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외과 지망 25→4%, 필수의료 지망생 중 77% 이탈…일반의 희망도 급증
한국 의료 환경 미래? 압도적 비관…"해외서 수련 받겠다" 1.9→41.3%
정부가 필수의료 소생을 목적으로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발표했지만, 오히려 필수의료(바이탈)를 지망하던 의대생들이 대거 이탈하는 시발점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의료 진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대생은 정책 발표를 전후로 16.1%에서 80.6%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의대생 단체인 투비닥터(To Be Doctor)가 1일 밝힌 전국 의대생 설문 결과에 따르면 증원 정책 발표 전 필수의료를 지망하는 의대생은 83.9%였으나 발표 후 19.4%로 급락했다. 수치로만 보면 필수의료를 진로로 고려하던 의대생 중 77%가량이 이탈한 것이다.
해당 설문은 지난 3월 20~25일 닷새간 시행됐으며 859명 학생이 응답했다. 이준서 교수(인천성모병원 외과)가 주도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한국의학교육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앞두고 있다.
희망 전공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내과·외과 지망은 25.6%에서 정책 발표 이후 4.5%로 추락했다. 정책 발표 전에는 인기 전공과가 내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외과 순이었으나 정책발표 후로는 정신건강의학과, 피부과, 안과 순으로 역전됐다.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가 모두 1% 미만으로 나란히 최하위권으로 내려갔다.
전공과 선택을 떠나 수련을 아예 하지 않고 일반의(GP)가 되겠다는 학생들도 급증했다. 0.8%에 그치던 일반의 희망은 정책 발표 후 무려 26.5배로 뛰어 21.2%를 차지했다.
인턴·전공의 수련이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도 8.6%에서 67.6%로 8배가량 증가했다.
전공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단 응답도 16.3%에서 37.4%로 증가해 의대생들이 정책 발표 후 전공 선택에 혼란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전공 희망을 변경한 이유는 ▲과에 대한 부정적 전망 예측(29.3%)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패키지에 대한 반대(24.7%) ▲의사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인식과 존중 부재(20.9%) ▲소송에 대한 걱정(11.5%) ▲근본적 원인 해결에 대한 정부 의지 부재(4.0%) 순이었다.
의료 환경에 부정적 전망이 커진 만큼 해외 수련을 고려하는 비중도 급증했다. 정책 발표 전에는 1.9%에 불과했으나 발표 후에는 41.3%로 22배 가까이 뛰었다. 해외 진출 고려하는 이유는 '한국 의료 환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79%로 압도적이었다. 이들 중 67.1%가 미국에서, 24.7%가 일본에서 수련받기를 희망했다.
설문에 응답한 의대생 한 명은 "국가가 의료 현실을 너무 알지 못하고 대화가 힘들기 때문에 의료환경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의대생은 "의료 개혁이 정치 수단으로 쓰이는 지금 같은 사태가 계속 일어날 것 같다. 국내에서 의료를 행한다면 안정적으로 의료를 해나갈 수 없을 것 같다"며 "해외는 필수의료에 대한 인식이 좋기에 보상도 잘 이뤄지고 좋은 환경에서 수련이 가능하기에 해외 수련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비닥터(대표 김경훈 서울아산병원 사직 전공의)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시행으로 오히려 의대생들의 필수의료 지원 의사와 수련 필요성 인식이 전복됐다. 필수의료를 늘리겠다는 의도로 발표한 정부 정책이 정반대 결과를 낳고 있다"며 "향후 6년간 의료 현장에서 역할을 다할 의대생들이 당장 올해부터 일반의, 해외 진출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책임자인 이준서 교수도 "이 같은 의대생들의 진로 인식은 앞으로 의료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라며 "정부는 이번 설문결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투비닥터는 비영리 의대생 단체로 전국 18개 의대의 의대생 및 전공의 40여명이 소속돼 있다. 매거진과 유튜브 영상을 통한 의대생 진로 고민 해소를 주요 콘텐츠로 하며 '투비닥터 진로 세미나', '제10회 젊은의사포럼' 등 의대생을 위한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