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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생물학적동등성이 약효동등성인가
시론 생물학적동등성이 약효동등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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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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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석 교수(가천의대 약리학)
대체조제를 왜 하는가 ?

적어도 이미 의약분업을 시행중인 여타 국가들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약의 소비자인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 이다. 그러나 2000년 현재 한국의 관리들에게 이 질문을 해 오면서 우리는 상당히 다른 답변을 들은 바 있다.

우선, 약국이 그 많은 종류의 카피 약들을 일일이 다 구비하기 힘들므로 의료소비자가 아닌 공급자의 현실적 편의를 위함이고, 한국의 무수히 많은 군소제약사를 보호하기 위한 애국적 결단이며 혹은 의사보다 못할 것이 없는 약사의 자긍심을 지켜주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즉, 대체 조제라는 정책이 바탕하고 있는 철학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므로 그 나라들과 한국의 정책시행 방향도 많이 다름을 또한 알 수 있었다. 대체조제를 의사의 동의없이 행하고, 의사가 대체 불가를 천명할 수 없고, 대체한 이후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겠다는 법안을 밀어붙이고자 했다는 점에서도 한국은 독보적이다.

어찌되었거나 이 말많은 대체조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 중 가장 큰 이슈는 생물학적 동등성(이하 생동성) 시험을 제대로 거친 제품만을 대체조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생동성이 확보된 약물이라고 하여 과연 모두 안심하고 대체조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약계 모두가 소홀히 다뤄온 측면이 없지 않다.

생동성이란 단순히 말해 카피 제제의 혈중농도가 오리지널의 80~125%내에 들면 동등하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 말이 온전히 약효의 동등성을 보장해 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의약분업과 제약산업의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오래된 많은 선진국들에서 제기되어 온 것이다.

비록 대체 투약 후 치료실패나 부작용 발현의 빈도가 전체 환자 중에서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체계적 조사는 없었으나 1980년대와 90년대에 유럽, 미국 등에서는 엄격한 생동성 시험을 거쳐 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혈관계 약물, 정신분열병 치료제, 간질 치료제, 면역억제제 등에서 카피제품을 사용하여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들이 이들 나라의 의사 또는 약사들에 의해 국제적인 학술지들을 통해 상당수 보고되어 왔다.(이러한 자료들은 대체조제의 영어 표현인 'generic substitution' 이란 검색어로써 메드라인 등을 검색해 보면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생동성 시험을 통과 하고 시판허가를 받았음에도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비동등성' 의 원인은 크게 생동성시험과 실제 임상 상황의 차이로 인한 것과 약물 자체의 특성으로 인한 것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생동성 시험이란 일반적으로 20~45세의 건강한 남자들을 공복상태에서 약을 먹인 후 시간별로 채혈하여 그 혈중 약물 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1주일 정도 간격을 두고 오리지널과 카피에 대해 교차시험함으로써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젊고 건강한 남자의 공복상태에서의 경구 흡수 패턴이 제제간에 같은지만을 보는 것으로서 대략 이 결과가 임상에서도 적용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생물학적으로 동등하다'는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 환자를 접할때의 상황은 이러한 생동성 시험의 셋팅과는 거리가 멀다. 젊고 건강한 남자 대신 늙거나 어린, 장기 기능에 한두가지씩의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약을 복용한다. 특히 소화관 기능이 떨어져 있는 고령자, 영유아 등의 약물 흡수 패턴은 건강한 젊은 남자와 같을 수 없다.

또한 위장관절제술의 기왕력이 있는 환자, 위장관에 염증성 질환 등이 있는 경우에도 동등성은 자신있게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서 생동성이 확인된 verapamil 제제가 건강에 별 문제가 없는 노인군에서는 동등하지 않았다는 연구 보고, 소화관 흡수 장애 있는 환자에서 cyclosporine 제제의 비동등성 연구 보고 등) 그리고 때로는 투여경로의 차이로도 생동성이 소실될 수 있다 (경구투여시 생동성 확인된 nifedipine 제제가 설하 투여시 생동성 소실된 연구보고).

또 하나 크게 차이나는 것은 환자가 공복에 약을 복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각 회사의 제형들에는 활성을 나타내는 성분(active ingredient)의 함량은 같을 지언정 적지않은 양의 활성이 없는 부형제(excipient)들이 제제학적 목적으로 함께 섞여 만들어져 있고 이는 회사마다 제각기 다를 수 있다.

이 부형제들의 조성의 차이로 인한 흡수패턴의 차이가 공복상태에서 행하는 생동성 시험에서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위속의 음식물과 제제간의 상호작용이 발생할 때 개개의 약물들에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약물과 음식의 상호작용의 양상은 제형이 바뀔 때마다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며 특히 서방형 제제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짐이 서구의 임상약리학자들에 의해 보고되어 있고 이는 대체조제 문제에 있어 임상의사들이 간과해서는 안될 주의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약물자체의 특성으로 인한 비동등성은 약리학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수용성이 낮거나 초회통과 효과(약물이 전신 순환혈로 흡수되기 전에 간문맥을 통해 간장을 통과하면서 대사되는 현상)가 큰 약들은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위장관에서의 흡수 패턴과 혈중 농도의 개인차가 클 수 밖에 없다. 또 투여량과 혈중 농도가 직선적인 비례관계를 보이지 않는 즉, 투여량 또는 흡수량의 미약한 증감으로도 혈중농도가 심하게 증가 또는 감소할 수 있는 비선형 약동학(Non-linear kinetics)의 특성을 갖는 phenytoin과 같은 제제들 역시 혈중농도의 개인차와 약효^독작용 빈도의 개인차가 극심하여 약효 동등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이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 경구피임제, 천식치료제, 이뇨제, 항 응고제, 면역억제제, 중추신경계 약물, 항암제 등과 같이 안전역이 좁은 약물들의 경우, 약동학적 특성과 무관하게 대체조제에 따른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예를들어 장기 이식 후 외래에서 면역억제제 등을 처방받는 환자가 일정 수준의 혈중 최고, 최저 농도를 정밀하게 유지하는데 실패할 경우 생명이 곧바로 위협받을 수도 있어 생동성이 확보되어 있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대체 조제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며 관련 법규의 보완이 절실한 것이다.

대체조제에 있어서 논란이 되는 이슈 중의 다른 하나는 의사가 카피약으로 처방낸 것을 또다른 카피 약으로 대체하는 행위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생동성의 인정 한계가 오리지널의 80~125 % 범위란 것을 고려하면 오리지널의 80%정도의 흡수를 보이는 카피제제를 복용하던 환자가 우연히 125% 흡수를 보이는 카피로 대체 복용하게 된다면 그 환자의 혈중 약물 농도는 무려 1.5배 이상 증가하는 상황이 유발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카피을 오리지널로 대체하건, 카피로 대체하건 대체 행위 자체가 환자에게 위험할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다. 약계 일각에서 의사들이 생동성 시험도 거치지 않은 저질 카피약을 처방하므로 오리지널이나 생동성이 확인된 카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 이전에 현재 시판중인 제품들 중 어떤 것이 생동성 시험을 거친 것인지를 그동안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정부 당국의 무신경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데 오리지널이 아닌 모든 제품들이 생동성을 거쳤는지 아닌지를 어느 의사가 알겠는가? 또, 생동성 시험을 거치지 않은 약들이 효과가 없는 약이라는 일부의 착각도 교정되어야 한다. 생동성 시험을 안했다는 것은 그 약이 오리지널과 동등한지 안한지를 모른다는 뜻이지 약효가 없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카피 제제로 적정 용량이 설정되어 치료를 받아온 환자가 있다면 이를 무턱대고 오리지널이나 생동성 시험 거친 타 카피제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환자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섣부른 발상임을 지적하고 싶다.

한편 이와 같은 약화사고의 가능성을 예방하고 카피 제품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의 FDA는 현재의 AUC, Cmax, Tmax의 평균값으로 오리지널과 카피를 비교하는 생동성 기준을 대폭 엄격하게 보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가시회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오리지널 제제를 복용하던 환자가 다른 회사의 카피 제형으로 바꾸어 복용해도 안전한지(switchability)와 처음 약을 복용하게 되는 환자의 경우 오리지널 대신 카피 제품으로 처방해도 문제가 없을지(prescriabability) 등을 보다 많은 수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지금처럼 단순한 2way crossover 실험보다 더 복잡한 실험과 통계처리를 거쳐야 하는 엄격한 방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향후 세계 선진국들이 이런 방향으로 생동성 기준들을 바꾸어가고 카피제품의 수출입 등에서도 유사한 기준을 적용하게 될 때까지 우리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 지도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생동성이 확보된 제품이란 말이 무조건적 대체조제의 자격증을 얻은 제품이란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 우리나라처럼 생동성 시험과 카피제품의 시판허가가가 엉망으로 행해져온 나라에서는 적지않은 약화사고와 치료실패가 초래될 수 있다.

이제 의, 약, 정, 시민단체 모두는 감정이나 이권의 차원이 아닌 이론적,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처음부터 이 문제를 다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개정 약사법은 이미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있는 외국의 예와 같이 마찬가지로 처방전에 대체조제 금지를 명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대체 시 의사나 환자의 사전 동의, 조제 기록부 작성을 의무화 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제한 규정들을 의약분업의 파트너인 약사를 무시하는 발상이라 주장하고픈 분들은 먼저 의약분업 선배국가이며 우리나라보다는 인권이 잘 보장된다는 미국, 일본, 유럽의 약사들께 물어보라. 그분들이 권익을 찾을 줄 몰라서, 그분들을 무시해서 그런 법령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수긍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단, 한가지 사족을 붙인다면 대체 불가를 처방전에 천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방을 내는 의사 개인의 고유권한이지만 이것을 남용할 경우 또다른 환자의 불편이 초래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안전역이 좁은 약물군에 대해서 혹은 진단명, 환자 상태 등에 따라서 이러이러한 경우에는 처방전에 '대체불가'란 말을 언급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 등을 각 분과학회 차원에서 논의해 나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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