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부당청구 이유 업무정지 시 환자 생명·신체 안전에 위험 발생 우려"
김준래 변호사 "환자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업무정지처분만 고집 잘못"
대학병원에서 전원됐거나 다른 요양병원에 가지 못하는 CRE 감염증 환자가 137명이나 있고,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은 혼수상태임에도 보건복지부가 부당청구를 이유로 요양기관에 대해 업무정지처분만 고집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업무정지처분 근거가 분명하더라도 업무정지처분을 갈음해 과징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살펴보지 않았고, 입원중인 다수의 CRE 감염증 환자들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A요양기관은 대학병원으로부터 전원된 중환자 및 카바페넴 항생제 내성균(CRE) 관련 감염 환자에 대해 입원치료를 하는 기관이다.
A요양기관의 환자 중에는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 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으로 전원돼 치료받기 어려운 CRE 관련 감염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2018년 11월 12∼16일까지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의료용 산소의 단가를 부당청구했다는 이유로 요양기관에 대해서는 30일, 의료급여기관에 대해서는 20일의 업무정지처분을 했다.
이에 A요양기관은 단순한 착오청구에 의한 것이고, 환자 대부분이 생명유지에 중대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업무정지처분이 과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업무정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2022년 4월 14일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은 적법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행정법원은 "병원이 부당청구에 대한 사실확인서에 서명한 점, 그리고 병원의 업무정지로 인해 환자의 불편이 따르더라도 근거 법령에 의한 업무정지처분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A요양기관은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즉각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A요양기관은 "단순히 착오로 요양급여비용을 잘못 청구한 것에 불과하고, 사익을 위해 고의로 의료용 산소에 대한 단가 책정을 잘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보건복지부는 업무정지처분을 갈을해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었음에도 업무정지처분을 내린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A요양기관의 부당청구에 의한 행정처분 및 현지조사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업무정지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A요양기관에는 137명의 환자가 입원중이고, 모두 다른 병원에서 전원되어 온 CRE감염증 환자들인데, 입원환자들 중 대다수가 70세 이상의 고령 환자들인 점, 그리고 입원환자 중 52명이 혼수상태에 있는 점, 기본적으로 격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CRE 감염증 환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종합병원이나 요양병원이 부족한 점을 고려한 것.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99조 제1항은 업무정지처분이 해당 요양기관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심한 불편을 주거나, 보건복지부가 정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업무정지처분을 갈을해 과징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 및 고압산소장비 등에 호흡을 의존한 채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를 고려하면, 업무정지처분으로 인해 환자들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업무정지처분은 위법해 1심판결을 취소한다"고 지난 2월 14일 판결했다.
이번 2심 사건에서 A요양기관 변호를 맡은 김준래 변호사(김준래법률사무소)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태도는 헌법과 현행법을 부정하는 위법한 처사"라며 "대한민국 헌법은 생명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고,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보법에는 환자에게 심한 불편을 주는 경우 업무정지 대신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환자의 불편을 넘어, 130여명의 환자가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중대한 상황임에도 업무정지처분만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준래 변호사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2심을 수용하지 않고, 반드시 업무정지처분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입장에서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상황"이라면서 "이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정부의 올바른 태도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