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참여정부 5개년 계획안 문제많다
시론 참여정부 5개년 계획안 문제많다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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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발표한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의 건강보험 개선안에서 질환의 경중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인상·인하하는 계획은 건강보험의 재정위기를 타개하는 대안처럼 보인다.

감기와 같은 경증질환 진료의 본인부담금을 인상하고, 여기서 확보된 보험재정을 암과 같은 중증·희귀 질환치료에 전용함으로써 보험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정부안이 일정부분 기여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험재정에서 경증질환 진료 비용을 보험재정의 부실화를 야기한 주범으로 지목해 왔다.참고 견뎌도 될 만한 질병으로 병·의원을 찾는 환자들 때문에 보험재정이 어려워졌고, 그 결과 중증환자의 보험혜택을 늘리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 셈이다.
그러나 내용을 차분히 짚어 보면 정부안의 문제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감기를 꾀병 정도로 보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부안에는 환자가 의사를 찾는 행위 자체를 문제시하는 기묘한 시각이 담겨 있다.한 마디로 보험재정에 문제가 있으니 감기환자에게 돈을 더 내라는 것은 웬만한 병은 생으로 참고 견디라는 말처럼 들린다.이러한 정부안은 병·의원의 문턱을 높여 환자의 내원 횟수를 줄이자는 속셈이 느껴진다.이제 웬만한 병은 환자가 자가진단을 하여 약국에서 일반 의약품을 사먹으라는 것인가?

둘째, 이를 통하여 확충된 재정을 중증질환 환자의 치료에 쓰겠다는 계획도 문제이다.중증질환에 대한 의료 처치의 상당 부분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안은 미봉책에 그칠 공산이 크다.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조삼모사식의 정책으로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디냐 하는 식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안된다.

셋째, 정부안은 환자가 의사 역할을 하라는 말처럼 들린다.무엇보다 증상의 경중을 가지고 환자 자신이 내원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열만 지속되던 아이가 심장질환 진단을 받고, 감기인 줄 알았던 소아환자가 소아 백혈병 진단을 받아 조기에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해도 좋다는 말인가? 증상은 질병의 징후일 뿐이라는 사실을 정부안은 놓치고 있다.

아무리 중한 질병이라도 처음에는 고열이나 소화불량 같은 사소한 증상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따라서 정부 당국이 내놓은 이분법은 중증질환에 대한 조기 진료와 치료기회를 차단할 위험성이 높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정부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이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소아환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경증 환자가 90%를 넘는 소아과의 진료현실에서 보면 본인부담금 인상은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을 죽음의 땅으로 모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소아과 전문의들의 판단이다.

일차적으로 보호자가 내원 여부를 결정하는 소아과 진료에서 이것은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아과의 주요 질환은 대부분이 인후염이나 장염으로 시작한다.이런 상황에서 본인부담금 인상은 양육비 상승으로 이어져 보호자가 내원 시기와 횟수를 늦추거나 줄이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여기서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은 '놔주었더니 괜찮더라'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환자를 방치하거나 자가치료를 하다가 작은 병을 큰 병으로 키우는 경우이다.

소아환자의 경우 이러한 상황 악화가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적절한 시기'라는 말이 소아과처럼 중요한 곳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획일적인 잣대로 본인부담금을 결정하는 것은 소아환자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 당국은 알아야 한다.이 세상에 병든 자식을 방치할 부모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현재의 정부안은 적절한 시기에 세심하고 섬세한 진료를 받아야 할 소아환자를 병의원 밖으로 내쫓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정부안은 양육비 부담을 늘려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출산 기피증을 가중시키는 데 한 몫을 단단히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소아질환의 이러한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본인부담금 논의는 논란으로 그쳐야 한다는 것이 소아과 전문의들의 생각이다.우리의 판단으로는 오히려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인하하거나 무료화 하는 것이 현재 저출산으로 국력 쇠퇴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위기 상황을 옳게 보는 길이라고 믿는다.

문턱이 닳을 정도로 병·의원을 들락거려야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면, 그리고 저출산 시대에 하나 같이 소중한 우리 어린이들을 건강하게 길러 내고자 한다면, 현재 양육비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료비를 국가가 나서서 적극 지원하는 과감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가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 논란 속에 묻혀 버린다면, 최근 발표한 출산 보조금 지급 방안과 같이 정부가 산발적으로 내놓는 출산 장려책에 누가 신뢰를 보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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