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증 두고 다니는 20대도, 미디어·모바일에 약한 60대도 "불편한데 왜?"
신분증과 앱으로 본인확인? "건강보험 앱, 사진도 없어 1분이면 뚫린다"
병의원 신분증 확인이 의무화된 20일, 환자들은 남녀노소를 할 것 없이 첫날부터 불만이 터져나왔다.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환자 불만을 받아내느라 의료기관도 난색을 표했다.
몸이 아파 내과의원을 찾은 20대 남성 A씨는 출입문에 들어서자마자 2초 만에 도로 나갔다.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포스터를 발견해서다. 모바일 앱으로도 가능하다며 직원들이 황급히 불렀지만 A씨는 이미 부리나케 나간 후였다.
"신분증이 갑자기 필요한가요?" 20대 여성 B씨도 내원하자마자 당황했다. B씨는 요즘 젊은 세대답게 신분증을 들고 다니지 않은 지 오래다.
직원의 설명에 따라 모바일 건강보험증 앱을 설치했는데 불안정한지 대여섯 번은 꺼지길 반복했다. 마침내 앱을 정상적으로 구동했는데 '또' 본인확인이 필요하다. 자주 오던 의원인데 접수에만 시간이 5분은 걸렸다.
B씨는 병의원 본인확인 강화와 관련해 "SNS 홍보를 보고 알고는 있었는데, 평소 민증을 들고다니지 않기도 하고 막상 해보니 상당히 번거롭다"고 했다.
특히 젊은 세대보다도 어르신들의 불편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B씨는 "미디어와 SNS에 익숙한 젊은 세대라면 모를까, 젊은 가족이 없는 어르신들은 민증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알기도 즉석에서 앱을 설치해 인증하기도 상당히 어려우실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엄마와 같이 자주 의원을 찾았다는 B씨는 "엄마가 왔다면 굉장히 어려워하셨을 것 같다"며 "어르신 중에는 피처폰을 쓰는 분들도 많고 당장 집 앞 거동이 어려운 분들도 많다. 이제까지 편하게 잘해오다가 왜 갑자기 불편을 자초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여길 5년 넘게 다니고 있는데!"
60대 남성 C씨는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설명에 연신 불만을 토로했다. 직원 설명에는 "뉴스를 못 봤다. 다 등록이 돼 있을 거고 매일 다니는 곳인데 본인확인이 또 왜 필요하느냐"며 의료기관을 탓하기도 했다. C씨가 연신 한숨을 내쉬자 환자 대기실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60대 여성 D씨는 다행히 신분증을 들고 왔다. 그런데 신분증에는 젊을 적 사진이 있다. 해당의원에서 일하는 E씨는 "어르신들은 민증 사진을 갱신한 지 오래된 경우가 많고, 젊은 분들도 메이크업이나 헤어스타일만으로도 사진과 상당히 달라보이는 경우가 많다. 사진과 어느 정도 달라보여도 말을 하기 애매하다"며 "더구나 모바일 건강보험앱에는 사진이 아예 없으니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본인확인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가족이나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건강보험급여를 받는 일을 방지한다며 제도를 시행했지만, 오히려 모바일앱이 도용의 수단으로 굳어질 거란 지적이 나온다.
기자가 실제로 모바일 앱을 깔아 타인의 명의로 인증을 받는 데에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6자리로 된 인증 번호를 보내주는 것으로 끝이다. 타인의 명의로 QR코드를 띄워 직원에게 건네니 정상적으로 접수됐다. 의료기관 측에서는 이 이상으로 본인확인을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해당 의원을 운영하는 성혜영 원장(성남·연세생명나무내과의원,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본인확인과 관련해서는 기술적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며 "실질적으로 건강보험 명의도용을 막을 수 없는 정책에 홍보 비용과 각 의료기관의 QR코드 단말기 구입비 등이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전했다.
성혜영 원장은 "재진환자도 대기시간이 5분, 10분으로 이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잠깐 10분 정도 짬을 내 내원하는 직장인 분들도 많이 번거로워 하신다"며 "계도기간이나 시범사업 없이 바로 정책을 시행하면 환자도 의료진도 현장에는 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사전에 의료계 현장 전문가들과 한 번쯤 협의했으면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