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는 끝아닌 또 다른 시작
완주는 끝아닌 또 다른 시작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4.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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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생활체육 전국트라이애슬론 연합회 회장 고영우'
처음 만나 제일 먼저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적잖이 당황했다.당연히 '고영우산부인과 의학박사 고영우'라고 쓰여 있을 줄 알았었는데 말이다.그래서 실례임을 알면서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았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비해 동안인 인상 좋은 얼굴에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를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아, 운동을 정말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25년 골프 NO, 마라톤이 마냥 좋아
트라이애슬론은 철인 3종 경기로, 수영·사이클·마라톤을 모두 해내는 그야말로 철인들이 하는 경기다.

"처음에는 철인 3종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25년간 골프를 쳤죠. 바쁜 일상에 지쳐 주말마다 골프를 쳤는데, 골프를 잘 치려면 하체가 튼튼해야 한대서 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같이 운동하던 동료가 운동을 열심히하고 잘한다며 철인 3종 경기를 추천했죠. 그래서 시작한겁니다."

건강을 위해 달리기 시작하는 대부분의 사람과는 동기부터가 달랐다. 지금도 그는 전국트라이애슬론 연합회 회장으로 각종 경기나 행사장에 모습을 비친다. 그리고 또 굉장한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마라톤을 하게 된 계기도 남달라요. 순전히 트라이애슬론을 잘해내기 위한 것이었죠. 트라이애슬론을 잘하려면 마라톤이 관건이거든요. 그래서 마라톤을 별도로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100회 완주를 앞두게 된 거죠."

탁월한 운동가 체질인가 보다. 남들은 천천히 동네 한 바퀴씩 돌다가 차츰 5km, 10km, 완주 순서로 가는 반면, 탄탄한 운동실력을 바탕으로 시작부터 마라톤을 완주했다.

당신 의사 맞아?
'힘들지 않았을까?' 답이 뻔한 질문이긴 했지만, 내심 마라톤을 너무나 좋아하는 그의 특별한 대답을 기대해봤다.

"왜 힘들지 않겠어요. 30km쯤 뛰고 나면 발이 안 떨어집니다. 그러면 이를 악물고 뛰어요. 남들은 경치도 보면서 뛴다는데, 전 오로지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뜁니다. 결승전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거기까지만 가게 해달라고 생각해요."

마라톤도 아이 낳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산때 열 시간 이상 고통스러워하면서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던 산모가 금방 둘째 낳는다고 찾아오듯, 마라토너도 죽어도 다시는 뛰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시 하게 된단다.

"완주 후에 다시는 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반나절도 못 갑니다. 다시 어느 대회를 나갈까 고민하는 절 보게 되죠."
이쯤 되면 서서히 의문이 간다. '마라톤이 그렇게 좋을까? 힘든 걸 왜 계속 열심히 뛸까?'이런 속마음을 알았는지, 이어 마라톤 예찬론이 펼쳐졌다.

"마라톤은 정말 매력있어요.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달라도 하다보면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 마라톤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죠. 술을 먹다 보면 술이 술을 먹고 사람을 먹듯, 마라톤을 하다보면 마라톤에 미치게 되는 거죠."

그도 그 깊은 수렁에 빠졌는지 마라톤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무리하게 완주하다 오른쪽 고관절 부위 근육파열로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95%정도 회복된 상태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마라톤 동료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한다.

"내가 의사니까 일반인 마라토너들이 이것저것 조언을 구하곤 합니다. 그들에게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얘기하면서 정작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동료들이 '당신 정말 의사 맞냐'고 묻기도 하죠."
급기야는 "마라톤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감격과 기쁨과 매력을 모릅니다. 말로는 표현이 안 돼요." 라면서 기자에게 달리기를 권했다.

마라톤보다 더 힘든 고기먹기
그러나, 운동의 '운'자와도 거리가 먼 기자는 서둘러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얼마 전, 협회 내 마라톤 동우회 회원 분들이 마라톤 대회에 나갔어요. 완주를 하신 분도 있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먼저 운을 떼어 화제를 돌리고 미리 마음먹고 있던 식이요법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마라톤을 일요일에 한다면 전주 일요일 밤에 강도높은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월·화·수요일에는 단백질만, 목·금·토요일에는 탄수화물만 먹어요. 그렇게 하면 수요일까지 근육 속의 글리코겐(탄수화물의 저장형태)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에서 목요일부터 탄수화물을 집중 섭취하면 엄청난 양의 글리코겐이 저장되는 거죠. 그러면 당일 날은 글리코겐이 최대화되어 컨디션이 좋아집니다. 마라톤을 하는데 실제로 필요한 영양소는 글리코겐이거든요."

요즘은 철저한 식이요법보다는 80% 수준에서 시행하는 경향이라며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마라톤보다 더 힘든 게 고기만 먹는 것"이라고 웃으며 속내를 털어놨다.

성지순례를 향한 여정을 떠나며
그는 지난 7일 열린 중앙일보 서울마라톤에서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마라톤 100회 완주를 달성했다. 계절마다 뛰어서 1년에 4번을 완주하더라도 꼬박 25년의 시간이 걸리는 엄청난 일을 불과 9년만에 해냈다.

"100이라는 숫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묘합니다. 정상에 섰다는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떨리기도 하구요."
그의 말이 당연하게 들린다. 평생에 한번 마라톤 완주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또 다른 목표를 향해 가야죠."
마라톤 100회 완주를 해냈으니 조금 여유를 가질만도 하지만, 그는 다시 요목조목 앞으로의 계획을 풀어 놓았다.

"장기적으론 200회 완주도 해야죠. 우선은 내년에 있을 국내 철인 3종경기 철인코스 1등이 목표입니다. 철인코스는 올림픽 코스와 달리, 수영 3.9km, 싸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를 하는 겁니다. 여기서 1등을 하면 하와이 세계 챔피언 대회 출전 자격이 주어져요. 이 세계에선 하와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마치 성지순례와도 같은 것이라면 이해가 갈까요?"

성.지.순.례. 기독교 신자의 마음에 팍 와닿았다. 그칠 줄 모르는 그의 도전정신과 체력에 경의를 표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맑은 그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한계가 없는 법. 그것이 우리네 인생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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