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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간유전체지도 완성, 어떻게 볼 것인가?

시론 인간유전체지도 완성, 어떻게 볼 것인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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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모(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챨스 다윈의 192회 생일이던 지난 2월 12일 인간유전체(휴먼지놈)의 지도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전세계로 타전되었다. 작년 6월 인간지놈 지도 초안이 작성되었다는 소식이후 8개월 만의 일이다. 이로써 인간의 달착륙에 비유되는 지난 십여년 간의 거대 과학 프로젝트는 일단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그런데 지도의 완성과 함께 인간유전체의 수가 예상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이제껏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가 약 8만 내지 10만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근사치를 맞추는 과학자에게 상금을 주는 현상공모를 한 바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밝혀진 사실은 인간은 대략 3만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뿐이며 이 숫자는 과일파리의 2배, 단순한 원형벌레보다 단지 1만개가 더 많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특정 DNA가 특정 RNA를 만들고 이것이 특정 단백질의 생산으로 이어진다는 기존의 학설을 고집한다면 3만여 개의 유전자로 인간처럼 복잡한 생물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설명해 낼 길이 없다. 인간이 생겨나는 데 필요한 유전적 메시지의 수가 14만 2천개라는 점에는 지금도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각각의 메시지가 서로 다른 유전자에서 나온다고 가정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데 있다.

현대과학이 잉태된 17세기말부터 자연과학은 환원주의적 시각을 강력하게 옹호해왔다. 환원주의(reductionism)란 복잡한 구조물을 분해해 구성성분의 특징을 이해하면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방법론이다. 이런 방법이 지금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개의 유전자가 한 개의 단백질만을 만들어낸다는 가설의 붕괴는 생물학 분야에서 환원주의가 실패했음을 뜻한다.

제약업계를 비롯한 생명공학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제껏 그들은 하나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상(異常) 유전자 하나만을 고치면 된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번에 발견된 사실로 말미암아 그들은 전략을 수정해야만 한다. "정보의 과부하(information overload)"는 인간유전체 연구개발과 관련된 비용을 예상보다 증가시킬 것이며 이는 신약 당 평균 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한편 이번의 과학기술적 성과가 몰고 올 사회적·윤리적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유전정보로 인해 개인이 고용과 보험에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대개 합의를 보고 있으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유전자 특허, 유전정보의 개인 프라이버시, 산전유전진단, 헌팅톤병 등에 대한 조기진단검사, 동성애·반사회성 등 인간행태 관련 유전검사, 유전상담에 따른 환자 및 가족의 알권리와 모르고 지낼 권리 등등의 문제에 관해서는 논쟁만 거듭될 뿐 아직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목적으로 미국은 1990년부터 엘시(ELSI; 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s of the human genome project)라는 프로그램을 수행해 왔다. 여기에는 유전상담가를 포함한 임상가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십여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리 문제는 과학기술과 상업화의 빛에 가려 간과되어 왔다.

인간유전체 연구에 뒤늦게 합류한 우리 나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최근 들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 시안을 마련하여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과학기술부는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금년 5월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에서는 미국의 엘시를 본 딴 프로그램을 우리 나라에서도 곧 실시할 계획이다. 그런가하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지난 해 '생명과학인권·윤리법'을 국회에 청원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인간유전정보 보호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윤리를 너무 강조하다가 과학기술의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연구 및 활용의 무제한적 자유를 주장하면서 윤리를 무시하는 것도 짧은 소견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과 윤리 이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과 조화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은 윤리라는 녹색 신호등을 잘 지키면서 갈 때 더 멀리 안전하게 갈 수 있다.

인간유전체지도의 완성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행동방향을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유전정보의 사용을 규제하는 국제 수준의 법과 지침이 조속히 정비되어야겠다. 선진국들과는 달리 우리 나라에는 이런 규정이 제대로 없거나 있더라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지구촌 시대에는 과학기술 연구와 상품교역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까닭에 우리 나라처럼 관련 법령이 미비한 나라는 국제적 공동연구참여, 국제학술발표, 국제무역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관련 법령을 속히 정비해야 한다.

둘째, 직능별 윤리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시행되어야겠다. 우리 나라의 경우 임상가나 연구자들이 유전 정보의 이용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현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병원 내 임상가 및 기초과학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윤리 교육이 실시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예를 참조하여 정부 내 관련 부처가 규정을 만든 후 윤리 교육을 의무화하고, 교육은 관련 학회나 기관 내 부서가 맡아서 운영하는 식으로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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