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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피플 이수현
피플 이수현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4.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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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그리고 의사.통합학문이 발달한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 더욱이 사회학도가 '사회로 부터 격리의 시작-고립의 심화과정'라는 의과대학을 통과해 두 가지 과업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이 어쩌면 기적과도 같다.어렵다는 의과대학 교과과정을 4년만에 스트레이트로 통과하고 당당히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인턴으로 갓 의사생활을 시작한 이수현씨(세브란스병원 인턴 1년차·서울대 사회학박사과정 수료)에게 사회학도 또는 의사 사이에서 놓인 간극, 그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은 없었을까.햇 병아리 의사지만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환자를 직접 만나면서 느끼는 희열을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서 '의사가 된 자의 기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세수하고 머리감기도 힘들다는 인턴 1년차인 그녀를 뜻밖에 쉽게 만났다.4월부터 건강관리실에서 일하는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의사 이수현"이라는 명함(병원에서 만들어줬단다) 내미는 그녀가 '의사'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났다.
"4년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의료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삼성이 왜 한국에 재벌의 이름으로 병원을 설립했나, 사회적 배경과 의료계에 미치는 함의에 대해 석사논문을 썼다.그후에도 논문은 아닐지라도 연구아이템이 많이 떠올랐으며,의사들과 협업을 시도했지만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하기에 힘들었다.그래서 '내부자'가 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사회학자로서 갖고 있는 시선을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시각 뿐아니라 전체 사회를 바라보는 의사와 환자의 모델을 직접 보고 연구하고 싶다."
 
"4년동안 유급, F 학점은 한번도 없었다.내 기준이 낮아서 성적에 만족했고 점점 나아졌다.보통 나이가 들면 이해력이 는다고 하는데 의대 공부는 이해력이 아니라 암기력과 즉각 대처하는 순발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솔직히 공부하기 무지 힘들었다.일반 의대생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매우 노력해서 남들 하는 만큼 따라가는 정도였다.그러나 '괜히 했다',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다.'새로운 도전이다', '잘 해보자'는 생각이었으며, 또래 아이들보다 힘들지 않았다.'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재미있었다."
 
"90년 이대 물리교육학과에 입학했고, 94년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으나 이대에서 졸업을 못해 들어가지 못하고 95년 다시 석사과정에 들어갔다.98년엔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후 수료했고, 2000년3월 편입해 연세의대 의예과 학번은 98년인 셈이다.학번만 5개다.남들이 보기엔 멋지다.자연과학의 기초인 물리학, 사회과학의 기초인 사회학, 응용과학의 첨단이 의학인데 이 모든것을 다 거친 셈 아닌가."

"비록 학생이지만 사회학 연구의 배경을 살려 무언가 하고 싶었다. 대학 마다 다르겠지만 의대의 교육과정은 개인이 일상사를 누리지 못하고 성적을 따고 시험을 통과하는데 급급하다.그러나 병동실습이나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 학생들을 많이 관찰했다.실제로 연구과정을 통해 분석, 조사하거나 인터뷰나 논문은 생각보다 적었다.의미있다면 본과 1학년때 마침 의료계 파업으로 수업이 없어 일본민간법정에 제출한 정신대 할머니의 육체적 피해를 병원에서 조사하고 이에 대한 논문을 거칠게 나마 작성해 책도 나왔다.본과 2학년 때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수도권 지역 16군데 상담소에서 일하는 간사, 외국인노동자를 실제 만나서 인터뷰 해 의료백서를 냈다.본과 3학년부터는 실습 돌면서 다른 생각은 못했다.틈틈이 글 쓰는 정도였고 병원생활을 열심히 하느라 연구자로서는 성과물은 많이 없었다.연구자로서는 최소한만 한 것 같다."
 
"터미날 케어에 관심이 있다.현대의학의 눈부신 발달에도 불구하고 치료되지 않은 병이 많고 불행한 것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런 환자들에게 사실 병원에서 해줄 것이 별로 없다.미국, 호주 등에서는 완화의학(palliative medicine)이라는 장르가 발달되어 있어 이런 환자들을 돌본다.낫지는 않으면서 죽지도 않는 어이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의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싶다.삶과 죽음을 직면하고 항상 저울질하는 이런 삶은 사회학적 성찰의 깊이를 깊게 하는 계기도 된다.완화의학은 미국에서는 내과학이나 소아과학 처럼 하나의 분과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나이가 많아 (미국에서의) 수련은 포기하지만 내과전문의를 딴 다음 미국에서 2~3년간 공부할 계획이다.돈이 있든 돈이 없든 죽는 과정에서의 고통은 모두의 문제이며, 우리의 놀라운 고령화속도를 고려할 때 필요한 분야다.잘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개인이 질병이라는 이벤트를 경험하면서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는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 완화의학에서 의사와 사회학자로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의료사회학에 대한 그녀의 집념의 뿌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자신의 질병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4살 때 비염을 앓는 것으로 시작해 환절기만 되면 안과, 이비인후과, 소아과를 하루에 모두 순례할 정도로 알레르기 교과서에 나온 온갖 질병을 달고 살아야 했다.지금은 선천성 고관절 기형으로 좋아하던 마라톤도 쉬고 있다.의대에 진학한 후 자신의 질병을 적어보니 A4용지에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을 정도였다.괴롭지만 딱히 완치할 수 없어 그때 그때 약을 먹거나 그냥 지내온 자신의 삶이 의료사회학를 성찰하게 된 계기였다.

3시간 대기 3분진료의 당사자로서 의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너무 바빠 보여 말조차 걸기 힘든 상황에서 사회학적 상상하기에 열중했단다.개인적으로 만나면 나쁜 의사가 아닐 텐데 왜 저렇게 됐을까? 그때 관찰를 통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답을 찾다보니 의료사회학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됐던 것.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없는 학과여서 외국저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미국 여행시에도 텍스트 복사만 열흘 넘게해 여행가방 2개 분량을 가져왔다.자신의 일상이 의료사회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으며, 논문을 쓰면서 자신이 풀어내는 글들을 의사 시각에서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때 배우자(인천사랑병원 근무)를 만나는 행운도 찾아왔다.
 
-2003년 학생신분으로 본지에 스승인 송호근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를 대신해 김대중정부의 개혁과제의 사회학적 평가를 기고한 것으로 기억된다.당시 개혁드라이브가 정부, 시민운동, 의사 세 주체로 부터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진단하고 오히려 자본에 의한 의료시장의 재편이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라는 논지를 편 것으로 기억된다.의료대란 이후 의사사회가 국민속으로 파고 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또 최근에는 정치세력화를 통해 의료정책의 주체로 나서려고 하고 있다.어떻게 생각하나.
 
정치세력화는 중요하다.그러나 국회의원 숫자 보다는 의사 일상의 정치화를 말하고 싶다.병원내에서 환자에게 신뢰받는 의사, 간호사 같은 의료직종에게 의사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병원은 소우주다.직종도 다양하고 돈문제, 생로병사, 먹고 싸는 문제 등 일상사에서 보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공간이다.이 공간에서 주도권을 잡으면 의사의 정치화는 실현되는 것이며, 사회로 확산될 것이다.의사를 휴머니즘의 시각만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할 만큼 내 스스로의 실력을 키우지는 못했지만 의사집단이 이익집단으로서 사회적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국민에게 어떤 선언을 하고, 언론에 이미지를 유포하는 것 보다는 내부로 돌아와 어떤 의사가 됐을 때 인정받을 것인가 하는 내부의 집단 성찰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의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의료보험은 사실 문제가 많다.그러나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를 한 축으로 한다면, 다른 한 축에서는 관행적으로 잘못한 일을 보완하고, 무엇을 잘해야 할지 내부적 고민을 함께 공존했으면 한다.

인터뷰를 하는 중 이수현씨에게서는 아직 박사학위를 끝내지 못한 중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레지던트 마치기 전 까지는 어떻게든 끝내겠다는 각오지만 전공의의 일상사를 알고 있는터에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우려와 함께 한국도 미국과 같이 통합학문이 발달되어 있다면 이수현씨 처럼 굳이 어렵고 먼 길을 에돌아 오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외국의 어떤 문헌보다도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많이 배운다, 환자에게서 감동을 조금씩 맛본다 "며 학자가 아닌 의사로서 얻은 만족과 보람을 표현했다.완화의학을 통해 의사와 사회학자로서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그녀의 포부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와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인간성을 상실해 왔다는 비난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대의학'의 한계를 조금이라마 극복할 수 있는 작지만 큰 걸음임을 확신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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