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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시론 상식적인 응급의료체계를 위하여
시론 상식적인 응급의료체계를 위하여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1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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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호(성애병원 기획실장)
어느 한 나라의 보건정책 수준을 가늠하는 데는 여러 잣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로 응급의료를 꼽을 수 있다. 응급의료는 환자를 고통과 죽음에서 살려 낸다. 이 세상에서 생명의 보위(保衛)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소위 OECD 가맹국인 우리 나라 응급의료 정책을 보면 어이가 없다. '응급'이라는 말을 요리 조리 뒤집고 또 뒤집어 가면서 한다는 소리가 3차 의료기관에 몰려드는 '가짜' 응급환자들을 막기 위해 그들을 골라내서 보험혜택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정부는 3차 병원 응급실로의 환자 집중을 막기 위해 오는 7월부터 응급실에 오는 환자를 응급과 준응급 그리고 비응급으로 구분하여, 그 중에서 응급환자와 준응급환자에게는 외래환자보험을 적용시키고 비응급환자는 본인이 진료비를 내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진료비가 비싸 3차병원에 덜 가게 되어 의료체계가 잡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규정한 응급증상 기준이 문제다. 환자가 느끼고 판단하기에 응급이라면 일단은 응급환자로 보는 것이 응급의료의 정신이다. 그런데 아무리 환자가 고통스럽고 중하게 느낀다해도 그것이 '당국이 인정'하는 상황이 아니면 응급이 아니라는 논법이다.

그렇게 되면 의사는 환자에게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고, 친절하게도 진료비가 싼 1차나 2차 병원으로 가라고 하든지 아니면 돈을 더 내고 비보험으로 진료를 받든지 하라고 일러주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래 이것이 응급의료수가를 상향조정하기 위한 국가적 정책이란 말인가. 아니면 또다시 말을 바꾸어 정책의 실패를 호도하고 비난의 화살을 응급의료진에게 돌리려는 속셈인가. 임상에서 일련의 응급 진료결과 최종 진단이 비응급질환으로 판명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것은 의료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상식적인 상황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갑자기 고열로 신음할 경우 그 증세가 무슨 질환 때문인지를 어떻게 당장에 알아내란 말인가. 정책입안자도 자신이나 노부모나 어린 자녀가 고열로 고생한 경우를 한 번 쯤은 겪었을 것이다. 머리와 온 몸이 펄펄 끓는다. 이 얼마나 놀랍고 안타까운 상황인가.

그러나 고열의 원인 모두가 응급질환은 아니다. 그런 환자의 증세나 질환이 당국의 규정에 따라 일단 '비응급'으로 딱지가 붙으면 원내처방 마저도 낼 수 없다. 그나마 저녁 10시 이후에 한해서 1일 분의 약만을 줄 수 있다. '비응급' 환자라 하여 웃돈까지 내고도 겨우 하루 먹을 약 밖에 못 받아 다음날 또 병원에 가야한다.

물론, 의료체계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의 수가를 응급여하에 따라 차등화 하는 것은 필요한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성공하려면 환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실력 있고 튼튼한 1차와 2차 의료기관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1차와 2차 의료기관의 기능이 제고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와 정부와 의료계가 바라는 새로운 의료제도가 본래의 취지에 걸맞게 자리를 잡을 수 없고, 정부와 의료계는 함께 몹쓸 존재가 되고 환자는 환자대로 내버려져 어려움만 겪게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보람을 느끼고 살맛 나는 새로운 밝고 좋은 의료제도를 마련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잔꾀가 아닌 참 지혜와 비열이 아닌 용기와 미움이 아닌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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