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상 정인혁
외솔상 정인혁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4.10.27 00: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가 초등학교 때 늘 벤또라고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선생님께서 앞으로 벤또는 도시락으로 쓰라고 하셨다.도시락이란 말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고,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숨어서 아껴 먹던 맛있는 벤또 맛이 나지 않았다.초등학교 때인데도 도식락이란 말이 익숙하게 되는데는 몇 년이 걸렸던 것 같고 이제는 오히려 벤또가 너무나 이상하게 들린다."
 
정인혁 교수(연세의대 해부학)는 몇년전 대한의사협회지 기고문(우리말 의학용어는 이 시대 우리의 얼굴이다)에서 벤또와 도시락이란 용어에서 느껴지는 정서적 차이를 이렇게 썼다.기자의 연령대만 해도 벤또의 의미를 금방 연상할 수 있다.그리고 그 말을 지우기 위해 몹씨 애썼던 유년시절이 생각난다.얼마전 딸이 게임(벤또 헥사)을 하다가 엄마 벤또가 뭐냐?"라고 물어 놀란 적이 있다."왜 그 뜻을 모르지".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딸이 모르는게 당연했다.말이란 지독한 것이서 일본말은 해방 후에도 끈질지게 남아 우리의 의식을 장악했다.그러니 일제시대를 경험한 내 부모 세대 뿐 아니라 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내 세대까지 그 잔재를 털어내기 위해 무지 애를 썼던 것이다.기자의 딸이 '벤또'라는 용어에서 아무 것도 연상할 수 없는 것을 보니 일상말의 일제 청산은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학술용어에서는 일본식 한자어가 넘쳐 나고, 더욱이 일본말이 물러간 자리엔 영어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지난 10월 19일 신문의 한 껸을 장식한 정인혁 교수의 외솔상(실천부문) 수상은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외솔상은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연구· 발전시킨 외솔 최현배 박사의 높은 뜻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문화와 실천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수상소감을 묻자 정 교수는 "기쁘다"고 짧은 한마디로 대신했다.그러나 이어 "제나라 살면서 제나라 말을 열심히 썼다고 상 주는 일은 없다.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일로 상을 주는다는 사실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털어났다.
정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받은 느낌은 '꼿꼿하다'는 것이었다.그리고 어떤 강한 원칙이 느껴졌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백성을 편하게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습니다.그런데도 우리말과 가장 어울리는 한글은 500년 이상 흙 속에서 묻혀 있었죠.조선시대 소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들은 이 기간동안 한자만 썼습니다.오로지 중국의 것만 받들고 따르며 우리 것을 외면해 왔습니다.그들이 백성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들만 누렸지 백성의 삶은 향상되지 않았습니다.나는 우리 글, 말을 쓰는 것은 사회 민주화(정치적 의미와는 다른)라고 믿습니다.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려면 서로 말이 통해야죠.의사들도 환자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려면 이질감없는 우리말을 써야 합니다."

한편에서는 기존의 용어들이 이미 익숙하다는 점에서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거나 바꾼 우리말이 더 어렵다는 등 의학용어의 한글화 작업을 폄하하기도 한다.이 점에 대해 정교수는 단호한다."제나라 말이 더 어렵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고 상식에 벗어난 일이다.의학용어만 보더라도 일본식 한자를 베낀 것이다.일본말과 우리말의 구조는 다르다.베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한다. 그리고 전문용어가 일상말에 가까워지는 것이 세계적 추세임을 거듭 강조한다.

정 교수의 이러한 소신은 먼저 자신의 전공분야인 해부학 용어에서 실천됐다.81년에 나온 대한해부학회 용어집(제2판)은 대부분 일본식 한자용어로 되어 있었으나 정인혁 교수 등 10명(위원장 백상호)이 참여해 90년 발간된 셋째판은 한자용어를 토막이말로 많이 바꾸었다.이 용어집이 나오자 우리 의학용어가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격려도 있었으나 학술용어 답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다.그러나 해부학 용어가 의학의 여러 분야에 널리 쓰이는 특성 때문에 우리말 용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이 일로 세종문화상을 수상하고, 일간지 사설에서 우리말 의학용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논하는 등 사회적 파급효과가 컸다.이후 96년에는 우리말로 더욱 다듬은 해부학 용어 넷째판이 출간된다.

정교수의 이런 활동은 대한의사협회 산하의 남북한 의학용어 비교연구 소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발탁되는 계기가 돼, 92년 남북한 의학용어집을 발간하게 된다.정교수는 의학용어에 관한 한 북한보다 우리가 앞섰다고 자신한다.북한의 경우 의학자가 중심이 되기 보다는 우리말 전공자들이 주로 한글화 작업에 참여하고, '우리나라 어휘정리'에 따라 일본식 한자말을 뜻에 따라 우리말로 옮겨놓다 보니 지나치게 말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정교수는 또 의협 용어심의실무위원장으로서 6여년에 걸쳐 2001년 의학용어 넷째판을 완성했다.
하지만 정교수는 의학용어집 넷째판을 "우리말 의학용어의 시작단계"라고 말한다.쉬운 우리말 용어를 만들자는 원칙에는 찬동하지만 실제로 어려운 용어를 쉽게 바꿀 때는 반대에 부딪치는경우가 많다는 것이다.용어에 대한 친숙한 정도가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말 의학용어가 보편화되려면 '강제성'도 필요하다는 것이 정교수의 지론이다.의협에서 발간되는 의협신문과 대한의사협회지 부터 우리말 의학용어를 써야 하며, 신문과 방송에서도 우리말 용어를 써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정교수는 강제성의 근거로 우리나라가 식민통치를 받던 민족치고 가장 빨리 일본말을 떨쳐버린 것은 당시 일본말을 쓰면 친일파로 분류돼 공개적으로 못썼던 사회적 분위기를 예로 든다.

정교수는 의학용어와 관련 쓴소리를 많이 했지만 전문용어 가운데 그래도 의학이 앞서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력서를 한장 부탁했다.무심히 받아온 정교수의 이력서는 한글사랑에 앞장서온 그다웠다.생년월일은 '태어난 날', '태어난 곳'으로, 가족은 보통 부인·자(子)로 표기하나 그답게 아내와 두 아들로 써 있었다.
보충취재를 위해 정교수가 쓴 글을 뒤적이다 다음과 같은 글귀를 찾았다.
 
사회에는 많은 직업집단이 있으며, 이들은 각각 자기들의 전문언어를 갖고 있다.의학용어는 의사들의 전문언어라고 할 수 있다.전문언어가 어렵고 비밀스러우면 그 직업집단을 소극적이고 폐쇄적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보다도 집단의 이해에 더 적극적이란 말이 된다.사회가 다양해지며 다른 분야와 다른 집단사이에 교류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이제 전문언어는 그 집단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나 일반인까지 함께 쓰게 되었다.우리 용어도 이러한 시대에 흐름에 발 맞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의학용어의 한글화에 앞장서온 정 교수가 인터뷰 도중에 강조한 '사회 민주화'란 의미가 가슴에 와닿는 대목이다.의사가 사용하는 용어가 어려워 환자들과 대화를 어렵게 하고, 한편으로 전문집단의 폐쇄성을 깊게 한다면 함께 하는 민주 사회와는 거리가 멀 것이기 때문이다.의사와 환자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는 쉬운 우리말 사용이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