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형(의협 정책이사 순천향의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보건의료 과제
보건의료정책실 신설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바뀌면서 대통령직 인수위의 활동, 대통령 취임식, 총리 장·차관 등 정부고위직의 임명, 새로 임용된 장관들의 집무풍경과 재미있는 사례들로 기대와 우려를 번갈아 가며 심심치않게 보냈다. 더구나 검찰인사에 대한 검사들의 불만표출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토론의 TV방영 등, 다른 정권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을 보며 참여정부의 출범을 보고 있다.
한편 매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규제개혁, 정부조직 축소 개편 등의 단어가 사라진 점이 좀 이상하다. 내년 총선 때까진 정부조직을 손대지 않을 계획이라 하면서 청와대는 조직과 인원이 늘어나기까지 하였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처도 장관이 바뀌었지만 차관은 내부에서 승진되어 비교적 안정적이다.
이 시점에서 보건복지부의 조직 신설을 요구하는 것이 새삼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논의하려는 보건의료정책실 신설은 정부조직 개편에 슬그머니 끼어 들려는 발상이 아니다. 직전의 국민의 정부에서 의약정 합의시 약속한 사항이며, 전 대통령 직속 의료발전특별위원회에서 거의 의결된 사항이며, 의사, 치과의사 등 보건복지부 관련 직능단체들의 오랜 바램이기도 한다.
예전부터 우리는 관청으로부터 받는 재앙을 `관재(官災)'라 해서 관과 접하는 일은 되도록 피하려고 하고 있으며, 관공서는 되도록 뒤로 돌아다니라는 말까지 있다. 이는 관과 민과의 관계가 지배와 억압의 관계로 점철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의·정합의 시 보건복지부에 보건의료정책실 신설이라는 의제가 합의된 바 있다. 그것도 의사들의 의료대란으로 정부와 대립하고 있을 때이다. 의사들이 투쟁의 상대편 조직을 강화시켜달라고 요구하였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의사들의 생각은 어차피 의료정책을 정부가 주도하는 만큼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행정부처는 좋은일이던 나쁜일이던 큰일이 발생하면 조직을 신설한다. 88올림픽 때 체육부 신설, 삼풍사고 후 중앙 구조대 신설 및 각 소방서별로 구급구조과(계)설치, IMF 후에 기획예산처 신설, 한약분쟁 후 한방정책관 신설 등등.
그러나 6개월 이상을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하면서 끌어온 의료대란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의 의료관련 조직에는 변화가 없다. 공무원들의 조직신설 기미가 없자 의사들이 나서서 조직신설을 주장하였다. 이는 의료대란의 중요원인이 의료계와 신뢰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고위공무원의 부재, 의료정책과 의료보험정책의 조정 부재, 서로간의 오해와 불신 등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어난 한약분쟁, 의약분업과 의료대란, 건강보험재정파탄 등이 실제로 조정능력 부족과 오해와 편견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계속 큰 사건을 겪으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안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관련 이해단체들이 지쳐서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거나, 갈등과 오해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불씨가 늘 살아있는 형편이다. 최근에는 건강보험재정 적자문제가 계속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현재 건강보험재정위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있다. 계속 의료계의 비용을 삭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비용절감형의 의료제도를 고안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급한불만 꺼나가서는 국민보건은 희망이 없다. 즉 `참여정부'에서는 국민과 의료계와 정부가 참여하여 국가 100년 대계를 바라보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나가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의료정책실과 같은 행정조직과 미국의 Surgeon-General 과 같은 권위 있는 실장이 필요할 때이다.
미국의 경우 Surgeon-General(보건차관보)은 대통령으로부터 4년 간의 임기로 임명받고 연방 상원의 승인을 받으며, 보건 의료에 관한 일을 책임지고 장관, 대통령, 의회에 보고하고 있다. 보고서(A Report of the Surgeon General)은 매우 권위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행정문서이다. 2001년에는 정신보건에 관한사항을 보고하였다(Mental Health:Culture, Race and Ethnity, A supplement to Mental Health:A Report of the Surgeon General). Surgeon-General은 6,000명 이상의 공중보건 종사 의사(U.S. Public Health Service Commissioned Corps)를 지휘한다.
보건의료정책실은 보건·의료와 건강보험 중 의료정책의 중요한 정책수단이 되는 보험급여 및 치무·한방·간호 등이 모여서 서로 조정하고 통합하는 부서가 되어야 한다. 보험재정파탄이 의약분업 때문인가, 수가인상 때문인가 하는 것은 의료계와 정부사이의 논란거리일 뿐 아니라 의료정책 담당부서와 건강보험담당부서의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만약 보건의료정책실장하에 양부서가 같이 일했다면 그러한 논란거리가 없어질 것은 물론 현재 보다는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국립의료원·국립정신·결핵·나병원·국립보건원·국립검역소·국립암센터·국립재활원·식품의약품안전청·국민겅강보험관리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공단병원 등 보건복지부 소속 산하기관들과 보건소·지방공사 의료원 등 지방 자치단체 기관들에 대한 통합적 조정기능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료계의 여망인 보건의료계의 인사가 장차관 등으로 임명될 수 있는 통로역할도 할 수 있다. 그간 의료계는 보건복지부 장관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장관이 될 수 있는 정부고위직, 국회의원,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 등 보직관리에는 소홀히 해왔다.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보건의료인이 장·차관으로 승진할 수 있는 단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조직 신설뿐 아니라 조직의 장에 대한 임명절차의 민주성도 중요한 문제이다.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료계의 실력 있고 덕망 있는 인사가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도 살고 의료계도 살 수 있다고 본다. 지금부터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의 합작품으로 보건의료정책실을 신설해 보자. 의료계에서는 정부에 청원하고 대통령에 요구하고 정부에서는 뒷받침해서 적극 노력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