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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상처 마음에 보듬다

아프리카의 상처 마음에 보듬다

  • 김병덕 kmatimes@kma.org
  • 승인 2005.01.2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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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예수병원 김민철 원장

"나는 5세, 7세, 10세 된 아이를 두고 부모가 콜레라로 죽은 비극적인 경우를 기억한다.…나는 혼수 상태의 소년에게 정맥 주사를 놓기 시작했고 누이 동생에게 수액이 다 들어가면 갈아주도록 이야기해두었다.…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다닌다.…가을이 되자 전염병은 수그러들었으나 이 때는 이미 전북 지방에서만 10,000명의 생명을 앗아간 뒤였다."

1994년 그는 전주 예수병원의 역대 병원장 설대위(David Seel) 박사의 책(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1946년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유행했던 이 기록에 마음이 멈추었다.

그 즈음 르완다에서 난민들이 콜레라로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죽은 5만 명의 시체가 즐비한 사진들을 한 잡지에서 보았다.

그리고, 또 한 컷의 사진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수단에서 한 아이가 음식을 받으러 가족을 따라가다가 힘이 없어서 쓰러져 있는 장면이에요. 그 뒤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따라오죠. 이 사람은 퓰리처상 받고 그 해 12월에 자살했어요."

그 해 김민철 원장(50세)은 르완다로 들어갔다.

1995년에는 우크라이나를 방문,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고통을 겪는 고려인 3세들을 치료했으며, 1999년에는 우간다에 다녀왔다.

혈액종양내과의로서 전주 예수병원에 근무하면서 병원 부설 기독의학연구원장, 기획조정실장, 해외업무협력관 등을 역임하며 치유 사역에 심신을 부리던 터였다.

"아프리카에 대한 부담을 갖고 돌아왔죠. 난민들에게 의사가 '식후 30분마다 이 약 드십시오'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의료인으로 하는 일에 대해 조금씩 갖고 있던 자부심도 와르르 다 무너지고, 정말 의료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주방장 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식당 만들어서 애들 밥 먹이고 했죠. 전쟁, 기아, 에이즈로 대표되는 대륙이고…."

김민철 원장은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왔고, 그것이 한 번도 안 바뀌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신앙이 그것을 뒷받침해주었으며, 역시 같은 생각을 키워온 아내 최금희 여사(산부인과 전문의, 48세)를 의과대학에서 만났다.

예수병원에서도 말기 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활동이며, 외국인 노동자 진료, 행려병자들의 무료 진료 등 병원의 뜻에 부합하는 수많은 일에 먼저 관여해온 터였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부담'을 늘 마음에 지우고 있었다.

"예수교회 100주년을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가,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아내와 공감하고 쉽게 결정했죠. 99년초에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우간다 진료를 다녀왔죠. 그리고나서 애들 태도가 많이 달라졌어요. 한국에서 누리던 것이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어요. 엄마, 아빠 하는 일에 동의했어요."

2000년 8월 예수병원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서 선교학과 열대의학, 기생충학, 타문화학 등을 공부하며 아프리카 의료 선교를 준비했다. 그리고 2001년 6월 국제선교회 소속으로 나이지리아로 떠났다.

수도 아부자에서 350킬로미터 떨어진 오지, 엑베마을에서 그와 아내는 질병 뿐만 아니라 기아와 문맹, 종족들의 폐쇄적인 사고방식 등 모든 것과 싸워야 했고, 싸우기 이전에 그 모든 것들과 친숙해져야 했다. 일부러 수염을 기른 것도 그래야 어른 취급해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까닭이었다.

그곳에서 의사 김민철은 수련의로서, 때론 영사기사로서, 알파벳 시청각 자료를 몸소 준비하는 유치원 교사로서 모든 삶에 파고들었다. 특히 무슬림인 캄바리족과 풀라니족 여성들의 질환과 성교육(VVF 프로젝트)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이다.

"무지한 상태에서 어린 나이에 임신한 여성들이 질환이 동반되면 내버려지죠. 신체적 준비 나 성교육이 미비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을 앓는 어린 여성이 80만명 정도예요.  그 전부터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진행중이던 프로젝트죠."

어린이들을 위한 문맹 교실은 아들 요한과 딸 혜린이 훨씬 더 훌륭하게 진행하더라고. "제가 자리를 좀 비우게 돼서 애들한테 맡겼더니, 더 잘하더라고요.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시청각 교육 자료를 만들었더니 그 쪽 선교사들이 그 자료를 달라고 조르더군요. 하하하."

그가 또 한 가지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일은 중고등학생, 신학생 대상 에이즈 예방 교육.  

"에이즈는 아프리카 전체를 재난으로 몰아넣는 부분이에요. 콘돔 지원 사업은 실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봐요. 고등학생한테 콘돔을 쓰라 교육하는 건 의미가 없죠. 또 하나, 2005년까지 300만명에게 에이즈 약을 지원한다는 정책도 회의적이에요. 청소년을 교육시키는 것이 방향이죠."

그러던 중 맞은 안식 휴가 10개월간은 캐나다에서 타문화학을 좀더 공부할 생각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생을 마칠 생각으로. 그때 예수병원을 맡아달라는 급한 전갈을 받았다. 곤경에 처한 병원의 직원들로부터 건네온 도움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또한 가고자 하는 길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길이 아닐 터.

올해 6월, 제19대 원장으로 취임한 김민철은 지금 경영상 곤란에 빠진 병원을 어떻게 바로세우나 여러 궁리중이다. 수염이 썩 잘 어울리던 아프리카에서와는 또 다른 움직임이 요구되는 냉엄한 현실이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과거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 진료에 한 해 동안 1억원을 고스란히 부담하는 병원이에요. 제초제를 먹고 찾아오는 사람들, 행려병자들… 결국 치료해놓고 보면 돈도 낼 수 없는 가난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결국 그런 목적으로 세운 병원이니, 저희들이 일단 치료는 하죠. 좋은 일들을 하면서도 그만큼 사회가 평가를 안 해주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가난한 암 환자들을 위해 후원회가 지금까지 몇 억을 썼는지 몰라요. 참, 해야 될 일을 하면서도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고민들이 많죠. 아프리카에 잇을 때가 훨씬 편하죠. 허허허."

하지만, 김민철 원장은 무엇보다 삶의 모든 면면을 우선은 따뜻하게, 혹은 짓궂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내 몸을 던지는 듯했다. 치료를 받고 완치되어 환히 웃는 캄바리족 어린 여성의 미소와 나무 몇 개와 지푸라기로 대충 지은 아이들의 학교, 아프리카 어느 오지의 새벽 이슬, 삭발한 아들 요한과 딸 혜란의 기특한 웃음, 수술하는 아내와 그 곳 꼬마들과 얘기하는 아내, 에이즈 예방교육 시간에 졸음에 빠진 청소년들의 모습… 엑베 마을에서 만나고 싸워가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아, 소중히 간직해온 김민철 원장의 힘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따듯하지만 강하게 발현되리라 믿는다. 어디서는 그에게는 한 가지 마음이 있을 따름이니.

"이 세상 누구나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의사 자신도 상처받은 부분이 있고...상처받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으로서 치유자가 되어가는 것! 의사가 그것을 잘 인식한다면…평범한 사마리아인처럼 가슴 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을 때 죽어가는 사람, 상처받은 사람을 구해내는 것 같아요. 불편한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요."

 

글 / 최지영 대리(보령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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