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말이 통하는 사회
시론 말이 통하는 사회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4.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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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수 천년 긴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이지만 사실 지금의 체제(대한민국)가 수립된 것은 불과 수 십년 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는 길다지만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은 민족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해방 60여 년이 된 지금까지도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합리주의, 즉 말이 통하는 사회 분위기는 잘 조성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로 유교적 권위주의의 영향으로 더욱 그러하였고, 일본 식민지와 군사 정권의 통치를 거치면서 그 정도가 심화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의사 사회도 비단 예외는 아니다. 전체적인 나라 분위기에 의료의 특수성까지 결부되면서 의사사회의 권위주의, 특히나 대화와 타협이 통하지 않는 정도는 극심한 것 같다. 바야흐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역사와 사회의 큰 흐름은 점점 더 민주화 되고 있지만 의사 사회는 그다지 민주화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과연 지나친 발언일까?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병원협회가 체결한 상호 합의안과 이에 기초한 교섭위원회는 극한의 투쟁과 대립으로만 치닫는 기존의 노사분쟁과 같은 갈등을 지양하고, 좀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대화의 타협의 장으로서 새로운 노사 모델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모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동상이몽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필자의 걱정이 그대로 들어맞는 것 같다. 합리적인 토론의 장을 통해 점진적인 개혁과 발전을 지양하려는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생각은, 도대체 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별다른 개념이 없는 대한병원협회라는 거대한 벽 앞에 봉착해 있는 것은 아닐까?

천 년 동안이나 공화국으로서 건전한 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던 도시국가 베네치아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자신들이 워낙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막연하게 상대편(다른 나라들)도 그럴 것이라 전제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그런 실수까지는 아니지만(왜냐하면 이미 인지하고는 있었으니까) 그래도 합리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지향하였는데, 결국 베네치아 공화국과 같은 딜레마에 봉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중세 이후 역사는 결국 베네치아 공화국과 투르크 제국의 엄청난 전쟁과 참화로 이어졌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투르크 제국이 강력한 힘을 내세워 승리하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서 그 명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그저 그런 나라로 전락한 터키를 비교하여 보면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병원협회의 갈등은 어떻게 될지 사실 결과가 보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좀더 먼 훗날 궁극적으로 누가 더 우리나라의 발전과 한국 의료의 발전에 튼튼한 토대로서의 역할을 다 했는지 역사가들이, 또 훗날의 의사들이 올바로 평가하리라고 필자는 감히 생각해 본다. 또한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역사 앞에 떳떳한 대한전공의협의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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