살 시도 사고에 관한 최근 판결 경향은 전적으로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책임으로 판단하고 있는바 이러한 판결 경향은 심히 부당하므로 향후 반복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