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 일벌백계 고수하면 필수의료 무너져

형사재판, 일벌백계 고수하면 필수의료 무너져

  • 송성철 기자 medicalnews@hanmail.net
  • 승인 2024.08.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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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인 감정 결과만으로 형사 판결 위험…무죄추정 원칙 적용해야
이동필 변호사 "형사재판에 민사 과실·인과관계 추정 법리 적용 안돼"

이동필 변호사는
이동필 변호사는 "법원이 형사재판에서 의료의 특성을 이해·고려하지 않은 채 일벌백계의 원칙만 계속 고수한다면 필수의료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의협신문

형사재판에서 의료의 특성을 이해·고려하지 않은 채 법원이 일벌백계(一罰百戒) 원칙만 고수한다면 필수의료는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동필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의성·내과전문의)는 대한의학회가 발행하는 E-NEWS LETTER 8월호 럼 '의료와 법률-의학적 판단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통해 "가뜩이나 무리한 저수가 정책을 고수하는 우리나라에서 젊은 세대의 의사들이 힘들고 분쟁에 언제든 휘말릴 수 있고 처벌의 우려가 커서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근본적 원인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보다 무리한 의대 증원부터 앞세운 최근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의해 의료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이 형사재판에서 의료의 특성을 이해·고려하지 않은 채 일벌백계의 원칙만 계속 고수한다면 필수의료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현직 의료전문변호사로 20년 넘게 다양한 의료분쟁 사건을 경험했다는 이 변호사는 "민사재판에서는 어차피 환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환자와 의사 중 누가 부담할지, 얼마나 부담할지의 문제이므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법 원리에 따라 과실과 인과관계를 비교적 쉽게 추정하고 책임을 제한하는 방식의 판결이 많다"면서 "법원은 어차피 하나의 결론을 내어야 하므로 의사로서도 일정 부분 손해배상 책임을 부득이 인정할 수밖에는 없을 때가 있다. 쉽지는 않지만 이러한 한계에 대해서는 의사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국가가 범죄를 범한 개인에게 형벌을 가하는 형사재판은 민사재판과 달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변호사는 "형사재판은 국가가 범죄를 범한 개인에게 형벌을 가하는 절차이므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실히 적용되어야 하고 엄격한 증거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형사 절차에서 의료사고 민사 손해배상 재판에서의 과실 추정 판결 문구를 검사가 그대로 인용하여 공소장에 적시한 후 공소를 제기하는 사례는 물론이고 심지어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재판임에도 민사재판에서의 과실 및 인과관계 추정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거나, 환자가 목숨을 잃었거나 중태라는 결과에 치우쳐 유죄추정의 심증을 가지는 판사도 종종 경험했다"고 회고했다.

의학적 판단은 전문의마다 제각각 다를 수 있다는 특성을 간과한 채 특정 감정인의 의학감정 결과에 의존하는 법조계의 한계도 짚었다.

이 변호사는 "의료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법관은 의학 감정 결과에 사실상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의학적 판단은 재판에서의 판결과 달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고 특히 고도로 전문적인 의학 영역에서는 전문의마저도 의견이 제각각 다를 수 있으며 어느 의견이 좀 더 옳은 것인지 판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면서 "특정 감정인의 의학 감정 결과만으로 이와 다른 판단을 한 의사에 대해 '당신의 의학적 판단이 틀렸고 그로 인해 환자가 사망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형벌을 내리는 것은 의학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필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의성) ⓒ의협신문
이동필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의성) ⓒ의협신문

의학과 법학의 차이점도 짚었다.

"최근에 크게 발전한 임상의학 영역이나 고도로 전문화된 진료영역에서는 담당 의사가 관련 교과서, 문헌, 환자의 나이, 질병 상태, 건강 상태 등을 모두 종합하여 여러 진료방법 중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의사마다 진료방법이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힌 이 변호사는 "예를 들어 똑같은 질병 및 환자 상태라고 하더라도 외과 의사는 수술을 선호할 수 있고, 내과 의사는 보존적 치료를 선호할 수 있다. 똑같은 진료방법을 적용하더라도 환자마다 반응이 다르고 환자의 상태 역시 시시각각으로 변하므로 결과적으로 보더라도 진료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의학의 특성을 설명했다. 

"반면에 법학으로는 다양한 법리 의견이 있더라도 실제 판결에서는 대법원의 법률해석 논리에 따라 법리를 적용하고 다양한 결론을 낼 수가 없다"고 밝힌 이 변호사는 "이처럼 의학과 법학은 각각의 특성이 있는 데다,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므로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의사가 법리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법률가가 의학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나 인간이 만든 현재의 국가사회 제도에서는 의료사고에 대한 분쟁에 대한 민사적 판단이나 형사적 판단을 의학에 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법관이 의학 감정을 토대로 법리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법관은 하나의 분쟁에 대해 다양한 결론이 아닌 하나의 최종 결론만 내어야 한다. 여기서 의료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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