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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조령모개식 법 집행

시론 조령모개식 법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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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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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호(성애병원 기획실장)

지난 6개월을 되돌아보면 정신없이 불어대는 폭풍 속에 갇혀 있던 기분이다. 문자 그대로 아침에 내린 영(令)을 저녁이면 거둬들이고 뜯어고치는 영락없는 조령모개(朝令暮改)식 법 집행이 어쩌면 그렇게도 갈팡질팡 진로를 틀고 바꾸는 폭풍우와 같은지. 그것은 폭풍우와 날벼락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 날 그 날을 지탱해야할 의료인의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의료계가 당하고 있는 이 악몽 같은 폭풍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설익은 의약분업이 시작되면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리고 끝날 줄 모르는 그 시련 아닌 시련은 날로 더 커져만 가고 끝도 없이 밀어닥치고 있다.

얼마전 국민건강 모 지사에서 공문 한 장이 날라들었다. 담당 직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공문의 결재를 받으러 왔다. 그것은 의료보험 무자격자를 진료한데 대한 일방적인 환수금 납부 고지서였다. 내용인즉 사망환자를 사망일 이후에 진료했다는 지적과 함께 이의신청을 못할 경우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의 진료비를 환수하겠다는 통보였다.

더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의신청서류에는 진료비명세서를 첨부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제 와서 새삼 진료일수를 밝히라는 사망환자의 진료비명세서 법적 보관기간이 이미 지나버린 상태였다. 진료비 명세서는 모두 보관기간을 넘긴 터라 공단 측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통하지를 않았고 병원 측의 어떠한 해명도 들으려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오래 전의 진료비명세서가 제대로 잘 보관이 되어 있어 문제가 일단락이 되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새삼 놀란 것은 공단 측에서 계산한 환자 진료일수에 많은 착오가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엉터리가 많다고는 하지만 너무도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닌가. 병원 측의 어이없는 실수로 숫자 하나 날짜 하루가 틀리면 과다청구, 허위청구라고 몰아 세우는 공단이, 그토록 어마어마한 전산망과 많은 인력을 거느리고도 그런 기초적인 잘못을 한 것이다.

그런 실수는 쉬쉬하면서 그냥 넘어가란 말인가. 의료보험조합의 통합에 대항하며 2년 가깝게 업무처리를 미루고 있다가 빚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 병원 측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이를 도대체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은 일제시대도 아니고 문명한 21세기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랄 따름이다.

그 뿐 만이 아니다. 건강보험수가 변경으로 병원행정이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고 있는데 7월에 또 하나의 공문이 날아 왔다. 통합진료비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장기처방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종합병원의 운영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많은 환자들이 종별진료비 불균형 때문에 종합병원을 기피하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장기처방을 허용한다면 종합병원들은 어떻게 운영하란 말인가. 정부의 환자 달래기 정책으로 병원의 적자운영은 갈수록 심화되고 경영자는 전례 없는 허탈과 좌절 속에 빠져나갈 길조차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의료인들은 이토록 불안정한 의료여건 속에서도 말없이 환자의 진료와 의학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것이 당국의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에 가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매정함을 넘어서서 인간대화를 멀리하려는 불쌍한 마음이 아니겠는가.

누누이 말하거니와 의(醫)의 마음은 여리고 짠해하고 바르고 도와주기를 즐겨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의사들을 백안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신뢰를 회복하고 말 것이며, 아무리 거대한 폭풍우도 그 의지와 신념을 휩쓸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믿음과 화합을 통해 수 천년 내려온 의롭고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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