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지음 / 투나미스 출판사 / 237쪽 / 1만 8000원
보건행정학계의 원로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개혁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의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쓴소리를 냈다.
이규식 명예교수는 최근 투나미스 출판사를 통해 펴낸 [의료개혁 무엇을 어떻게?]를 통해 "제도를 개혁하려면 의료체계상의 문제점부터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수립해야 함에도 정부는 의료계획(보건의료기본법에서 규정한 보건의료발전계획)도 없이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대폭 늘렸다"면서 "필수의료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정책을 수립하거나, 의사 수를 증가시키면 낙수효과로 지방에 의사가 배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실현 가능성과는 멀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지방의료의 붕괴와 수도권 집중 등 국민이 겪고 있는 의료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의료정책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지 못함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한 이 명예교수는 "현 정부는 의료개혁의 필요성만 인식할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의료보장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근본적인 의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2030년대 중반쯤 의료체계가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명예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을 시작으로 26년 동안 연세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보건의료·복지 분야 정책을 집중 연구했다. 정년 이후 보건의료 및 복지 분야 전문 연구기관인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을 설립, 이슈 페이퍼를 발간하고, 정책교실을 열어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위한 연구와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한국의 의료체계와 건강보험제도를 이대로 두면 붕괴할 것이라며 꾸준히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 명예교수는 의료가 지나치게 영리화되어 건강보험제도를 위협하고 있고, 민영보험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이 의료기관 영리화의 온상이 되고 있다면서 건강보험의료를 사적 재화로 간주해 의료보장제도의 근간이 붕괴됐다고 지적했다.
"의료계획도 없이 의료정책을 수행하다보니 의사 수가 적정한지, 병상 수가 적정한지 알 수가 없다"고 진단한 이 명예교수는 "의료사회화에 대한 인식이 없고, 이론이 없는 문외한들이 정책을 다루다보니 의료정책을 뒷받침할 이론이 빈약하고, 전문성이 결여된 일반적 상식으로 의료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 명예교수는 "의료이용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데도 이용을 늘리는 것이 국가의 의무인양 착각하고 있다"면서 "진료권 설정과 환자의뢰체계의 강제화와 같은 이용억제 정책은 건강보험통합과 함께 폐기했고, 공공의료를 별도의 법으로 정의하는 등 사회보험국가의 정책과 어긋나는 정책을 추구해 작금의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책은 ▲프롤로그 ▲방황하는 의료정책 ▲이념 부재의 의료보장제도 운영 ▲사회의료보험의 원리에 대한 인식부족 ▲잘못된 공공의료의 정의가 남긴 폐해 ▲영리화된 의료 ▲붕괴된 지역의료 ▲구매이론이 없는 의료보장국가 ▲시장형 의료정책과의 정합성 ▲이론 없이 운영되는 건강보험제도 ▲에필로그 등으로 구성됐다.
이 명예교수는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로 가기 위한 방안으로 의료 이용을 무한히 늘리는 모럴헤저드를 방지할 수 있도록 보험자가 의료서비스를 배분할 것을 주장했다.
보험재정을 절약하고 의료서비스를 형평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의료를 1차, 2차, 3차로 구분하고, 진료권 설정과 환자의뢰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명예교수는 "모든 국민에게 의료 이용의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의료의 지역화가 중요하다"며 "지방의료원을 도시지역이 아닌 의료취약지에 배치해 지역의료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명예교수는 "이같은 제안을 이행하기 어렵다면 현재의 건강보험제도를 폐기하되 저소득층만 정부가 의료보호제도로 보장하고, 나머지는 싱가포르 처럼 의료저축구좌제도 같은 시장형 의료보장제도로 전환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며 의료체계 붕괴에 대비한 자구책을 마련할 것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