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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사의 주의의무 최근 변화

시론 의사의 주의의무 최근 변화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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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변호사(법무법인 한강)

1. 주의의무의 전제되는 의료수준

교통사고는 운전자의 주의의무에 대하여 특히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기준으로 정형화된 주의의무의 틀이 제시된다. 시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운전자의 과실을 평가하고 형사책임은 물론 민사책임까지 예측한다.

의료사고는 과실의 전제되는 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하여 정형화된 틀이 없다. 그래서 과실의 기준을 놓고 다툼이 있고 과실여부의 판단은 최종적으로 법원의 몫이 된다. 의료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의 주의의무의 기준인데 이 주의의무는 각개의 사건마다 그리고 진료과목이나 병원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고 의료수준의 향상 및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의료판례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은 의사의 주의의무의 기준을 찾아내는 작업이고 이것을 찾는 작업은 곧 법원이 현재의 의료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이 된다. 최근 우리 대법원은 의료수준의 변화에 관련된 산부인과 영역에서의 주목할 만한 판례 두건을 내 놓았다.

법률가들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판례의 변천이지만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현실에 관한 중요한 논쟁일 수 있을 것이다.
 
2. 폐혈전 색전증에 대한 대법원 판례( 2001. 5. 29. 선고 98다51367 판결)

가. 사실관계
경산부가 제왕절개술을 통해 4kg의 태아를 출산하였다. 수술후 30시간이 지나면서부터 호흡부전등의 상태에 빠져 기관내 삽관을 거쳐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전원되었지만 다음날 사망하였다.

사망원인은 폐혈전 색전증이었다. 당시 의사는 심폐소생술에 관한 치료를 계속하였지만 달리 폐혈전 색전증에 대한 검진 및 치료는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 환자측 주장
피고 병원들은 폐혈전 색전증에 대한 사전검사 및 사후검사를 소홀히 하였고 당시의 증상으로 보아 폐혈전 색전증을 진단할 수 있었음에도 이에대한 처치를 지체하는데 대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 법원의 판단
1심과 2심은 산모에 대한 처치가 적절하였고 당시 진단과 처방이 의사의 재량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실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첫째, 급성호흡곤란이 흉통을 동반할 경우 폐혈관색전을 의심해야 하는데 이 부분의 진단과 처치가 부족한 점, 둘째, 동맥혈가스 분석결과에 대한 자료와 결과가 보이지 않는 점, 셋째, 적어도 항응고제인 헤파린은 사용될 수 없었는지, 아니면 다른 치료방법은 존재할 수 없었는지 하는 점 등을 병원측의 과실로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라. 판례에 대한 평가

산부인과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판결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산부인과 사고에서 색전증은 두 갈래로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첫째는 자연분만의 과정에 주로 발생하는 양수색전증이고 둘째는 제왕절개술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는 혈전색전증이다. 양수색전증의 경우 원인이 불명하고 환자의 경과가 사실상 불가항력적이며 의사의 주의의무가 그곳에까지는 미칠 수 없다는 이유로 병원측의 책임이 부정되어왔다. 양수색전증의 경우 아직까지 이런 부분에 대한 법원의 법률적 평가는 일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최근들어서 무리한 유도분만 과정에서 자궁파열이 있고 이로부터 발생되는 양수색전증은 병원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제왕절개술 후 발생하는 혈전색전증에 대해서는 역시 종래의 법원의 입장은 병원측에게 유리한 즉, 의사승소판결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만, 제왕절개술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16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심부정맥혈전증 및 폐색전증으로 사망에 이른경우가 있었는데 사안의 특성상 병원측의 책임을 인정한 2000. 1. 21. 선고 98다50586 판결이 있다.)

폐색전 자체가 사실상 원인불명이고 예방이 불가능한 일이며 역시 사고 후 처치과정이 의사의 주의의무 수준을 넘을 정도로 급격하게 악화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지금까지의 판례입장을 변경시키는 판결을 이번에 내놓은 것이다.

판결취지는 제왕절개술 후에는 색전의 위험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경계하고 응급상황 발생시 곧바로 처치해 들어가지 않은 것 자체가 과실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3. 미숙아 망막증에 대한 대법원 판례( 2001. 5. 8. 선고 2001다14436 판결)

가. 사실관계
산부인과에서 임신 27주 6일만에 미숙아를 출산하였다. 아이는 당시 체중 1.15㎏, 신장 39㎝의 미숙아여서 같은 날 소아과에 입원하여 보육기(인큐베이터)에 넣어진 다음 보육되다가 약 2개월 만인 1997. 1. 18. 퇴원하였는데, 미숙아 망막증으로 양안이 실명되었다.

나. 환자측 주장
병원측은 주기적으로 안과에 전원시켜 미숙아망막증 여부를 검사하는 등으로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게을리 한 과실이 있다고 하였다.

다. 법원의 판단
1심과 2심도 병원의 책임을 인정하였고 대법원도 그대로 확정하였다. 우리 대법원은 담당의사들이 적절한 시기에 미숙아의 안저검사를 실시하여 미숙아 망막증이 진행되고 있는지의 관련 징후를 살피어야 하고 또는 보호자에게 관련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하여 그 질환에 대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할 주의의무를 지고 있었음에도 그 의무이행을 게을리 함으로써 실명에 이르게 된 것이기 때문에 병원측에 책임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라. 판례에 대한 평가
미숙아 망막증에 이번 대법원 판례는 의료수준의 변화와 향상에 때른 의사의 주의의무 기준의 변화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판례이다. 의사측의 입장에서 볼 때 법원이 의사의 주의의무의 수준을 넓게 잡으면 그만큼 의사의 승소율이 낮아지는 것이고 반대로 수준을 좁게 잡으면 의사의 승소율이 높아질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의사의 주의의무 수준 또는 기준은 임상의학 수준이 기초가 되는데 그 임상의학 수준이 의료수준이 된다. 구체적으로 이번 판결처럼 미숙아의 경우 보육기에 넣어진 아이는 늘 실명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위험성 예방을 위한 적절한 진단과 처치는 의사의 기본적 주의의무에 속하고 현재의 의료수준상 반드시 의사가 준수해야할 범위라고 생각을 하면 그때는 주의의무 위반 즉 과실이 되고 병원의 책임은 인정된다.

하지만 보육기에서의 산소농도조절이나 실명방지 의무는 대단히 고도의 주의의무에 해당되기 때문에 의사로서 이부분까지 일일이 주의하고 확인할만한 상황이 못된다고 생각하면 이를 들어 의사의 과실이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료수준이 문제인데 의료수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런 의료수준의 변화에 따라 의사의 주의의무 수준도 변한다. 일본에서는 1979년과 1982년만 하더라도 진료당시의 의료수준을 이유로 미숙아 망막증에 대한 의사의 과실을 부정하였다.

그런데 일본 최고재판소도 1985년들어부터는 적절한 안저검사와 광응고 수술에 의하여 미숙아 망막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으며 극소 미숙아에 대한 의료기술이 향상된 점, 보육기가 널리 보급되어 관리기술이 일반의사에게까지도 알려진 점등을 들어 의사측의 과실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의료수준에 따른 의사의 주의의무향상이 우리법원에서도 인정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번 미숙아 망막증 판례인 것이다.

우리 법원도 역시 1심법원에서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미숙아 망막증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적시의 진단과 처치가 주어지지 않은 점을 과실로 인정하여 병원측의 책임을 물었고, 종합병원의 경우 소아과와 안과를 넘나드는 적절한 처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에 대한 과실도 이번 판단의 중요한 자료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4. 결

순전히 의사측의 입장에서 이번 판결을 평가해 볼 때 이번 두 판결은 특히 산부인과나 소아과의사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판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색전증은 사실상 의료사고의 무풍지대에 해당하였는데 사후의 처치과실을 들어 병원측의 책임을 묻고 들어온 것 자체는 참으로 충격적일 수 있다.

지금까지 역시 무풍지대에 해당하였던 양수색전증까지도 앞으로의 법원 판결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가 궁금해질 정도로 이번 판결이 주는 시사점은 크다할 것이다.

또한 종합병원의 협진의무에 대해서는 종종 판결이 있어 왔는데 이번 판결 역시 정면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협진의무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기준이 제시된 점, 의사로서 최선의 노력이 요구되고 결과에 대하여 크게 책임 논란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미숙아 보육부분에 대해서도 법원이 책임소재를 가리고자 나서기 시작한 것 자체는 역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법률가의 입장에서는 이번 판결은 전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읽혀진다. 이번의 두 판결이 주는 시사점은 '의료 수준의 변화에 따라 의사의 주의의무 수준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라는 점이다.

환자의 권리확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소송에서의 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입증책임의 완화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의 주의의무 수준을 넓게 잡는 방법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법원은 입증책임의 완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시해 왔고 이 부분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확고하다.

남은 하나가 주의의무 수준에 대한 상향조정 또는 의료수준에 변화에 따른 변동인데, 우리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하여 주목할만한 두 가지 판결을 내놓게 된 것이다. 변화하는 의료현실과 임상의학 수준에 대해 의사들의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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