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증원 합의할 이유는 없다" 발언에 부글부글
의대정원 발표 후 행정명령 남발부터 "PA 활용하겠다"까지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반대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집단행동인 듯, 집단행동 아닌, 집단행동 같은 '사직서' 제출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전국 의대생들은 '동맹휴학'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처럼 젊은의사를 포함한 의료계의 반대 심리는 오히려 정부가 증폭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료법에 근거해 의사 표현 자체를 차단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무작위로 발동하는가 하면 의료공백 발생을 막기 위해 불법 영역인 PA를 활용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고 대외적으로 했다.
한 의사단체 임원은 "10년 후 의사 숫자 늘리는 대책보다 지금 당장 나오는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갈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데 보이지 않는다. 의사수를 대규모로 늘린다는 발표를 중심에 놓고 개혁을 하겠으니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라며 "그러면서도 집단행동은 걱정되는지 구체적인 처벌 내용을 나열하며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의사들을 자극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사직서를 낸 한 종합병원 신경외과 과장도 "최고 기득권의 고위 관료들이 너무나도 쉽게 명령한다, 취소한다는 등으로 의사면허와 자격을 하찮게 여겼을 때 기분은 비참했고 분노가 가슴에서 터질듯했다"고 한탄했다.
[의협신문]은 의료계의 그라데이션 분노를 부른 보건복지부의 주요 움직임과 발언들을 짚어봤다.
■"의사 수 증원, 의사와 합의할 이유 없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내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더 늘리겠다고 기습발표했다. 의료계는 일방적이라고 비판했고,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해 지난 1년 동안 28차례 진행하며 대화했고, 이 밖에도 다양한 집단의 의견을 들어왔다고 반박했다.
충분한 의견수렴을 앞세우고 있지만 사실 의대정원 확대는 이미 예정돼 있었던 사안. 박민수 제2차관이 지난해 12월 기자들에게 "정부가 의사 수를 증원하는 데 의사와 합의할 이유는 없다. 이는 정부 정책이다. 법에 합의하라고 돼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데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의대정원 확대 자체를 반대하는 의료계와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 대응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의료계는 박 차관의 발언은 '망언'이라고 규탄하며 즉각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2000명이라는 규모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의료현안협의체에서도 구체적인 숫자가 나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집단행동 교사 금지 및 사직서 수리 금지 '행정명령' 남발
보건복지부는 의대정원 확대 규모를 발표한 당일 즉각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경계하며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리고 이례적으로 의료계를 압박했다.
의료법 59조를 앞세워 주요 의사단체 수장 등에게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행정명령서를 발송했다. 행정명령을 어기면 면허취소, 형사적 처벌 등이 따를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실제로 시도의사회장, 진료과의사회장 등은 7~8일 일제히 행정명령서를 받아들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을 막겠다며 전국 수련병원에는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 조치에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2차관을 대검찰청에 형사고발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도 장차관을 협박 및 강요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업무개시명령 문자 송달 위해 전공의 연락처 확보할 계획"
보건복지부가 중수본까지 꾸린 배경은 의사들의 집단 움직임을 코로나19 대유행 때 비상 상황과 같다고 보고 있다. 설 연휴를 전후로 언론 브리핑을 정례화한 것도 비상 상황에 대응해 나가는 정부의 움직임을 보다 명확하게 알리기 위함의 일환이다.
박 차관은 지난 8일 브리핑에서 의료진이 현장을 이탈하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텐데 이는 문자메시지 전달만으로도 효력이 있다고 했고 문자 전달을 위해 전공의 연락처를 확보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발언으로 전공의를 자극했다.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것은 사찰과 다를바 없다는 반박에 부딪혀야 했다.
당시 박 차관은 "업무개시명령은 행정절차법에 따라서 본인에게 반드시 송달이 되어야 한다"라며 "당사자에게 그 내용이 도달하지 않으면 무력화된다는 말이 있는데 전화기를 꺼놔도 문자를 보내면 송달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자 송달을 위해 1만5000명 전공의 연락처를 확보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수집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박 차관은 14일 브리핑에서 "보건복지부가 하는 모든 행정은 법에 근거를 두고 하는 것"이라며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행위도 근거 없이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대면진료 전면 확대하고 PA 역할 강구하겠다"
박 차관은 1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의료계가 집단행동에 돌입했을 때 대응책을 설명했다. "환자가 정상적인 진료를 받기 힘든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라면서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만든 비상진료 대응계획을 공개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고 PA라고 불리는 간호지원인력이 있는데 이들이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모두 의료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책인데다 특히 PA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여있는 만큼 인력 활용에 신중함이 필요한 부분이다.
박 차관은 의료계 시선을 의식한 듯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의사 단체행동 때문에 의료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정부가 가용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책"이라며 "제도화까지 하려면 법률이 개정돼야 하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한 것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상진료대응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수단 중의 하나"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