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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의협 성명 유감

시론 인의협 성명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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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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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철 교수(서울의대 신경정신과학)

인의협의 성명은 가히 충격적이다. 신문에 개재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대란의 근본원인인 잘못된 보건의료제도를 개혁해야 하지만 파업을 벌이는 의사들이 국민이 아닌 의사입장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어 이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중앙일보 2000년 9월 6일자 27면).

물론 신문을 위시하여 현재의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매체가 진실의 보도보다는 자기들에게 필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보도하는 기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인의협 성명에 대한 상기의 기사가 사실인지 사실이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는 없으나 이 기사에 대하여 인의협이 특별히 반박성명을 내지 않은 것을 보면 사실인 듯하다. 이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밝혀 보고자 한다.
 
첫째는 상기의 성명은 양비론(兩非論)이다. 현재 갈등의 주역인 정부와 의사들이 모두 그르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인의협은 현재 의사들이 파업을 중단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두 번째는 파업의 이유에 대하여이다. 현재 학생들이 교실을 떠나고 상당수의 개업의, 모든 전공의와 전임의 그리고 이제는 교수들마저 환자곁을 떠난 상태이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여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대화를 하기 위하여이다. 대화(communication)란 상대방이 있게 마련이고 서로가 기본적인 자세가 비슷하다면 갈등은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서로의 자세나 수준에서 차이가 있다면 내가 상대방의 수준이 되거나 상대방의 나의 수준이 되거나 하는 과정을 거쳐야 대화자체가 가능해진다.

정부의 수준이 의사들의 수준과 일치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의사들이 정부의 수준에 맞추기 위하여 파업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태도로 보아서는 현재로서는 파업만이 유일하게 정부와 대화를 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파업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파업을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면 파업을 중단한 후의 대책에 대한 언급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관계(relationship)의 문제이다. 여기서는 의사-환자간의 관계가 되겠다. 흔히들 의사-환자관계 하면 의사가 일방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관계로 생각을 한다. 파업에 대한 비난도 이러한 태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하지는 않다. 의사-환자관계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관계가 상호성(mutuality, bilaterality)의 특성을 갖는다.

즉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환자는 의사를 필요로 하고 의사 또한 환자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환자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건질 수가 있지만 의사 또한 환자라는 존재로 인하여 생존(physical, psychological, social and spiritual survival)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소위 '더불어 산다'는 말은 관계의 이러한 상호적인 특성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가 환자의 곁을 떠나는 행동의 또 다른 한가지 의미는 자신의 생존권을 스스로 박탈하는 엄청난 자기 희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해적인 행동(self-destructive behavior), 자살에 가까운 행동인 것이다.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하여 자기희생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 전공의, 전임의들의 행동도 똑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보다 높은 수준의 인도주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작은 인도주의를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 현재 의사들의 파업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것이다. 보다 높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작은 사랑의 희생인 것이다.

넷째 상기의 성명은 의사들이 의사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을 의한 해결책은 무엇인가?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는 人道主義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말 그대로를 본다면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을 추구하는 사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짐승이 아니고 인간이면 누구나 실천하고 있거나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人道主義를 표방한다고 하여 그 사람들만 人道主義者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非人道主義者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인의협에 속한 회원들도 자신들만이 진정한 인도주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리라 확신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만이 진정한 인도주의자'라는 생각은 엄청난 獨善, 我執, 傲慢, 偏見이며 이러한 부정적인 心性을 가지고는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진정한 인도주의를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人道主義를 '하나주의'로 이해하고 있다. 즉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등등이 인도주의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이런 자세를 가질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너와 내가 하나가 되면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와 내가 하나가 되면 나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너의 생명도 소중한 것이라는 심성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하나사상'은 나의 사상이 아니라 老子(得一思想, 하나를 획득하는 사상)나 莊子(萬物齊同思想, 세상 만사가 상대적인 입장에서는 차이가 있는 것 같으나 절대적인 입장에서는 차별상이 없어진다는 사상이다.) 등 현인들이 과거부터 주장해 오고 있는 사상이며 불교의 사상(生死不二, 無始無終, 不生不滅, 不去不來, 등)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상 중의 하나이다.

동양의 사상뿐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사상 중에도 '하나사상'이 중요한 사상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사랑은 모두 지니고 있는 심성이기 때문에 이웃과 내가 하나가 되면 이웃에 대한 사랑은 자동적으로 실천되기 때문이다. 내용은 간단하나 실천하기는 아주 어려우며 발달의 단계를 갖는다.

즉 가까운 사람들과 우선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친 후에라야 다른 사람들과도 '하나됨'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저 사람은 식구들에게는 無心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잘해서 호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엄청난 위선주의이다.

어찌 식구들에게 함부로 언동을 하고 밖에 나가서 듣기 좋은 소리를 할 때 그 소리가 진실성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사와 환자가 하나됨'을 실천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실천되기 위하여는 '의사와 의사간의 하나됨'이 선행되거나 그것이 힘든 경우에는 최소한 노력하는 과정은 있어야 한다. 인의협은 그러한 성명을 발표하기 전에 이러한 노력을 하였는가? 하였다면 어떤 내용이 토론이 되었는가? 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만장 일치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며 서로 충분한 토의를 거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일단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이 된 사항에 대하여는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이에 따르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도덕관이나 윤리관에 비추어 도저히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환자를 돌보면 된다. 인의협에 속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회원들이 환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러나 이 때에는 조용히 돌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한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선언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환자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받아들여 이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봉사의 마음을 갖고 이를 실천하는 행동은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한 자세이다.

그러나 잘못된 의료제도가 그대로 확정이 되고 시행이 될 때, 의사나 환자가 공히 겪어야 할 고통을 미리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일 또한 숭고한 인도주의라고 할 것이다.

인도주의에 크고 작음이 있을 수가 없지만 굳이 양적인 면에서 어느 쪽이 국민의 고통을 더 많이 줄여줄 수 있는가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제도의 개선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준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의사들의 파업이 훨씬 더 큰 인도주의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의사와 국민이라는 2분법에 의하여 문제를 다루려고 하고 있다. 인의협의 성명도 마찬가지이다. '의사들이 국민이 아닌 의사입장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어'라는 기사의 내용이다. 상당히 실망스러운 표현이다. 인도주의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들이 이러한 내용의 성명을 표방하였다면 그대로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인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집단이라면 그에 걸맞는 의견의 표방이 되어야 한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인도주의는 하나주의이다. 따라서 현상을 대극적으로 보는 관점은 인도주의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표현한다면 의사와 국민이라는 2분법이 아니라 '국민 속에 의사가 포함되어 있는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의사는 무엇이며 국민은 무엇인가? 의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적어도 인의협은 '의사와 국민의 희생을 둘 다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 더 적극적으로는 의사와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모두 증진시키는 방안에 대한 대책을 세웠어야 하고 그에 마땅한 답이 없을 때에는 침묵을 지키는 태도가 옳은 인도주의의 실천이 아니었을까 싶다.

현재 모든 언론매체는 의사집단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내부에서 토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자들을 모아놓고 성명을 발표하는 행동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 이유는 첫째 언론에 의하여 악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악용되고 있다.

수천명의 교수가 모여서 결의대회를 한 내용에 대하여는 거의 다루지도 않으면서 인의협의 성명은 대문짝 만하게 다루어 마치 의료계 내에서 극심한 갈등이 있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것을 보면 언론에 의하여 얼마나 악용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런 성명을 통하여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의협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파업에 동조하고 있지 않은 의사들은 이미 환자의 진료를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인도주의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의협이 단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그러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고 믿지는 않으나 萬에 하나 이러한 의도가 있었다면 이것 또한 진정한 인도주의의 정신과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人道主義'하면 연상되는 것이 '부드러움', '따뜻함', '사랑과 봉사와 희생', '용서함', '모든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 '信賴', '양보의 정신', '착한 마음', '남을 비난하지 않음', '無慾', '眞善美의 추구', '민주주의', '하나주의', '忍耐', '평화로움', '조화와 균형', '대극의 합일', '자연스러움', '心虛卽靜' 등이며 무엇보다도 더 강력하게 연상이 되는 단어는 '謙遜'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묵묵히 실천하는 것',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태도', '스스로 내세우지 않더라고 추구하는 가치 자체에 의하여 빛이 발하는 것', '또한 빛이 나지 않더라도 이에 개의하지 않는 태도' 등이 진정한 인도주의의 실천이 아닌가 한다.

기자들을 모아놓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인의협 대변인의 모습에서 내가 인도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있던 이런 심성의 그림자도 느낄 수 없었던 점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물론 나의 이러한 태도도 많은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老子의 道德經의 제1장에 나오는 교훈이다. '이것이 도라고 정의를 내리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고 이름을 지으면 이미 본래의 정신에는 어긋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道를 人道主義로 대치하면 많은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이것이 人道主義이다'라고 규정을 하면 그것은 이미 人道主義라고 할 수 없으며, 人道主義라고 명명하게 되면 이미 그것은 본래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 중요한 가르침을 제1장에 기술한 老子의 慧眼이 전율을 느낄 정도로 예리하게 가슴을 찌른다.

따라서 필자가 '나는 人道主義를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정의를 내린 상기의 기술은 이미 人道主義의 그 심오한 의미의 많은 부분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어떤 문제점이 내포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反省과 省察을 하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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