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높기만 한 정신과 '진료실 문턱' 낮추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의사로서 궁극적 목표는 환자 곁에서 끝까지 의사의 소명 다하는 것
때로는 '나'를 이해하는 것보다 '남'을 이해하는 것이 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한다. <두렵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라는 제목의 책도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겨냥한 책이다.
"당신은 이런 문제가 있지요?"라고 독자들에게 묻는다면 실제로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이들도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래요?"라고 하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김진세 선생님의 <두렵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역시 다양한 '타인'의 이야기가 녹아져 들어 있다. 타인이 실제 인물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조금 독특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던 김진세 선생님은 <두렵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외에도 <심리학 초콜릿>,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등의 책을 집필해 완성했다. 정신의학과 관련된 외국의 서적도 번역하고, 정신건강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쓰며 현재까지도 정신과 '진료실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현재진행형'의 고군분투 중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Q. 먼저 '정신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시인이시고 기자일도 하셨습니다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책이 많았고, 우연히 아버지의 서재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을 발견했어요. 그 책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관련 지식을 접하다보니 조금 과장된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정신건강과 관련된 개념들이 미래사회를 지배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정신과를 희망하고 원했던 것 같습니다.
Q. '정신과'외에 다른 전공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최종적으로 정신과라는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과정을 여쭙고 싶습니다.
인턴십을 하던 중 '산부인과, 성형외과, 안과, GS, OS' 등의 진료과에서 레지던트를 해 볼 생각이 없냐고 권유를 받기도 했었죠. 또, 한때는 산부인과도 생각했어요. 나는 성향상 시켜서 하는 것보다 주도적으로 먼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러한 성향이 정신건강의학과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전공을 선택한 이후에는 아직까지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Q. 많은 책을 집필하셨는데 의사로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작가로 집필활동을 할 수 있었던 동기부여가 무엇인지, 또 평소에 특별한 시간관리 방법이 따로 있는지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씀으로써 스트레스를 풀고는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쓰는 것도 좋아하고, 어렸을 때 글쓰기 관련 상을 많이 받은 것을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글을 좋아하고 또 곧 잘 쓰기도 했던 것 같아요. 꾸준히 재밌게 글을 쓰다가 잡지의 투고 요청이 들어왔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정신과와 관련된 칼럼을 많이 작성하게 되었죠. 그 이후에도 다양한 글을 써오다 우연히 <To good to live, To bad to stay>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기에 정신과와 관련된 책이 붐이 일었을 때 출판사에서 편집기획업무를 하시는 분들이 사람의 마음이나 심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심리학 초콜릿>이라는 책을 집필했고 운좋게(?)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됐어요.
사실, 글을 열심히 쓰게 된 직업적 동기는 정신과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습니다. 좋아지고 있는 환자들조차도 정신과 치료 받는 것이 힘들고 창피하다고 말하고는 합니다(마치, 당뇨 환자들의 상당 수가 그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던가요?).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정신과 진료실의 문턱이 많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public education'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Q. <두렵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를 출판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것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볼 때 더 편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치 남의 이야기지만 자신의 이야기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또 사물을 다르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대상을 통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봤으면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의 빗장'인 방어가 풀리게 될 수도 있어요. 좋은 작품이나 영화, 음악이나 그림조차 심리적인 공감대를 갖고 있을 때 좋은 반응이 있는 것처럼 책을 통해 다른 이들이 위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Q. <두렵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기도 했다>의 내담자들이 현실세계 속 사람이 아닌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별히 이런 설정을 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책에 나오는 내담자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는지요?
아까 말했듯이 실제 인물로 설정하는 것보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인물을 설정할 경우 사람들의 거부감이 좀 덜할 것 같았어요. 좋아하는 작품을 선별한 것이라 모든 캐릭터들이 애착이 갑니다. 신문에 연재한 것을 모아둔 책이기 때문에 고전작품은 꼽지 않았는데 만약 그냥 작성했다면 고전작품의 캐릭터도 추가되었을 것 같네요.
Q. 정신과 의사로서 책을 쓸 때면 때로는 환자의 이야기를 해야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내용을 적당히 각색하거나 조율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특별한 전략이나 방법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른바 '버무리기' 전략이 필요합니다. 누군지 모르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섞게 되죠. 그래서 "선생님 이거 제 이야기잖아요!"라고 말했는데,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시간, 장소, 배경을 바꾸는 방법이 있어요. 나 같은 경우는 글을 쓴 이후 한 번 더 읽어보고 특정인물이 떠오르면 글을 바꾸기도 합니다.
Q. 정신과 실습 당시 보건소 특강에서 '스트레스' 관리가 정신질환의 핵심 요소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환자분들에게 주로 어떤 방식의 스트레스 관리법을 추천하시는지요?
'스트레스 관리'라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말입니다.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기에 'management'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죠. 먼저 무엇이 스트레스인지 인식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은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어요. 진급을 해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로또에 당첨돼도 스트레스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것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생존반응이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죠. 이런 스트레스에 대한 개념교육 이후에는 굉장히 간단해집니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규칙적인 운동, 식사,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당뇨나 다른 질환도 이 세 가지를 강조하는 것처럼, 스트레스 역시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교육 자체가 remind의 역할이 되기도 합니다. 추가적으로 환자마다 포인트를 다르게 적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범불안장애의 경우 환자에게 "극복해서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미뤄라" 라는 말을 합니다. 우울장애 같은 경우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면 반대쪽을 떠올려봐요"라는 식으로 교육하지요. 하지만 기본적인 틀은 규칙 3가지 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운동,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Q. 코로나19 이후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함께 늘어났지만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은 다른 전문 진료과에 비해 높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최근 Mbti나 가스라이팅의 개념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데 이런 개념들은 정신과라는 큰 영역의 일부를 변형해 사용되고 있는 듯 합니다. 왜곡된 부분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반복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런 것이 반복될수록 사회가 정신과를 받아들이고 문턱이 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지는 과정에서는 결국 여러 가지 갈등이 필수불가결할지도 모릅니다. ‘물길’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흙탕물이 때로는 생기기도 하고 여러 갈등과정을 거친 후에 정신건강의학을 사회에서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문턱은 낮아졌지만 정신과 의사나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이 없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런 편견들은 어느 정도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는 어떤 분야의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내가 쓴 마지막 책은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라는 책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를 걷게 되면서 에세이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당시에는 번 아웃에 대한 극복 방법으로 나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썼는데,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문학적인 분야를 써보고 싶습니다.
Q. 작가로서의 목표와 의사로서 각각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과정 지향적으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산티아코 순례길을 800km 걸었던 경험이 계기가 됐죠. 작가로서는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요즘은 임상의사의 활동과 병행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 확보가 가장 절실하고 간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사로서의 목표는 의사로서 죽는 것입니다. 5년 후에는 쉬면서 글도 좀 쓰고, 다른 삶을 1년쯤 살아보고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