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성(서울 강동·동서울외과)
의료분쟁조정법 제정
의사들은 의료분쟁을 다루는 특별법이 빨리 제정되길 원한다. 분쟁조정법이 여러 차례 법제화되지 못한 이유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이 의사들의 옳은 주장보다 크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의료계의 핫 이슈인 의약분업과 관련하여 약화사고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것도 요구했고, 의·정협상에서 이 법은 의료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다루기로 하였다.
분쟁조정법을 제정하여 궁극적으로 의료분쟁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단지 분쟁조정에 관한 규율만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피해구제범위·피해구제기금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손해조정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는 한 실효성 없는 법안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분쟁해결의 궁극적인 목표는 피해자 손해의 전보다. 따라서 분쟁조정의 핵심인 심사의 공정성과 환자가 수긍할 보상재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의료분쟁처리제도는 법정에서 민·형사소송으로 과실책임배상과 업무상 과실을 기본으로 취하고 있다. 그 외에 복지부의 의료심사조정위원회(의료법 54조)는 활동이 거의 전무한 상태로 법 조항 자체가 사문화되어 있고, 소비자보호원의 분쟁조정위원회와 민사조정법상의 조정은 법과 제도의 미비로 업무에 많은 한계점이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의사협회 공제회(의료법 28조)가 여러 이유로 분쟁해결에 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한다.
의료과오 해결에서 가장 문제되는 점은 전문성과 공정성이다. 이를 보장하려면 조정위원회 내에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전문가 심사기구인 `의료분쟁심사위원회(가칭)'를 구성하여 실질적인 과오판정 및 배상책임 기준과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심사위원회는 의료과오에 대하여 법적·의학적 판단으로 정확해질 수 있기 때문에 주로 법학관련자와 의사, 특히 각과의 전문의사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는 사안의 실체인 사실관계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밝힐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 상설기구를 설치·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료정책전문위원회 법안(이하 조정법이라 함)의 조정위원회·조정부·조사관 등 의료분쟁위원회 구성에 문제점이 있다. 법관·의사 등 심사위원 모두가 의료소비자이고 국민이 뽑지 않은 소비자대표 등 필요없는 인원은 빼야 한다. `이젠 개입하면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감초 같은 생각은 안 된다.
참고로 법원의 감정판단 당부에서도 법의학자가 주로 감정하고 있어 임상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교과서적인 판단을 한다는 비난받는 사례가 많고, 너무 동료의식을 앞세울 때는 어느 누구도 사건 당사자임과 동시에 법관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법이념이다. 그래서 임상의학의 문제는 임상전문의가 감정 적격자이므로 감정인명부제도의 도입이나 국립감정기관의 설립을 현직판사가 제안하기도 했다.
일본의 분쟁처리는 의사회와 보험회사와의 협력 하에 조사위원회가 분쟁의 실태를 조사하여 이를 배상책임심사회에 보고하여 심사한다. 조사위원회는 일본의사회의 위촉으로 30여명을 임명하여 수명의 변호사를 포함하며 대부분 의사로 구성되었다. 활동은 매주1회 회의를 통해 사고조사하고 별도의 조사업무는 보조팀이 지원된다.
의사배상책임심사회는 제삼자적 입장에서 중립적 기구로 설치되어 엄밀한 의학적 관점에서의 감정과 적정한 법률판단을 명확히 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하고, 보험제도의 목적인 손실전보기능과 분쟁해결기능을 충실히 수행코자 한다. 내과·외과·산부인과·법의학 교수 6명, 법학교수·민법변호사 4명 등 총10여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해구제는 의사배상책임보험을 통해 의사와 피해자간의 합의를 유도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보험자 조사위원회·배상책임심사회의 판례를 통해서 의사의 과실유무와 이에 따른 배상액을 결정한다. 이에 불복하는 경우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는 과실배상제도를 택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약물자체의 부작용과 예방접종의 부작용에 따른 의료사고를 처리하고 있다.
피해보상사업의 범위를 규정한 조정법안은 `부검결과 사망에 이른 원인을 추정할 수 없는 의료사고'와 `환자의 특이체질 또는 과민반응으로 인하여 발생한 의료사고'는 피해자의 청구에 따라 그가 입은 피해를 보상한다고 되어있다. 기존 입법안과는 달리 매우 진일보된 입법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분쟁은 의사의 과실인지 불가항력적인지 구분이 모호하여 서로의 주장들이 팽팽할 때 유발된다.
따라서 `과실과 불가항력적인 사고의 경계영역'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갖지 않는 한 분쟁해결방안으로서 제 기능을 못한다. 과실배상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의료분쟁조정법안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 경우는 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현재의 손보사 의사배상책임보험이면 된다. 따라서 조정법은 현대의학으로 예견되지 않고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피해'는 피해보상범위에 추가되어야 맞다. 이는 의료행위 그 자체가 위험을 내재하고 있고 국민 누구나 치료받아야 할 상황에 있는 것이고, 신체의 예외적 상황으로 의료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상책임 부분은 기존법안에서 의사협회가 책임과 종합공제를 독점운영하고 의사 등의 강제가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제조합의 설립강제는 민간사업자의 자율권을 침해하고 민간보험시장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가입자가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편 김정동 경영학교수는 “독점과 강제가입을 기본운영원리로 삼고 있는 우리의 의료보험제도가 수많은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고, 의사들에게 정신적 모멸감을 안겨주고 있으며, 의료분야발전에 지대한 장해가 되고있고, 국민보건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독점과 강제가입을 운영원리로 하는 조정법안의 의료배상공제조합제도를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며, 잘못 설계된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의사들이 또다시 독점과 강제가입제도를 지지하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변, 경쟁시장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피해환자의 손해를 배상하자는 목적인데 의료사고 보험시장이 엄청난 규모의 시장과 경제논리를 끌어들인 공정거래위원회의 발상은 아니라 생각되며, 김정동 교수의 의견은 배워야 한다.
하지만 하위법령에서는 독점과 강제가입 문제가 일부 남더라도 의무가입인 책임공제는 각 전문과의 할당금액과 유연한 보험요금체계 및 할인·할증금 등을 내부조정할 수 있는 대한의사협회가 주관하고, 종합보험이나 종합공제는 의사협회와 민간보험회사가 모두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선택은 의사개인에게 맡기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공제조합이 보험의 공급을 완전 독점하는 사태를 회피하고, 현재 각과 개원의협의회가 과별 특성에 맞는 모델로 연구하여 단체 협약한 민간보험회사의 배상책임보험은 폐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 각과별 특성과 이해관계에 따른 차등의 보험료와 배상기준도 손쉽게 산출이 가능하다.
일본의 의사배상책임보험계약자는 의사개인이 아니라 사단법인 일본의사회다. 의사회가 회원들이 의사회에 납부한 보험료로 간사보험사 등 5개 보험사와 단체협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스웨덴에서는 이상적인 방법으로 환자의 치료위험인 `환자보험'이 실시되고 있다.
자금조달의 구체적인 방안은 의사의 과실사고에 대비하여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갹출한 보험료로 구성되는 `배상기금'과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보상을 위한 `각종 피해구제기금'으로 나누어 자금조달이 이루어져야 한다. 피해구제기금은 국가·의료보험단체·의료인·제약회사·의료기제조회사·의료기수입업자, 경우에 따라 가족계획협회·적십자사도 참여되어야 한다. `의약품부작용피해구제사업'(약사법 72조 2항)도 이에 속한다.
이 기금은 의료행위의 성질상 의사 또는 환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는 의료사고와 의약품사고·의료기기부작용·전염병예방접종 부작용·불임 및 피임시술사고·헌혈 및 수혈사고 등이 포함될 것이다. 전염병예방법(54조의2) 및 약사법(72조의7)의 규정은 최근 조정법안에 포함되어 있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의무와 의료보장의 복지국가 실현의 의무가 있으므로 국가가 기금조성에 먼저 앞장서야 한다. 또 우리의 의료수가는 건강보험공단이라는 규제당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규제가격 체제이다. 제조업의 경우 화재보험료·산재보험료 등 위험부담비용이 제조원가에 반영되어 소비자도 비용의 일부를 부담한다.
진료거부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부담비용이 의료서비스의 가격인 의료보험료와 의료수가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조정법안에 배상책임 위험부담료를 의료보험수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 법안은 환자보호와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만들어 국민이 가장 큰 혜택을 보게 하자는 것이다. 최근 조정법에 의료의 일부인 `약화사고'를 목적에 추가하여 명시하고 있다. 이 법도 의약분업에서와 같이 매우 복잡한 시행령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믿을 수 없는 어용시민단체나 일부약사들이 말이 안 되는 주장으로 이해관계를 들어 딴지를 걸 수 있다. 약화사고를 이 법 목적에 포함시켜도 되지만 법제정의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
이 법에서는 `약화사고피해구제기금'만 조성하도록 만들면 된다. 약화사고 책임소재문제는 약사의 조제기록을 5년 보관시킨다면(약사법개정 예정)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약사가 대체조제 등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한다면 얼마든지 소송에서 민사책임여부를 따질 수 있고, 소송결과는 조정법에서 의사에게 배상책임공제나 보험이 적용된다.
이 외에 신속한 피해보상과 제도의 빠른 정착을 위해서 소송전에 조정을 거치는 `필요적 조정신청'은 요구된다. 의료인의 형사책임은 `고의나 치명적인 실수인 중과실' 경우를 제외하고 사망의 경우도 형사처벌특례는 인정되어야 한다. 보상의 범위는 의사나 간호사 및 의료관계 종사자가 병원에 책임이 있는 검사 등 치료행위 이여야 하고, 상해는 질병의 자연 진행과정이나 순수한 정신적 부작용을 제외한 육체적인 것에 국한하여야 한다.
조정제도가 시행되면 피해자 측의 병원점거 농성에 대해 엄격한 현행법의 집행으로 제삼자가 개입하여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독소적인 행위관행은 이제는 의사단체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국가는 의료분쟁해결기구의 실질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행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빠른 기간 내에 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법적 뒷받침을 확실히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