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수(서울중앙병원 응급실장)
저는 서울중앙병원 응급의학 주임교수 및 응급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서울중앙병원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지 몹시 염려스럽습니다.저를 알고 계시는 청와대비서실, 국무조정실, 보건복지부의 실무책임자께서는 높은 분에게 꼭 전달하여 주십시요.
정부가 발표한 '밤 10시 이후에 응급실로 방문하는 모든 환자에게는 원내처방을 허용하는 조치'는 매우 잘못된 지침이므로 조속히 철회하여 주십시요.
전국 대학병원의 응급의학 교수 및 전문의들로 구성된 대한응급의학회는 이미 보건복지부에 모든 응급환자에 대하여 원내처방을 건의하였으나, 그것은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된 상황을 전제로 건의하였던 것이지, 지금과 같이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의 종합병원의 전공의가 근무지를 이탈하여 응급실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비상사태에서는 이번 조치가 엄청난 희생을 유발할 것입니다.
지난 번 의사들의 집단폐업 때 저희 응급의료진들은 응급실을 지키느라 하루 4~5시간의 수면을 취하면서 1주일 꼬박 병원에서 숙식을 해왔으며, 이번 사태에도 마찬가지로 현재 5일째 집에도 못가고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지침대로 실행된다면, 일반환자나 비응급환자 때문에 응급의료진과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것입니다.
대학병원 혹은 대형종합병원의 응급실을 한번이라도 방문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비응급환자가 대부분(전체 환자의 50~70%)을 차지하여 실제로 중증인 응급환자들이 응급실 바닥에서 치료를 받는 광경을 흔히 접하셨을 것입니다.
의약분업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데, 의약분업이 전격적으로 시행되어 국민들은 불편하다고 아우성인 현 상황에서 '오후 10시 이후에 응급실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에게 원내처방을 적용한다'면 응급실은 전시(戰時)와 같은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응급의료진이 제일 무서워하는 환자는 심정지 환자나 의식불명으로 실려오는 환자가 아니라, 걸어서 내원하였다가 갑자기 악화되는 환자(일명 walking bomb)입니다. 응급실 내원환자의 1,000명 중 1명의 비율로 이런 환자들이 내원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가 단순한 증상을 호소하여도 응급의료진은 수십분을 소비하며 한명의 환자를 정밀 진찰하게 됩니다.
현재와 같이 응급환자의 집중으로 인하여 응급실의 바닥에 누울 공간도 없어서 난리인데, 밤 10시 이후에 환자들이 응급실로 내원한다면 많은 환자들이 응급실 입구에서 진료를 기다리게 될 것이며, 이런 환자 중에 극소수의 walking bomb환자가 진료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사망하면 어찌하시렵니까?
의약분업 이전에도 이런 예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여러 번 발생하였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또한, 이런 환자들의 진료에 시간을 빼앗겨 중증의 응급환자가 충분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여 사망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의약분업이 시작된 이후에 현재 발생하고 있는 혼란 속에서 오늘과 같은 지침이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까?
의약분업 시행전에도 대형종합병원 응급실은 비응급환자로 매우 혼잡하였으므로 반드시 응급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우리(보건복지부+대학교수진+한국의료관리원+KHIDI)가 금년까지 5년간 얼마나 연구하였습니까? 지금까지 수 억원의 정부연구비를 지출하면서로 발간한 보고서(응급의료체계에 관한 보고서: 1995, 1997, 1999 발간)에서도 응급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제시하였습니다.
즉, 응급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 1차 의료기관이 야간 및 휴일에 순번제로 대부분의 환자들을 진료하고, 3차 의료기관 응급실은 전문 응급의료진들이 24시간 배치되어 소수의 중증 응급환자를 담당해야 합니다.
의료전달체계가 정립된 상황에서 비응급환자가 3차 응급의료센터의 진료를 원하는 경우에는 모든 응급진료와 원내처방 등의 편의를 제공하되, 환자는 매우 높은 응급의료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론기관이 흔히 이용하는 보도 '선진외국에서는 응급발생 현장에 의사가 구급차로 출동하여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응급의료체계가 엉망인가'를 인용하다면, 이러한 체계(프랑스의 SAMU)를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의료비를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것도 모르십니까?
프랑스 국민들도 SAMU의 응급의료비가 무서워서 무료인 소방서과 저렴한 SOS car를 이용하여 처방전을 발급받고 야간약국에서 약을 구입합니다. 물론 병원이 돈을 벌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응급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기본적인 비용을 얻자는 것입니다(지난 1년간 저희 병원 응급실 운영비가 11억원 적자였으며, 응급실 근무자도 121명입니다).
오늘부터 밤 10시 이후에 응급실에 내원하는 모든 환자는 응급환자에 준하여 원내처방하고 응급의료관리료를 산정하라고 하였습니다. 가뜩이나 바쁜 직장생활인들이 근무 끝나고 집에서 식사하고, 밤에 응급실에 와서 필요한 약을 타가 위하여 응급실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응급의료관리료 3만원이 무서워서 일반환자들이 응급실을 내원하지 않을 거라구요?
제 생각에는 다음과 같은 사유로 일반환자들은 야간 응급실이 더욱 편리할 것입니다.
1. 근무시간이 끝나고 진료받으니까 직장에서 눈치 안봐도 된다.
2. 일부 환자에 국한되지만, 3차 의료기관 가려고 개인의원 들렸다가 소견서 받고 다시 종합병원 가는 불편함도 없다.
3. 일반인들은 인근 1차 의료기관보다는 대형종합병원의 의료진을 더욱 신뢰하고 있다(잘못된 관념이지만)
4. 상기 2개 의료기관의 접수비를 합치면 벌써 금액이 1만원에 가깝다.
5. 괜히 더운 낮에 처방전 들고 여러 약국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6. 여러군데 돌아다니는데 소요되는 차비도 절약된다.
7. 금같은 시간(약국에서 기다리는 시간+약국 돌아다니는 시간+개원의 방문하는 시간 등)도 절약된다.
8. 소아환자의 경우에는 맞벌이 부모, 혹은 아빠가 퇴근하면 자가용으로 원하는 병원을 방문할 수 있다.
의료환경이 비상인 현 상황에서 어제 내린 조치 때문에 파생되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정부는 예측이나 하고 계십니까 ?
1. 2~3차 의료기관의 응급실은 밤마다 일반환자나 비응급환자로 넘쳐날 것이다.
2. 이러한 환자들중 일부 응급환자(walking bomb)들은 응급진료를 기다리다가 사망할 것이다.
3. 중증의 응급환자들은 응급의료진을 만나기 힘들게 될 것이다.
4. 개원의들은 더욱 환자가 줄어들 것이다.
5. 응급실은 근무인력(원무직원, 약사, 의료진 등)을 더욱 늘려야 할 것이다.(복지부 관계자들은 전국의 응급실이 매년 수 억원씩 적자인 것을 이미 알고있지요)
6. 일반환자들 때문에 밤 늦게 도착하는 실제 응급환자들은 침대도 없이 맨 바닥에 누어야 할것이다.
7. 대분분의 응급의료진들은 피로누적 때문에 수일 이내에 정상적인 응급진료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8. 전공의 및 전임의까지 응급실을 떠나는 극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외래나 입원실보다는 응급실을 먼저 폐쇄하게 될 것이다.
9. 장기적으로는 모든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고, 운이 좋으면 대형 종합병원들만 남게될 것이다.
3일 동안 의약분업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하룻만에 정부가 제시한 정책이 얼마나 무서운 후유증을 낳을지, 1주 혹은 1달 후에 직접 느끼시겠습니까? 며칠 동안 집에도 못가고 수면도 충분히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응급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고생하는 저희 응급의료진들에게 이제는 약을 타러 오는 일반환자들까지 떠 넘기려 하십니까? 이것은 응급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의약분업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의료계에 떠 넘기려는 정부의 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저희 병원 응급실에는 현재도 5분에 1명 꼴로 응급 환자가 내원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더 많은 환자가 내원하게 되므로 3~4 분에 1명 꼴로 환자가 내원하는 외래와 같은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
대다수의 만족을 위하여 소수(중증의 응급환자)를 포기해야 하나요? 정부의 시행착오를 덮어주기 위하여 응급의료진이 의료사고와 의료분쟁에 휘말려야 하나요? 응급실 환자가 아무리 늘어도 1번의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수억을 지불해야 하고 근무자도 증원해야 하므로 악성 적자만 계속될 뿐입니다.
저는 응급환자의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간혹히 부탁드립니다. 야간 응급실 원내 처방 허용 방침을 제발 철회하여 주십시요.
참고자료: 심야시간 응급환자에 대한 시행령(보건복지부)
의약분업 전면 실시와 관련하여 의료취약 시간대에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에 대하여 진료업무에 원할을 기하고자, 약사법 제21조제5항의 규정에 의하여 의사, 치과의사가 직접조제할 수 있는 '응급환자'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적용하여 시행하니 차질이 없도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심야시간 응급실 방문환자에 대한 의약분업 시행지침
가.대상자
-심야시간(22:00∼06:00)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나.의약분업 시행방안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판단할 때 상기 환자의 증상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한 응급증상 외에 응급에 준하거나 증상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 해당 증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응급실내에서 투약하는 의약품은 의사가 직접조제(원내 조제, 투약)할 수 있음
-이 경우 직접조제 일수는 당일 조제분을 넘지 않도록 함
다.국민건강보험 및 응급의료관리료 산정
-'나'호의 규정에 의하여 원내 조제, 투약한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국민건강보험 및 응급관리료를 적용함
▶종합전문요양기관은 환자가 진료의뢰서를 지참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응급의료관리료를 포함하여 전액 본인부담. 다만 진료의뢰서를 지참한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은 적용하되 응급의료관리료는 본인부담
▶종합전문요양기관 외에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되 응급의료관리료는 본인부담
▶기타의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 적용.
※ 관련법령 : 약사법 제21조 제5항 제5호
□처방약 공급 원활화 방안
○약국의 처방약 공급에 원활을 기하고자 제약업소, 도매상, 약국 등의 의약품 부당판매 행위에 대한 범위 신설
-특정 도매상 또는 약국에게만 의약품을 공급하여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담합을 조장하거나 환자진료에 차질을 초래하는 행위
-매점매석, 판매량 조정 등의 부당한 방법으로 의약품을 판매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환자진료에 차질을 초래하는 행위
※관련법령 : 약사법시행규칙개정안 제 57조 제 1항 제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