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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학교보건법...청소년 건강증진에 실질적 도움돼야

시론 학교보건법...청소년 건강증진에 실질적 도움돼야

  • 조명덕 기자 mdcho@kma.org
  • 승인 2004.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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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이 감소하면서 소아·청소년 인구가 감소하여 현재 인구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국가 생산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지금 전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학생들이 집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이들의 건강을 어떻게 관리하고 증진시킬 것인지가 과거에 비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데 이번에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제출한 학교보건법 개정안에는 학생들의 건강증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는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검진대상 연령에 맞는 검사항목을 선정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전체 학생에게 획일적인 임상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소아과학회의 '소아 예방의학에 대한 권고(2000)'에서는 학령기 소아와 청소년이 반드시 받아야 할 예방진료로 병력·신체측정(키 몸무게 혈압)·발달 단계와 행동 평가·시력 청력 검사·신체진찰·예방접종·사고 폭력 예방 교육·영양 상담을 들고 있다. 일괄적인 임상검사는 하나도 없고 빈혈·소변·콜레스테롤 검사 등은 위험요인이 있는 일부 학생에서만 선별적으로 시행하도록 권장한다.

미국의사협회도 '청소년 예방진료를 위한 권고(1994)'에서 매년 학생과 학부모가 흡연·음주·성문제·폭력·학습 장애 등을 발견할 수 있는 설문지를 작성하고, 개인별로 병의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은 뒤 필요에 따라 임상검사를 하고, 그 기록을 학교에 제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단체검진을 시행하면서 의학적·경제적 효과도 검증하지 않은 일본의 잘못된 전례를 우리나라에서 답습해서는 안된다.

학생에게 신체검사를 실시하는 것 자체가 자율적인 건강관리 능력을 갖게 하는 교육적 측면이 있다는 교육부의 입장도 어불성설이다. 필요없는 혈액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아 피를 뽑고 결과를 확인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은 학부모의 몫이다. 일 년에 수백억의 예산을 효과도 없는 검사에 낭비하고,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조장하여 학생과 학부모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학사일정을 조정하고 분산 검진을 받거나 방과후 또는 방학중 개별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개정안에서 학생검진을 의뢰하도록 정한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지정한 검진기관'은 개별검진이 아니라 단체검진을 주로 시행하는 임상검사 위주의 의료기관이므로 학생들이 아프면 찾아가 진료를 받는 지역사회 개원의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입시가 학교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학교에서 신체검사 기간을 연중으로 연장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지금 고등학교 1학년들에게 줄세우기 식의 검진을 시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게다가 검진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담합이나 끼워주기 식 검진을 생각해보라. 이는 현재 성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검진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또 건강증진사업이나 보건교육에 대해 교육부는 이번 학교보건법개정안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비용-효과 분석을 거쳐 청소년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증명된 흡연과 비만 예방·성교육 등이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불거질 때만 산발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학생들의 보건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보건교사가 배치되지 않은 학교가 전국적으로 35%에 달하며 '보건'은 정규 교과가 아니라 체육·가정·사회·과학 등의 과목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일관성이나 계획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학생들의 건강증진은 교육부의 주요 관심사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우리나라의 미래다. 이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와 여론수렴을 거쳐 학교보건법 개정안이 다시 논의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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