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국토·의사 수 모두 따져보니…국민 의료접근 평균거리 '최단'
韓 의료 최상위…의사 늘려 지역·필수의료 격차만 키운 선례 즐비
단순한 OECD 인구 대비 의사 수치와는 달리, 면적과 인구 밀도를 함께 고려한 국민의 의료접근 평균거리는 한국이 가장 가까웠다.
국민이 의료 이용에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것은 '가까운 거리 내에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가 있는지', 즉 의료접근성이다.
한국보다 인구대비 의사 수가 많다고 알려진 OECD 주요 선진국의 인구와 의사 수, 국토 면적을 고려해 의사(임상의사)와 국민 간의 거리를 봤다. 각 국민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의사와 평균 거리는 ▲캐나다 9.83km ▲미국 3.39km ▲프랑스 1.77km ▲영국 1.09km ▲일본 1.09km ▲독일 1.01km였다.
각 국가에서 수도권이나 인기과로 쏠림 없이 의사가 고르게 분포됐고 국민 역시 국토 전역에 고르게 분포됐을 때의 수치다.
본 기자는 각국의 국토에 의사를 고르게 분포시킨 후, 각 의사마다 같은 크기의 진료권역을 설정했다. 마찬가지로 전국에 고르게 분포된 국민이 각 진료권역 내에서 의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거리를 가중 평균치로 계산했다. 이 같은 모형은 서울특별시,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교통학전공) 등의 교통접근성 관련 연구를 참조했다.
의사 수와 인구, 국토 면적 등의 수치는 OECD 통계(2021년 기준)와 세계발전지표 WDI(World Development Indicators) 등을 활용했다. 다만 의료접근성을 '거리'지수로 수치화한 만큼, 진료권역을 넘어 서울로 환자가 집중되는 한국의 특수성과 진료이용 횟수가 많은 국내 특성이 고려되지는 못했다.
OECD 통계 및 한국국가통계(KOSIS)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 수는 13만 2479명(2021), 인구는 5174만 4876명으로, 한국에서 의사-환자 간 평균거리는 ▲0.88km로 나타났다.
선진국에 비해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음은 물론, 분배만 된다면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단위에서도 도보로 10~15분 이내에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촘촘한 의료망이 가능하단 의미다.
실제로 한국은 여러 데이터를 통해 최고 수준의 의료를 여실히 보여준다.
OECD 통계만 봐도 국민당 외래 진료 횟수는 평균 2배를 상회하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고, 이 외에도 짧은 수술 대기시간, 낮은 경상의료비, 회피가능사망률, 영아사망률, 암사망률 등의 지표로 한국의 의료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란셋은 2030년 35개국 예상 평균수명중 한국을 1위국으로 꼽았고, CEOWorld 등 해외 매체도 한국의 의료 수준(의료종합지수)을 100여개국 중 1~2위로 매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이촌향도'에 따른 수도권 쏠림과 필수의료 기피 현상으로 인해 '의사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대두됐다. 이는 최근 뜨겁게 달궈진 의대 정원 확대 이슈로 이어졌으나, 의료계는 한국의 의사 증가율을 고려하면 증원은 의사 과잉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1993년부터 20여년간 우리나라 의사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의사-환자 간 거리는 물론, 인구를 고려했을 때 의사 한 명당 국민(환자) 수도 크게 줄었다. 한국의 인구 의사 수 증가율은 OECD 평균의 1.4배로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 심화를 고려한다면 의대 정원을 현행과 같이 유지한다 해도 의사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상회하는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각 지역의 인구와 지역 의사 수를 살폈을 때도 의사당 인구수와 의료접근 거리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10년 동안 전체적으로 감소했다. 의사 수로만 봤을 때 의료접근성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필수·지역의료 격차로 의대를 증원했던 일본은 현재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의사 수를 늘렸음에도 '쏠림'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탓에 의료 격차만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온 미국과 프랑스 등 국가들도 여전히 부족한 지방 의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의료계는 필수의료 붕괴는 전체 의대생 수가 아닌 의사 분배에 관한 문제라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국민이 원활한 의료를 받기 위해선 정밀한 의사 수급 추계와 더불어 필수·지역의료 환경 개선을 통해 쏠림 또는 기피 현상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현재 한국은 OECD 인구당 의사 수 통계를 주요 근거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전 세계는 의료정책에 있어 전문성과 고도화를 위해 인구당 의사 수라는 단순 수치가 아닌 '의료접근성'이란 개념을 학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사회적 효용을 종사자 수로 평가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국제학회에서 큰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국 의료의 문제들은 '전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열악한 특정 영역'의 '기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