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의사들을 악마화, 노예화 했다"

"정부는 의사들을 악마화, 노예화 했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4.10.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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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학한림원 대국민 입장문 "국민적인 관심·지원" 호소 
의대정원 정책 근거 문제점만 수두룩…"퇴행적 조치만 강행"
"의학교육 질을 떨어뜨리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할 일인가"

"정부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의사들을 '낙수과'로 폄하하고, 이기심 가득한 집단으로 '악마화'했으며, 각종 명령으로 행동을 옥죄며 '노예화'해 이들의 근무 의욕을 꺾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의대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사태에 대해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의학한림원은 21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정책은 의료계 뿐 아니라 정치권 조차도 대화를 차단당하며, 오히려 의료개혁의 절대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통박했다.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과 의학교육계에 자행되는 작금의 조치는 물론, 미래 의료와 의학교육이 위태로워지는 일들이 서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먼저 정부의 득하기 어려운 의대증원 정책 강행의 문제점을 짚었다. 의료계가 제시한 올바른 의대정원 증원 방법론을 무시했으며, 정책 집행 근거 선택과 해석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증원 규모 조사도 졸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진단이다. 

이미 드러난 정책 결정 절차상의 문제와 함께 출구 전략의 부재, 필수의료, 지역의료 의사 근무 의욕 박탈, 단절된 대화 의지도 꼽았다.

의학한림원은 "정부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의사들을 '낙수과'로 폄하하고, 이기심 가득한 집단으로 '악마화'했으며, 각종 명령으로 행동을 옥죄며 '노예화'해 이들의 근무 의욕을 꺾었다. 미래의 희망을 잃은 전공의와 학생들은 이탈했으며, 전문의들도 전직하고 있다. 정부는 소위 의사 카르텔을 격파하겠다는 '정면돌파'로 일관하고 있다"라면서 "정부는 모든 대화에 2025년 정원 절대 불변을 전제로 증원을 강행하며 입시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는 전공의들과 학생들, 나아가 의료계와 대화 단절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전공의 결원으로 인한 중증 질환자 진료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 국민 건강에 큰 위해 요인이 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현재 의료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만 명 이상의 핵심 의료진이 갑작스럽게 빠져도 의료에 문제가 없다면 대규모 의사 증원 이유도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의대생 휴학 불허와 강제 진급, 의학교육 질 하락, 교육환경 부족 등 의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퇴행적 조치에도 우려를 표하며, 국민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의학한림원은 "갑작스런 증원으로 의대 교육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우리나라 의료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의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려 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해야 할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140년 전 근대의 의료와 의학교육을 이 땅에 도입한 이래 오랜 세월 어려움을 극복하며 쌓아 온 공든 탑을 무너뜨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모두가 받게 된다"라며 "국민께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의대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정사태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의 대국민 입장문

우선 이번 무리한 의대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정사태로 인하여 생명과 건강에 위협을 받으시는 국민 여러분께 석학 의학자 단체로서 자괴감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하 의학한림원)은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의대증원 정책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려를 표명해 왔으나 법정 원로 석학단체로서 가급적 의사 표현을 절제하여 왔습니다. 다만, '정부가 의대증원 2,000명의 과학적 근거로 삼은 세 개의 보고서'에 대한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였고, 의대정원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에 대한 대법원 판결 과정에서 현 정책의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사법부 결정에 의한 해결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우려되는 일들이 많으나 특히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과 의학교육계에 대하여 행하여지는 작금의 조치에 대하여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입장을 표명합니다. 미래의 의료와 의학교육이 위태로워지는 일들이 서슴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의학 석학 단체으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득하기 어려운 의대증원 정책의 강행

- (올바른 의대정원 증원 방법론 무시) 

2022년 가을부터 의학한림원은 지속적으로 외국의 경험을 반영한 올바른 의대증원의 방법을 보건복지부를 통하여 정부에 제시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근거 선택과 해석의 문제) 

의대정원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이 정책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OECD 통계를 인용할 때 인구 당 의사 수만 언급합니다. 그 수도 실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OECD 통계에 제시되어 있는 많은 항목의 우수한 의료지표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미 의학한림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의사인력 수요 추계에 있어 상기 세 개의 보고서에서 다룬 인구구조 뿐 아니라, 정부가 조속히 대대적으로 개혁해 나가겠다고 천명하고 있는 수가(비보험 부문과 실손보험 포함), 의료전달체계, 국민들의 의료소비행태 변화, 인공지능을 포함한 의료기술의 발달, 의료비 지출의 한계 등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그러한 변수가 정해지지 않거나 시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들의 활동분야와 지역별 분포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즉, 현재는 과학적인 근거를 제대로 얻을 수 없는 상태이며 향후 이런 요소들을 반영한 추계가 가능해진다고 해도 현장의 변화를 추적하며 주기적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의료계에게 당장 과학적 근거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 (의대정원 증원 규모 조사 문제) 

각 대학교에 희망하는 의대 증원 규모를 문의할 때 의학교육의 내실보다는 대학의 규모 확장을 원하는 총장들의 의견을 반영하였고 그 증원 능력의 근거를 단기간에 졸속으로 조사하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 (의료계의 합리적 사전 증원 제안 거부) 

2023년 12월경 당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비록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데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으나 국민과 정부가 의사인력의 부족을 우려함을 감안하여 지난 2000년에 감원하였던 규모이자, 증원에 비교적 무리가 없는 규모로서 우선 350명을 증원하고 시간을 가지고 올바른 방법에 의하여 의사인력 수요를 판단하며 조정하자는 의견을 정부에 직접 또는 의학한림원을 통하여 전달하였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 (정책 결정 절차의 문제) 

의대정원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이 정책은 절차적 타당성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보건의료정책심의회 회의록 외에는 공개된 근거자료가 없고 그 회의록도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의문이 많습니다.

- (출구전략 부재) 

이미 상기 세 개 보고서에서도 언급하였고 의학한림원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단기간 지속되는 대규모 의대정원 증원은 조만간 정원 환원 내지 추가 축소의 필요성을 초래합니다. 이번 증원 절차에서는 조만간 축소될 정원에 대한 대책이 전혀 언급되지 않아 새로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이른바 필수의료, 지역의료 의사의 근무 의욕 박탈) 

주변에서 고수익, 편안한 일상생활, 낮은 사법리스크 영역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있어도 여러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필수의료, 지역의료에 헌신하는 의사들은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나보다 우리,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자아실현에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자긍심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의정갈등 과정에서 정부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의사들을 '낙수과'로 폄하하고, 이기심 가득한 집단으로 '악마화'하였으며, 각종 명령으로 행동을 옥죄며 '노예화'하여 이들의 근무 의욕을 꺾었습니다. 이에 미래의 희망을 잃은 전공의와 학생들은 이탈하였고 전문의들도 전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전에 이러한 현상을 예측하고 있었으며 소위 의사 카르텔을 격파하겠다는 '정면돌파'로 대응하고 있어 보입니다.

- (2025년 증원 규모 고수로 대화 단절) 

정부는 모든 대화에 2025년 정원 절대 불변을 전제로 하며 고집스럽게 증원을 강행하여 결국 입시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전공의들과 학생들, 나아가 의료계와 대화 단절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전공의 결원으로 인한 중증 질환자 진료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 국민들의 건강에 큰 위해 요인이 되었습니다. 대형병원의 재정파탄을 막기 위하여 국민 세금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투입되고 있는 것은 언급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현재 의료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만 명 이상의 핵심 의료진이 갑작스럽게 빠져도 의료에 문제가 없다면 대규모 의사 증원의 이유도 없어집니다.

정부의 의학교육에 대한 퇴행적 조치

- (휴학 불허와 강제 진급) 

현재 의대생들이 휴학신청을 한 채로 8개월의 시간이 흘러가 이제는 정상적인 진급이 어려운 상태로 판단되어 서울의대는 휴학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못한 학생들의 유급을 피하고자 취한 적절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들을 교육 기회를 주지 않고 강제 진급시킬 계획인 듯합니다. 4,500명의 신입생 교육을 위하여 기존의 6개 학년 의대 학생들 18,000명에 대하여 교육 원칙을 무시할 계획입니다. 무엇을 위한 증원인지 득하기 어렵습니다.

- (교육환경 준비 부족) 

증원 전 의대정원은 약 3,000명이었는데 정부가 발표한 2025 의대정원은 4,500여 명입니다. 휴학한 예과 1학년 학생들이 복귀하면 7,500명이 교육을 받게 됩니다. 교육환경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만 당장 4개월 후 닥칠 일이므로 준비할 시간이 매우 부족합니다. 의학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 자명합니다.

- (의학교육 여건을 맞추기 보다는 기준을 하향 조정) 

정부는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 순조롭지 않자 교수임용규정을 하향 조정하고 의평원의 의대 인증평가 기준을 완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의학교육을 국제 의학교육 수준에 올려놓은 의학교육 인증체계를 근거가 약하고 절차도 문제가 있는 150% 증원을 위하여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또 다시 무엇을 위한 증원인지 득하기 어렵습니다.
 
2,000명 증원, 과연(350명 우선 증원안을 포함하여) 여러 합리적 제안을 거부하며 이처럼 우리나라 의료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의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려 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해야 할 일인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본 동경대학교에 69학번이 없는 이유는 학생들의 수업거부로 인해 새로 신입생을 받을 경우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으며 이는 일본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대학문제간담회와 문부성의 권유를 동경대학교가 받아들여 결정한 것입니다. 교육의 질을 지키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이 돋보이는 결정이었으며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려는 타당한 결정이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경우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 정부의 작금의 조치들은 의사의 역량은 상관없이 그저 면허를 가진 '의사'를 많이 배출만 하면 만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의료와 의학교육의 현장에서 집단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과대학 교수들만 걱정하는 의학교육의 앞날은 매우 위태롭습니다. 140년 전 근대의 의료와 의학교육을 이 땅에 도입한 이래 오랜 세월 어려움을 극복하며 쌓아 온 공든 탑을 무너뜨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모두가 받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의대정원 증원에 대한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정책은 의료계 뿐 아니라 정치권 조차도 대화를 차단당하고 있어 오히려 의료개혁의 절대적인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국민들께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4. 10. 21.
대한민국의학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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