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그것도 예상보다 더 '세게'. 정부는 19년만에 의대정원 2000명을 대폭 확대했다. 적어도 천 자리 '1'은 고수하지 않을까 라는 의료계의 기대 섞인(?) 예측은 '좋아 빠르게 가'를 외쳤던 대통령의 추진력 아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씁쓸한 지점은 정부 의지 관철을 위해, 의사 집단이 철저한 '공공의 적'이 됐단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정원 확대 발표 5일 전이었던 1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 주제 민생토론회에서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 개혁을 일부 반대나 저항 때문에 후퇴한다면 국가의 본질적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 vs 의사' 프레임을 정면으로 내세운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영웅 칭호를 받던 이들이 '일부 저항 세력'으로 전락한 순간이다. 당시 국민이 함께 외쳤던 '덕분에' 구호는 코로나19 임시 선별소와 함께 사라진 지 오래다.
정원 확대 발표 전까지 의사집단은 국민의 머릿 속에서 부지런히 '직역 이기주의'로 점철된 집단으로 성장했다. 정부의 전략이 제대로 먹힌 거다.
정부는 시시각각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문제를 의대 증원과 결부시켰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불편감을 의대 정원 확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심은 것이다. 10년 후에나 의사 자격을 얻을, 필수 의료로 '낙수'한다는 보장도 없는 '2000명'이란 절대적 해결책을 아주 매력적으로 포장했다.
"이제 코로나19도 아닌데…협상이 될까요?"
정부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작년 의료계가 '파업'을 처음으로 입에 올린 직후였다. '쓸모'를 다한 의료계와 협상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노골적 표현. 편한 자리였지만 의료계에 대한 속내가 고스란히 녹아있단 생각에 흘려 들을 수 없었다.
시계를 2020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9·4 의정합의로 접었다. 코로나19 창궐 위기 상황, 정부는 의료계의 의견을 존중해야 했다. 급했기 때문이다.
2002년 사스 사태. 7년 뒤 2009년 신종플루 창궐. 6년 뒤 2015년 메르스 사태. 5년 뒤인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왔다.
정부가 다시 '급한 상황'이 온다면. 그날이 온다면. 정부는 다시 의사를 '일부 저항세력'에서 영웅 자리에 앉힐까? 일부 저항 세력들은 순순히 '영웅'의 자리에 또 앉을 것인가?
의사집단은 엘리트 집단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둔하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하지만 반복되는 토사구팽 상황. 그 속에서 둔한 의사들 역시 학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