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증원 규모 협상 불가능한 부분"... 醫 "그게 무슨 협상인가"
실습 질 저하 우려에 명확한 답변 못해 "힘 합치면 극복 가능"?
정부와 의료계가 다시 한번 TV '토론'으로 맞붙었다.
이번에는 2:2가 아니라 1:1이다.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KBS1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에서 '의대 증원 논란의 본질을 묻다'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2000명'이라는 급진적인 의대정원 증원을 놓고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정부는 단순히 강의식 같은 인프라 확보가 아니라 '실습'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지역·필수의료 기피가 의사 수 부족에서 온 것이라며 내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기습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 토론에서도 의료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며 2000명 증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박민수 차관은 "지난해 1월 의대정원 증원을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했다"라며 "2000명이라는 숫자를 한 번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데 최종 의사결정을 하기 전까지 굉장히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계에 흥정하듯이 2000명 받을 것인가, 1000명으로 줄일 것인가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의견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증원 규모를 줄이거나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논의를 하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필수 지역의료 기피에 따른) 충격이 더 커지게 된다. 협상을 해서 양보를 하고, 밀고 당기고 할 과제는 아니다"라며 "증원 속도를 조정할 것인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지에 대해 어쨌든 만나서 논의를 해야 하는데 논의를 하기도 전에 그냥 뛰어나가서 답답하다"고 밝혔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이 같은 태도가 협상을 가로막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협상은 상대가 수용가능한 카드를 던졌을 때 가능하다. 저희는 2000명이 과하다 많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부는 한 발도 물어설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이 이 모든 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유연성 없는 정부 태도를 비판하며 의사 수를 늘려도 기피 영역으로 유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택우 위원장은 "협상이나 협의는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를 던졌을 때 가능하다. 물러설 수 없으니 다른 것으로 해결하자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며 "필수의료 패키지는 앞으로도 논의해 나갈 수 있지만 2000명이라는 숫자는 한 발도 양보할 수 없다는 정부의 태도가 협상의 걸림돌이다. 정책적 유연성을 가져야 협의에 나설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그동안에도 의사는 매년 3000명씩 나와서 20년 동안 6만명이 늘었다"라며 "그 인원으로 충분하게 필수·지역의료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의사수 부족이 문제가 아니고 의료시스템,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현상이 문제다"고 짚었다.
# 2000명 확대, 교육의 질 담보 가능할까
의료계는 급격하게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양질의 교육 불가능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의대를 갖고 있는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 수요 조사가 가장 안타까웠고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라며 "대학 입장에서 수요 조사를 하면 당연히 신입생을 많이 받는 게 좋다고 할 것 아닌가. 국립대병원장들은 10개 병원에 필요한 인원이 580명 정도라고 정부에 이야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2000명이라는 숫자가 나온 게 의아스럽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대 학장과 대학 본부 입장이 확연하게 차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수요조사 후 현장검증 과정에서도 검증반 인원들은 단순히 건물을 짓고 있으면 (학생들) 수용이 가능하겠다는 등 겉만 보고 돌아가는 식이었다고 하더라. 기초의학 교수는 구하기도 어렵다는데 어떻게 충분하다고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 경험까지 꺼내 의대 교육 중에서도 특히 '실습'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김 위원장은 "80년대 진주에 있는 국립의대를 다녔는데 당시 신설 의대였다"라며 "해부학 실습에서 카데바(해부용 시신)는 6구가 있었고 거기에 100명 이상의 학생이 붙었다. 카데바 한 구당 15∼20명 정도가 보는 것인데 자리가 없어 의자 위에 올라가서 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의실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카데바도 그렇지만 병원 실습에서도 수술장 등에 들어가는데 많은 인원이 들어가서 실습하는 게 과연 양질의 교육인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정원이 늘어나도 충분히 교육이 가능하다고 확신하면서도 실습 교육의 질 저하에 대해서는 선뜻 자신에 찬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박 차관은 "의대 학장과 대학 총장 사이 의견이 다른 부분이 분명 있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강의실이 다 찼는데 공간이 없으면 리노베이션을 하는 등 대학에서 투자 의지를 보였다. 정부는 용도 변경 가능 여부까지 확인했다. 공간이 없는 곳은 제외했다. 교수 채용이 어려운 것도 사실인데 의사가 아닌 기초 학문 쪽에서 사람들을 채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시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라며 "정부도 적극 나서서 카데바를 구할 수 있도록 힘을 합치면 극복 가능할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병원을 떠난 의사들을 향해 쏟아지는 국민의 시선에 대해서도 호소했다.
그는 "의협은 국민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단체인데 이번 정부 정책에 대해 도저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이런 선택을 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며 "의료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열정을 갖고 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폄하하려는 게 전혀 아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송구하고 빠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향적으로 의견을 들어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국민 불안은 정부가 먼저 압박하고 조장한 부분이 있다. 구체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고 개별적 판단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데 겁박해서 무르겠다는 정부 모습이 옳은지는 모르겠다"라며 "전공의들은 개별적인 판단하에 움직이고 있다. 전공의는 피교육생으로 이들이 의료현장을 떠났다고 의료시스템이 붕괴된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 "이전에도 떼를 썼으니 이번에는 본때를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의료계에) 협상을 요구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