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20년 교직 이렇게 끝날 줄은" 어느 사직 교수의 하루

현장르포"20년 교직 이렇게 끝날 줄은" 어느 사직 교수의 하루

  • 김미경 기자 95923kim@doctorsnews.co.kr
  • 승인 2024.05.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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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장환 충북대병원 교수 24시간 동행취재 "제자 양성과 지역의료의 꿈, 정부가 앗아가"
빅5 펠로우·교수 자리 내려두고 지역의료 왔는데…"선승인 후시설, 80년대 교육 재래"
여전히 투쟁 중인 비대위 교수들, 집행정지 항고결정에 마지막 희망 "17일이 사직 기점"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미래 희망을 잃은 전공의들이 떠나고, 4배 증원이란 직격탄을 맞은 충북의대 교수들은 사직을 불사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 치열한 싸움의 최전선에 배장환 교수가 서 있다. 서울에서 교수를 지냈음에도 충북에 대한 애정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20년간 제자 교육과 지역의료 발전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교육이 불가능한 수준의 증원으로 인해 두 가지 꿈을 모두 빼앗겼다.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배장환 교수는 충북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심장내과 교수로서 '환자들의 생명'과 '충북의대 교육'을 지키기 위해 두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 [의협신문]은 5월 7일 오전부터 다음날까지 배장환 교수의 치열한 24시간을 동행하며, 희망이 사라져가는 지역의료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 봤다.

배장환 교수가 심혈관조영실에서 스텐트 시술을 마친 후 덧가운을 벗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배장환 교수가 심혈관조영실에서 스텐트 시술을 마친 후 덧가운을 벗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아무도 없어. 아무도…"

오전 8시, 매일 아침 전공의들과 미팅하던 시간이다. 배장환 교수는 텅 빈 회의실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교수 옆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앉아있던 자리도 역시 비어있다.

지난 2월 자리에 붙인 본과 2학년 수업 시간표는 돌아오지 않는 학생들을 기다리듯 그대로다. 예정대로 강의했다면 지금쯤 이미 시험을 봤을 터다. 병원 내에 있는 본과 3·4학년 강의실도 비어있긴 마찬가지다. 들어간 지 오래돼 비밀번호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배장환 교수는 "실은 지금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내가 정말 교육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부쩍 고민이 많았다"며 "제자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아, 내가 가르치는 걸 굉장히 좋아했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다른 교수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파견된 공중보건의사들에게 일을 시키기보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라고 전했다.

병원 내 본과 3학년 강의실을 바라보고 있는 배장환 교수. ⓒ의협신문 김선경
병원 내 본과 3학년 강의실을 바라보고 있는 배장환 교수. ⓒ의협신문 김선경

배장환 교수는 한 달도 더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가장 큰 사직 이유는 "차마 학생들에게 '이런 환경에서도 너희를 잘 가르치겠다'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록 규모는 작은 미니의대라도 열심히 가르쳤고, 질 좋은 의사들을 배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환자나 연구비 등 사직 전 남은 문제를 처리하며 5월 중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교육 기능을 상실한 반쪽짜리 교수로 대학병원에 있는 것이 괴로워 2차 병원으로 이직할 계획이다.

<span class='searchWord'>스승의날</span> 제자에게 받은 액자가 배장환 교수 연구실 책장 한편에 놓여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스승의날 제자에게 받은 액자가 배장환 교수 연구실 책장 한편에 놓여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그의 꿈이었던 제자들의 빈 자리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오전 진료에 들어간다. 오늘도 진료뿐 아니라 학회 회의, 비대위 회의, 당직까지 할 일이 산더미다.

오전 10시, 협심증 환자의 심장 영상을 살핀다. 심장 하부 쪽으로 혈류가 잘 통하지 않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관상동맥 쪽부터 막힌 듯하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음압심혈관조영실에 들어선다. 환자의 심장에 새로운 생명줄이 되어 줄 스텐트를 삽입한다.

배장환 교수는 충북지역 심장질환 치료에 각별한 열정이 있었다. 그의 주도로 2010년 충북대병원은 권역별 심뇌혈관질환센터로 지정받았고, 연 180일 당직을 서가며 지역 심장환자들의 생명을 지켜왔다. 급성심근경색증 환자의 관상동맥중재시술을 응급실 도착부터 52분 만에 마치는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사진=김선경 기자]ⓒ의협신문
배장환 교수는 연 180일 당직을 서가며 지역 심장환자들의 생명을 지켜왔다. 그의 노력으로 2010년 충북대병원은 권역별 심뇌혈관센터로 지정받았다. [사진=김선경 기자]ⓒ의협신문

은퇴 전까지는 심장질환자들이 서울에 가지 않고도 충북대병원에서 심장이식 등 최종치료를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진료뿐 아니라 충북의대 교수 비대위 일로도 바쁘다.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에게는 진료를 보는 중에도 의대 증원 현안과 관련해 연락이 쏟아진다. 

오후 12시 30분, 느긋하게 점심 먹을 시간을 아껴 비대위 회의를 한다. 교수 6명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의대 정원 현안과 언론 동향, 재판부 동향 등을 공유한다. 시위 여부와 항의 현수막 교체도 논의했다.

충북대의대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이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으며 회의를 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충북대의대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이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으며 회의를 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충북의대는 기존 정원 49명의 4배를 넘는 200명을 배정받았다. 충북의대 학생·전공의·교수들은 수차례 시위를 벌이며 치열히 항의했으나, 결국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125명 정원으로 제출됐다. 모든 교육환경에 49명에 맞춰져 있던 충북의대로선 100명이든 200명이든 교육이 불가능하다.

의대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결정을 앞두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배장환 교수는 여러 교수들과 변호사와 통화하고 나서, 배정위원회에 충북도청 공무원이 참석했던 것과 관련해 오늘 중 탄원서를 내기로 했다. 오후 동안 100명의 서명이 순식간에 모였다. 의대정원이 거의 확정됐음에도 아직 떼어내지 못한 시간표처럼, 한 가닥 희망을 부여잡은 교수들은 마지막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다.

ⓒ의협신문 김선경
근조 리본이 달린 배장환 교수의 가운이 교수실 한켠에 걸려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회의를 마치고 교수 연구실로 향하는 길, 복도에는 충북대병원이 배출한 내과 전문의들의 졸국 사진이 기수별로 붙어있다. 배 교수가 수련하던 80년대 교육환경으로 퇴보하려는 정부에 분노가 치솟는다. 

배 교수는 "정부가 40년 전의 '선승인 후시설' 의학교육을 지금이 재현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1980년대는 교육환경을 마련하기도 전에 일단 의대부터 우후죽순 짓고 보던 시절이었다. 수련환경이 열악해 다른 병원으로 수련을 보내기도 했다.

충북대병원은 1985년 충북의대 내과학교실이 열리고 6년 후에야 개원했다. 1층은 응급실이 차지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조차 없었다. 환자가 오면 들것에 매고 낑낑대며 3층까지 옮기던,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2025년 말도 안 되는 증원이 가져올 재앙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내과학 교수실 복도에 1996년부터 매해 촬영한 내과학교실 단체사진이 걸려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내과학 교수실 복도에 1996년부터 매해 촬영한 내과학교실 단체사진이 걸려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사진 속의 충북의대·충북대병원 출신 전문의 상당수는 충북대병원에 재직 중이다. 빅5 병원에서 펠로우나 교수로 있던 이들도 충북 지역 의료를 발전시키겠다는 뜻으로 돌아왔다. 배장환 교수 역시도 서울대병원 펠로우를 거쳐 경희대병원 교수를 지내다가 2005년 충북대병원으로 왔다. 

ⓒ의협신문 김선경
ⓒ의협신문 김선경

배 교수는 "우리 병원(충북대병원)을 우리 대학 출신이 아니라도 오고 싶을 정도로 키우고 싶었다"며 "지역의료를 지키는 이들은 빅5 병원에서 수련하고 채용하려 했음에도 사명감과 애정으로 지역에 와서 자발적으로 헌신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돕지는 못할망정 초를 쳤다. 충북 의료 발전을 위해 열정을 쏟아부었는데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분개했다.

ⓒ의협신문 김선경
한밤중 병동 당직중에도 수시로 중환자실에 들러 환자를 돌봐야 한다. ⓒ의협신문 김선경

#진료, 비대위 업무, 기자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로 오후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오후 5시 30분 심장학회 회의, 7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의까지 마치자 당직이란 이름의 사투가 시작된다.

오늘 밤 환자 100여명의 안전이 그에게 달렸다. 종양내과, 심장내과, 소화기내과까지 세 개 병동을 도맡고 상황에 따라 중환자실과 응급실도 가야 한다. 

당직 다음 날 외래진료는 없지만 입원환자와 중환자 진료가 있다. 즉 내일 저녁이나 돼야 퇴근해서 잘 수 있다. 그 다음날이면 심뇌혈관센터 당직이다.

병동 당직 중 응급콜을 받고 환자를 보고 있는 배장환 교수. ⓒ의협신문 김선경
병동 당직 중 응급콜을 받고 환자를 보고 있는 배장환 교수. ⓒ의협신문 김선경

밤새 환자 콜이 100번은 넘게 울린다. 종양환자들로부터 호흡곤란, 발열, 통증 등 연락이 쇄도한다. 잠시 짬이 나 누워도 계속 콜이 오기에 잠들지는 못 한다. 선잠이 들더라도 누군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만 들리면 화들짝 놀라 깬다. 환자 한 명을 처치하러 달려가자마자 다른 곳에서 콜벨이 울리는 연속이다.

L-튜브가 빠진 환자, 빈맥 환자, 의식이 소실된 뇌종양환자가 밤사이 연달아 발생했다. 상태가 안 좋은 환자가 있는 날은 날밤을 새야 한다. 온 병동을 누비는 그의 스마트워치는 자정 전에 1만보를 기록했다.

ⓒ의협신문 김선경
자정이 가까워오지만 한시도 쉬지 못하고 병동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콜을 받는다. ⓒ의협신문 김선경

#새벽 2시 40분이 돼서야 당직실에 들어간다. 그가 향하는 곳은 침대가 아닌 컴퓨터 앞이다. 잠들지 못한 채 업무를 이어간다.

지쳐가는 체력보다도 힘든 것은 앞날의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이날 중환자실 당직을 선 펠로우는 "사직을 고민했지만,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전공의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가 고민이라고 했다. "전문의는 이미 많은데 다만 힘든 필수의료를 할 전문의가 없을 뿐"이라며 정부가 '오진'했다고 지적한 그는 "전공의들에게 내년에라도 돌아올 건지, 그 대답이 무서워 차마 물어보질 못했다"고 털어놨다.

새벽녁 당직실. 잠들지 못한 채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새벽녁 당직실. 잠들지 못한 채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전쟁 같던 밤이 지나가고 동이 터온다. 직원 식당에서 5분 만에 아침밥을 해치우고 병동으로 향한다. 퇴근하는 나이트 간호사들을 보내며 다시 오전 회진을 돈다.

"대학병원의 장점은 제자가 동료가 된다는 것이죠." 사제관계였던 충북대병원 동료 의사와 환한 웃음으로 아침 인사를 나누고 한 말이다. 그 대학병원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진=김선경 기자]ⓒ의협신문
배장환 교수가 충북대의과대학 시절 은사인 박길선 영상의학과 교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선경 기자]ⓒ의협신문

심장내과 교수로서 격무를 버텨왔던 것은 오롯이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의료의 꿈을 잃고 이렇게 떠날 줄은 몰랐다. 배 교수는 동행취재 동안 자신의 꿈을 앗아간 정부에 원망과 분노를 토로하기도 했다.

충북대병원은 이미 교수들이 서넛씩 떠나갔다. 배 교수 역시 빠르면 오는 17일을 기점으로 20년의 병원 생활을 정리한다. 17일을 기일로 정한 것은 의대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결정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그 희망마저도 꺾인다면 17일 부로 교수들이 대거 떠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의협신문 김선경
전쟁 같던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왔다. 다시 오전 회진을 돌기 위해 병동으로 향한다. ⓒ의협신문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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