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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터넷 전자차트 및 전자처방전 유감

시론 인터넷 전자차트 및 전자처방전 유감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1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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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구(전국병원의사협의회 중앙위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통제와 규제를 받고 산다. 통제와 규제는 어느 정도의 질서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하지만 통제와 규제가 너무 지나치게 된다면 항상 숨막히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자유는 법전의 문자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한 민국의 모든 국민은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행정부는 통제의 수단을 강화하고 싶어한다. 어떤 정부나 정권이라도 국민을 될 수 있으면 묶어 내려고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정부나 정권을 위하여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 나름대로의 인생이 있고 개성이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이 있게 마련이고, 국민은 최소한의 규범과 약속 속에서 국가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사는 것이다. 국가는 이를 최대한 존중하는 측면에서 행정을 집행해 나가야 한다.

일전에 정부는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려 했으나 시민 단체의 반발로 무산 된 적이 있다. 물론 당시의 정부에서는 한 번 뽑은 칼을 거두기가 민망해서인지 카드형식의 주민증을 만드는 것으로 그쳤다. 결국 밀어 부치기 식의 정책은 세금만 낭비하게 되었고, 실용적인 측면도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아세톤으로 지워서 범죄에 악용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을 정도이다.

최근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 각 부문에서의 개별적인 전자카드 도입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효율적인 면에서 본다면 정보화는 국가 경제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효율성, 생산성의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강조한다면 국민들의 사생활이란 측면이 무시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형성하고 국가를 만드는 것은 그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자아를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장을 국가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법에 동의하며 따르는 것이다. 만약 국가가 보호를 해 주지 못하고 자아 실현에 장애가 된다면 사람들은 국가를 떠날 것이다. 시랜드 참사에서 어린 아이를 잃은 전 국가대표 하키 선수는 대한 민국이 자신의 행복을 보호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민을 가버린 것이다.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각 분야에서 정보화를 추진하는데는 많은 장애가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 사업들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사회구조상 특별히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전자 처방전, 전자 챠트 문제는 환자의 비밀 보장을 해야 하는 의사들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문제가 될 수 있다. 모든 의사는 졸업식장에서 "나는 환자가 알려 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한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전자챠트가 인터넷 상에 떠돌아 다니게 되면 매우 취약해 질 것이다.
 
환자는 의사를 믿고 자신의 정보를 숨김없이 내 놓을 것이다. 치료가 잘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이런 정보에는 환자가 자기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하는 정보까지 포함된다. 지금까지는 병의원에서 환자의 정보를 관리하고 환자가 요구하거나, 법원이 명령하지 않으면 내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 상으로 챠트가 날아다니고, 정보의 수집소에 보관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전자 챠트, 전자 처방전에 관련한 많은 정보는 정보 수집소의 슈퍼컴퓨터에 내장되게 될 것이다. 정보 수집소의 관리는 누가 하는가? 정부에서 하게 되기 쉽다. 정부는 언제든지 국민 개개인의 의료 정보에 대해서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게 된다.

과거에는 KGB, CIA등의 외국정보기관에서, 또 우리나라의 안기부에서 많은 인력과 시간을 동원해서 개개인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였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최근 통신 감청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만약 집권당에서 검찰이나 경찰, 국정원을 동원하여 야당 국회의원의 진료기록등을 볼 수 도 있다면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쉬울 것이다. 말을 안 듣는 언론사 사주가 있다면 비리를 캐내기 위하여 악용할 수 있다.

과거에 모 정치인 아들의 키를 재기 위하여 외국에 있는 당사자를 국내로 불러들여서 세상이 떠들썩한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매년 실시하고 있는 신체 검사표만 보면 된다.

유명 연예인이 스트레스 상담을 위하여 정신과에 다닌다는 소문이 나면, 라이벌 연예인은 해커를 고용해서 정신과 상담 기록지를 빼돌린 다음 언론에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하루아침에 정신 병자 취급 받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그렇게 되면 해당 연예인 팬클럽중 극성팬들은 자신들이 직접 '의료 정보 수집소'를 기술적으로 파괴할 수도 있다.

미 국방성도 해커들에 농락당하는 형편인데 한국의 보건 의료시스템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 연예인을 국회의원으로 대입해 보면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정치 인생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간단하게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할 질병명을 몇 가지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매독, 임질, 에이즈, 사면발이, 자궁외 임신, 낙태 기왕력, 치매, 정신분열증, 우울증, 암, 각종 피부질환 등등. 이외에도 많은 병들이 환자의 개인 사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아니 모든 병이 해당된다고 할 수있다.

가족력이 질병의 경과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도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보 수집력이 뛰어난 보험회사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가입자 개개인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할 것이다. 유방암의 가족력이 있거나, 양친이 모두 당뇨인 사람은 보험가입을 하지 못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보험회사에서 개인별로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유전자 정보를 입력하는 날에는 완전히 자손이 끊길 우려가 있다. 친척중에 경찰이나 안기부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으면 맞선을 보기 전에 미리 상대방의 가족력을 충분히 알아낸 다음 자신들의 유전자 정보와 맞추어 보아 자신의 아들, 딸에게 객관적 자료라고 제공하는 부모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유리할지 불리할지는 자신들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우리사회에 전자 챠트가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순간 집단 이지메의 생생한 현장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를 떨칠 수가 없다. 그 피해는 돈이 있고 없고, 권력이 있고 없고,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의 차원을 넘어선다.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정책 집행자나 기획하는 사람들이 의료의 현실에 대해서 잘 모를 수 있고, 현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의사들도 많은 수가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다가. 면허를 받고 의사 까운을 입은 후 환자와 만나면서부터 자신이 배운 의학의 모든 것보다 더 복잡한 의사-환자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고 정리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국민의 기본권이 관련된 중요한 정책은 책상에서 나오는 것 보다 발로 뛰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는 것이 훨씬 이로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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