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으로 점철된 한국 의대정원, 외국 사례 살펴보니
결국 정부는 의료계의 우려와 반발 속에 의대 정원 증원을 강행하고 있다. 이에 크게 낙심한 전공의들은 사직하고, 의대생은 동맹휴학이란 극한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는 의사의 전유물 아니다'라는 뉴스 기사들은 정부의 계획에 힘을 실어 주고 있지만, 이 문제가 의사의 전유물이 된 적은 없다. 2000년 의약분업과 2020년 의료정책 추진에 대한 반대 파업에서 국민들에게는 '의사의 전유물'로 깊이 각인되었겠지만, 의사의 전유물이라면 파업을 통해 정책을 저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의사 정원 등 의료계 문제를 다루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료계 전문가를 철저히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정부의 뜻대로 결정하는 절차적인 타당성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반면에 미국, 일본 및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는 의사 수 확대 정책이 갈등 없이 진행되고 있음은 우리 정부가 부끄러워하여야 한다.
또한 일시에 큰 규모로 늘어난 학생 수를 감당할 수 없는 교육 여건은 부실 교육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담당하는 의사 양성의 큰 목표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현대 의학교육은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할 뿐만 아니라 높은 비용을 감당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 한국 의대정원, 꼭 이래야만 했나
우리나라 의료인력정책을 다루는 기구는 앞서 언급한 나라와 큰 차이가 있다.
네덜란드와 미국의 경우 이들 기구는 국가 자문기구로서 상설화되어 있고 독립성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결정 과정은 대단히 투명하다.
네덜란드 의료인력계획 자문위원회(Capaciteitsorgaan)는 1999년도 설립 후 가장 먼저 의료인력 수급 예측 모형을 개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 부족(또는 과잉)을 방지하기 위한 의대 정원, 전공의 교육수련 등의 정책을 담은 정부 권고안을 3년 단위로 제안하여 의사 수급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네덜란드의 사례는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모형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상설화되어 있지 않고 주요 사안이 있을 경우 임시방편적으로 개최가 되는 형태이지만,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이들 3개 국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위원회 구성에 있는데, 의료계 위원의 수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의료 현장을 이해하는 의료계 전문가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함으로서 전문성과 책무성을 가지고 의사 인력 관리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성과를 내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 걸릴 수 있지만 의사 수를 갈등 없이 늘려 왔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의사 수 확대와 함께 필요한 전문 과목별로 매우 정교하게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담당 기구는 참여정부 시절 법제화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인데 그 구성에서 의료계 위원 수는 각각 25명 중 6명(24%), 13명 중 5명(38%)에 지나지 않고, 그 개최도 2003년, 2018년, 2021년, 2023년에 4회에 불과하며 위원회 지속 기간도 매우 짧다.
반면 일본의 경우 의사 수 확대를 위해 2015년 '의사수급분과회'를 새로이 구성하여 현재까지 1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며, 의대 정원 증원, 지역의사제 등을 의료계와의 갈등 없이 조화롭게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독단으로 의대 정원 증원이 결정된 현 대한민국의 의학교육자로서 이들 국가들이 갈등을 최소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다시 한번 부럽기만 하다.
■ 2000명 증원, 현장이 감당 못 해
부실은 또 다른 부실을 키울 뿐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를 비롯한 의학교육계에서는 현 입학정원의 65%에 해당하는 2,000명 증원은 교육 여건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수용하기에 불가능한 숫자이므로, 입학정원 규모, 증원 방식, 증원 시기 등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과대학은 기초의학 교육과 연구을 담당하는 기초의학 교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임상의학 교수의 경우 과중한 진료와 연구 부담으로 오는 탈진으로 학생 교육 현장에서 이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몇몇 의과대학을 제외한 많은 의과대학이 교육시설과 필요한 장비 마련에 재정적인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모두 어려운 환경 속에 있으며, 지방의 경우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특히 사립대학의 취약한 재정은 부실을 더욱 키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40개 의대 중 사립의대가 30개로 75%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81개 의대 중 사립의대는 30개로 36%에 지나지 않지만, 의사 양성이란 공익성 차원에서 국립의대뿐만 아니라 사립의대에도 재정적인 지원을 크게 하고 있다. 2022년 사립대학에 지원하는 정부 보조금은 1개 대학 평균 19억 5천만엔(177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재정적인 지원은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의사 즉 지역의료 담당 의사, 필수의료 담당 의사, 기초의학자,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것이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분출된 의학교육의 다양한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정부의 올바른 역할을 명확히 보여 준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정책 너머에 있는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양질의 의사 양성'이라는 본질적인 목표를 바로 보고 나아가길 대해 기대한다. 견월망지(見月亡指)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