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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네팔의 슈바이처 김명호 교수

[인터뷰] 네팔의 슈바이처 김명호 교수

  • 김인혜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4.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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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한국인 슈바이처 김명호 인수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은 80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꾸는 청년이다.

비록 청년같은 날쌘 동작은 기대하기 어렵고 또 지난 달 갑작스런 부상으로 움직임이 자유스럽지 못하지만 세월은 결코 그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5월 1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인수회 5월 월례회에서 만난 김 회장은 어느 청년의사 못지 않은 열정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대한민국 65세 이상 의사회원들이 참여하는 인수회를 이끌게 된 김 회장은 인수회의 활동이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전환점으로서 역할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찬란한 노을을 '노년기 의사'에 비유한 김 회장은 "노년기의 의사로서 할 일은 많다"며 인수회의 몇가지 중요한 과제를 소개한다.

"인수회는 젊은이들의 본이 되기 위해서 할 일이 많습니다.철저한 건강관리도 해야 하고 시간관리도 해야죠.돈관리 이것도 중요해요.난 이건 잘 못했지만(웃음).경제관리와 자기관리가 찬란한 노을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합니다.또 있죠.해서는 안 될 일은 삼가야죠.노인이라고 무조건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요." 인수회 회원이 의사로서 그리고 노년으로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김 회장의 바람이다.
 
"숨 거둘 때까지 멋지게 살자"며 말을 이어간 김 회장은 자신만의 삶의 노하우를 말하며 자신감을 내비친다.꼭 인수회 회원이 아니라도 참고할 만 하다.

"나는 지난 14년간 하루도 빼지 않고 그날의 일지를 기록해 왔어요.그날 그날의 초점에 따라 발생한 사건과 문제점 등을 기록하지요. 한국의 의료문제 등 핵심 이슈를 정리해요.오늘 인수회 월례회와 기자와의 인터뷰도 기록할 거에요"
 
새벽 4시반 기상 저녁 11시 취침. 그리고 철저한 소식을 하며 '바늘 침'처럼 산다는 김 회장.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건강한 젊음을 유지하는 김 회장이 걸어온 길은 평범하지만은 않다.
91년 연세의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한국 의료협회 사무국장을 맡기 시작한 김 회장은 이때부터 10여년간 네팔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신앙을 갖게 된 이후 짧막하게나마 몇차례 다녀온 단기선교가 의료선교의 오리엔테이션이 된 셈이다.덕분에 그의 제 2의 인생에서 시작되는 본격적인 의료선교 활동은 훨씬 수월했다.

김 회장이 본격적인 의료선교활동을 하는데는 이미 그의 교수시절 공적이 큰 도움이 됐다.김 회장은 연세의대 교수재직 시절 사단법인을 설립했는데 이를 통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의료선교의 노하우를 축적해 온 셈.그 노하우는 사단법인 장미회와 학교급식 진흥회, 한국 농촌의료 위원회의 설립으로 나타난다.

장미회는 70년대 간질환자 치료를 위해 본격 발족된 조직.김 회장은 장미회 회장으로 취임한 72년, 독일에 건너가 간질치료약을 구해오기까지 했다.덕분에 2천여명이 간질 치료를 받았다.
학교급식진흥회와 한국농촌의료위원회도 김 회장의 왕성한 활동 덕에 굵직굵직한 성과를 낳았다.
농촌의료위원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당시 무의촌 지역에 보건의료인력 파견을 위한 보고서가 탄생됐으며, 학교급식진흥회는 김 회장이 미국에서 학교보건을 전공한 경력을 활용해 우리나라에 학교보건법을 제정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도록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연세대 원주캠퍼스의 초대학장을 맡으면서였어요.당시 캠퍼스의 부지 매입부터 학교의 기초 토대를 만드는데 가장 열심히 뛰었죠"라며 짧게 회고한 김 회장.그 열정은 네팔에서도 이어진다.

91년부터 시작된 네팔에서의 의료선교활동은 사단법인 장미회가 설립한 선교병원 운영부터 시작됐다.가우라샹카병원에서 김 회장은 하루 8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면서 현지의 환경개선을 위한 지역사회 보건활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96년부터는 병원과 고아원, 학교운영으로 네팔 현지의 활동의 폭을 넓혔으며, 98년부터 2001년까지는 바랏트 폴 보건대학을 세워 졸업생을 배출시켰다.학교를 설립하기까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난관을 겪었지만 그의 열정은 언제나 난관을 훨씬 뛰어넘는 실력으로 발휘된다.

무엇보다 김 회장이 바랏트 폴 보건대학의 초대 학장을 맡았기 때문에 애착이 컸다.특히 바랏트 폴 보건대학이 네팔에서는 처음 설립된 보건대학이기 때문에 졸업생들이 네팔 산간벽지에 파견돼 네팔 주민의 건강과 의료를 맡는 것은 초대 학장으로서 느낀 가장 큰 보람이다.
 
선교사 김 회장이지만 그는 역시 의사다.때문에 의료계에 대한 따끔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의업에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합니다.환자를 진료할 때 눈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아주며,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것의 실천이 바로 진정한 의업이죠"

김 회장은 의과대학의 교육이 기본적인 소양 교육과 윤리 교육이 소홀하다며 인성교육 강화가 시급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또 의사로서 책을 보고 생각하는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 "책을 떠난 의사는 돌팔이"라는 김 회장은 의사의 평생교육은 교육을 떠나 '자연스러운 학습'임을 강조했다.
 
만년 청년의사, 김명호 회장은 다음달부터 다시 네팔에서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그가 열정과 애착을 갖고 뛰는 네팔에서의 하루하루는 앞으로도 계속 그의 일지속에 충실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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