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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사회주의는 실패한다

시론 의료사회주의는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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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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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규 변호사(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총무)

대한변호사협회가 2001년 7월 23일 제12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를 마친 뒤 회원명의로 "현 정부의 개혁이 합법성과 정당성을 요구하는 실질적 법치주의에서 현저하게 후퇴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총 5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한데 대해 여야 정치권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변호사들은 작년에만 법률공포가 1000번이 넘어 변호사들도 법령을 제대로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더기 입법이 이뤄졌다며 졸속입법의 대표적 사례로 의료관련법, 기업구조조정법 등을 지적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을 비롯한 변호사단체들도 변협의 결의를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다.

이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임광규 변호사가 최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문과개원의협의회가 주최한 [건강보험재정대책 대토론회]에서 '국민건강보험에 관한 입법과 정부정책의 방향' 주제발표를 통해 "정부의 의료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며 정면으로 비판한 바 있다. 이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된 임 변호사의 원고 전문을 입수, 소개한다. <편집자 주>


병, 상처를 치료받고자 하는 사람과 병자, 부상자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의사 사이의 관계는 ▲의사의 치료지식, 노하우 ▲의사의 노력강도 ▲의사의 정직 성실 ▲의사의 적정 치료비의 4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수요공급 관계이다.

2,400년 전의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도 1800년 전의 화타 시대에도 용한 의술이 있고 열심히 애써주고 치료비를 지나치게 받지 않은 공급자(의사)에게 수요자들이 몰렸고 소비자(환자)만족을 시켜준 의사들은 보람을 가졌다.

용한 의사, 열심한 의사, 적정보수를 받는 의사에 대한 수요의 집중이 현재라고 달라질 리가 없으며 그 분들이 젊은 의사들의 벤치마크가 되어야 하는 사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정보화시대에 우리 정부가 자꾸 채택하려는 의료사회주의가 의사에게 연구 더 하려는 의욕을 냉각시키고 환자에게 애써주는 강도를 약하게 하고 있다.

생명구출과 치료의 '의료서비스'를 위하여 얼마나 우수한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얼마나 높은 질의 용역으로 제고되느냐는데 대한 깊은 생각은 사상(捨象)되어 있다.

대학을 나와 인턴을 마친 30세의 젊은 개업의사와 우수한 학업, 꾸준한 연구 20년의 성실한 의료경험을 축적하여 주변의 신뢰를 받는 50세의 내과전문의에게 예외 없이 똑같은 '건강보험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 151.62에 55.4원을 곱하여 초진료 8,400원을 계산하여 준다.

평등을 제도로 강요하면 게으름과 속임수가 횡행하게 되어있다. 게으름 때문에 119 구급차를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밀어 보내다가 살릴 사람을 죽게 하였다고 조사를 하고 수사를 하여야 한다. 속임수의 허위진료를 찾아내려고 감시를 하고 감사를 하지만, 이를 회피 기만하는 지혜가 새로이 개발된다.

선택이 없는 의료제도는 반드시 실패한다. 의료서비스의 공급자인 의원, 병원이 선택권을 박탈당한 의료배급소로 서서히 전락되어가면 의료서비스는 질(質)이 아닌 양(量)으로 계산된다.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들에게도 자유시장경제의 선택이 줄어들게 된다. 좋다고 평판받는 병원에서 진찰받거나 유능하다고 알려진 의사에게 치료받으려면 소비에트의 배급소 행렬과 똑같이 몇 개월을 기다리는 행렬에 등록하여야 한다.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인 시민들은 아주 중요한 부상이나 질병에 걸리면 소비에트사회에서처럼 미리 잘 아는 친지를 통하여 탁월한 의사를 찾으려 하거나 심하면 테이블 밑으로 금품을 건네주고라도 좋은 맞춤 의료서비스를 받으려고 애쓰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루 인술(仁術)을 베푸는게 좋다는 인술론(仁術論)을 법으로 강요하는 것이 의료사회주의다. 처음에는 따뜻한 사랑의 사회를 지향하는 선의의 이상주의자들이 화두(話頭)를 꺼내니까, 학자도, 법률가도, 관료도, 정치인도, 의사도 이의(異義)를 내세우기 힘들다.

그러다가 싸다니까 거저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수요자 시민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치료를 해주자"는 논리에 상당수 동조하게 되고, 여기에 단기여론(短期輿論)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이 의료사회주의의 법률을 저지할 의지를 포기한다. 게다가 사회주의 논리를 밀고 들어오는 투쟁가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나 높게 마련이다.

그러나 강요된 자선(慈善)과 인술(仁術)은 진정한 자선과 인술이 아니다. 그리고 개별시민들이 느끼는 싼 의료비, 거저받는 치료는 나라공동체로서는 훨씬 비싸게 치여 의료수요자 겸 납세자 시민들에게 납세고지서와 체납처분으로 닥쳐온다.

여기서도 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싼 의료비를 보장해 준다고 하는 공공기관 공공조직 직원들의 일자리, 게으름과 속임수를 막으려고 갖가지 묘안을 짜내기에 바쁜 공무원들의 일자리와 보람, 솔제니친의 이른바 일(치료) 자체보다도 일(치료)의 업적보고에 능한 요양기관 멤버들, 행정이 일일이 막지 못하는 부정수혜(不正受惠)를 잘도 이용해내는 똑똑한 환자들, 사회주의 특유의 규정미로(規程迷路)를 해석해주고 대리해주는 전문가들이 그들이다. 의료사회주의가 사라지면 이들의 직장과 보람은 없어진다.
 
이런 이익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의 특색이다. 이 이익 받는 사람들의 비생산적 활동의 보수만큼만 납세자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이 비생산적 활동과 함께 도덕타락(moral hazard)이 만연되어 대다수 시민들은 생산적 활동에 들이는 노력보다 비생산적 규정미로(規程迷路)를 공부하는 것이 훨씬 득이 된다고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 사회는 빈곤과 비효율을 향하여 급진적으로 이른바 진보를 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추산한 2001년도 4조원 가량 의보재정 적자에 대하여 한국개발연구원에서는 이 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는 것이 벌써 나타난 분명한 신호다.

국민들이 의사들의 능력을 언제까지나 착취할 수는 없다. 많은 시민들은 그 동안 의사가 고소득층으로 잘 살았으니 좀 덜 벌고 봉사하면 좋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저가봉사(低價奉仕)를 하라고 법으로 강요하는 것은 착취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되면 사람의 부상과 병을 고치는 어려운 직업, 자칫 실수하면 5억원 가량의 인명배상을 해주어야하는 위험을 안은 업무에 도전하려던 우수인력중 의사가 되기보다는 그 보다 덜 어렵고 덜 위험스러운 직업과 업무로 진로를 바꾸게 될 것이다.

의사가 되어도 성형외과, 이비인후과를 택하려 하는 경향도 생겼다. 이미 먹고 입을게 있는 50세 의사들중 의사 때려치고 골프장에서 등산로에서 놀고 싶어하는 분들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서 '맨발의 의사'(모택동의 중공시절에 농민과 같은 수준으로 급여를 받으면서 강요된 병 고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를 향하여 이 사회가 움직일런지도 알 수 없다. 앞으로 돈 많은 사람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아예 외국에 가서 수술 받고 싶어하게 될른지 모른다.

지금 당장 30대, 40대, 50대 의사들에게 달리 직업 선택의 기회가 적다고해서 현재의 의사들의 능력과 의욕과 경험을 착취할 수 있을런지 모르나, 30년 후에 가면 우리가 착취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과 의욕과 경험을 가진 의사는 이미 거의 없게 된다.

현재에도 착취 받는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은 덜 착취 받으려고 양(量)으로 채우려는 유혹을 받고 있으며, 위험한 수술에서 한 번 실수하면 5억원을 물어내고 5만명 치료로 보충하는 손해위험을 앞에 두고 수술을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119 구조대 차량이 위급환자를 데리고 도착해도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권하는 의사들의 겸손을 의료소비자 일반은 이미 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해당 응급실 의사의 비인간성만을 탓하는 언론의 보도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서독지역)에서는 2000년 기준 월소득 394만7,400원(M 6,450 ×612원) 이상이면 의료보험강제가입에 응하지 않고 스스로 민간의료보험을 선택할 수 있다.(통일동일 및 일본의료보험제도의 주요동향 1993. 2. 의료보험연합회 22쪽)

프랑스에서도 여러가지 임의가입의 보충적 제도가 있어서 1995년 기준 사회보장제도의 의료지출이 71.6% 밖에 안된다.(외국의 건강보험제도 비교조사, 국민건강보험공단 72쪽)

미국은 민간보험을 기본으로 하며 65세 이상과 장해년금수급자에 국한된 메디케어 피보험자들까지도 그 70% 이상이 추가로 민간보험을 선택적으로 구입하고 있다.(アメリカの 社會保障 1996. 11. 皆川尙史 209쪽)

일본의 경우 전국민의료보험이지만 조합간의 경쟁이 있을뿐 아니라 보험료상한이 평균보험료의 3배 내지 3.1배에 지나지 아니하며 5인 이하 직장근로자들은 지역가입과 직장가입을 양자택일할 수 있다.(외국의 건강보험제도 비교조사 104쪽)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제92조에 의하여 국민세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공단이 지역가입 피보험자들을 위하여 의료비의 50%를 국민세금으로 보조받는다고 가정하고, 독일의 경우에 유사하게 월 300만원 이상 소득자에게 국민건강보험의 강제 대신 민간보험회사의 의료보험상품을 선택하여 구입할 수 있게 제도로 고친다고 가정하자.

이치상으로는 공단과 계약한 의사들이 의료소비자들에게 주는 만족은 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와 계약한 의사들이 민간보험가입자들에게 주는 소비자만족의 2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 300만원 이상 소득자 중에 국민세금 축내지 않는 삼성생명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려는 시민들이 생길 것이고, 공단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민간보험회사와 계약하는 의사들이 속출할 것이다.

의료비의 절반을 공짜로 도와주는 국민건강보험 공단계 의사의 치료를 마다하고 민간보험계 의사의 치료를 택하는 시민이나, 국민세금으로 요양비 절반이 지원되는 넉넉한 공단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영리위주의 민간보험회사와 계약하는 의사는 바로 의료사회주의의 엄청난 비능률과 도덕타락에 대한 증언자들이 되는 것이다.

최근 국유철도의 서비스가 아주 좋아진 것은 민간 버스, 항공사와의 경쟁 때문입니다. 소비자(환자)와 공급자(요양기관)를 만족시키는 의료보험서비스에서 민간보험사의 등장은 국유공단의 서비스와 효율을 급격히 높이도록 강요할 것이다.

민간보험사와의 선의경쟁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요양비 문제를 우리는 모든 의사들에 대하여 사회주의 국가계획위원회의 방식과 유사하게 '건강보험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라는 규정으로 3,200여개의 진료항목을 수량화 노르마화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무원이 천태만상의 인간행위 치료행위를 공정하게 과학적으로 파악한다는 하예크의 이른바 '치명적인 자만'을 범하고 있는 것니다. '치명적인 자만'으로 수량화 노르마화를 강행하다보니, 2000년에 정한 계약(간주)의 유효기간(2001. 12. 31)도 끝나기 전에 진찰료와 처방전료를 합산한다고 고시하였다. 얼마의 예산을 줄이라는 노르마에 맞춘 것이다.

의료기관별로 처방전 발행일수와 매수가 각각 상이하므로 평균 의료기관 전체의 처방일수를 내과계, 외과계, 지원진료계로 나누어 평균치로 수가를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외처방전 발행이 거의 없는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등은 불로소득이 발생하는 반면 처방매수, 처방일수가 장기간인 의료기관은 경제적으로 많은 손실을 보게 되는바, 처방전 소득이 많은 의료기관의 소득을 박탈하여 처방전 발행이 거의 없는 의료인 및 처방일수가 단기간인 의료기관에 소득을 분배하여 주게 되는 공권력 재량의 일탈을 감행하는 것은 의료사회주의의 논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정상적인 의료서비스를 하면서 축적되어온 합리적인 사회제도를 손괴하는 것이다.

국가가 국방, 치안, 법치를 제외하고 가급적 독점자의 지위에서 경쟁자의 지위로 스스로 겸손해 가는 자유경제의 세계적인 추세에서 우리가 종전에 소비자 만족을 위하여 경쟁하는 분야에까지 국가가 독점자로 나서서 '선의의 공무원'들이 좌지우지 결정하는 밑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는 사회주의 논리를 주장하는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의의 공무원'들은 책상에 앉아서 예산에 두들겨 맞추는 작업에 익숙하다. 개개 시민의 주장을 불필요한 불평으로 보는 자세는 어느 사회주의 시스템에서나 똑같다.

현재 야간가산률 적용시간대는 평일 18시(토요일 13시)에서 익일 09시까지로 되어 있다. 개정전 야간가산률 적용시간대는 근로기준법상 8시간(토요일 4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8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외 근무에 대해서 진료비를 30%에서 50%까지 가산하여 지급하여 왔으나, 이번의 고시는 진료비 가산시간대를 20시(토요일 15시)부터 익일 06시까지로 1일 2시간 단축하였다.

의료기관은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 각종 보조인력을 취업시키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시간외 수당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지급된다. 그런데 요양기관에 대한 야간가산율 근무를 근로기준법에 정한 1일 8시간 초과가 아닌 10시간 초과로 정하는 것은 그동안 근로기준법이 정한 8시간 근로와 합리적으로 조화시킨 것을 허무는 것이며 근로기준법 정신과 모순이 되는 것이다.

의사들이 의료서비스에 정신과 육체로서 노력하는 행위도 하루 8시간 정도로 정해야 타당하지만, 사용자 입장의 의사들은 2시간 희생한다고 치더라도, 요양기관이 고용하는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기타 근로자들에게는 8시간을 초과하는 시간부분에 대하여 50% 가산급여를 지급하고, 요양급여비용은 8시간을 초과한 2시간에 대하여 종전의 가산금(30% 내지 50%)을 삭감한 것은 합리성을 아주 잃은 것이지만 이것은 '선의의 공무원'이 믿는 전체국가이익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연하고 정상적인 이치대로 지금까지 보험수가 계산방법은 진찰한 어느 환자에 대하여나 동일한 액수의 진찰료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번 고시에서는 75명의 환자까지는 진찰료와 처방전료를 합산한 금액 전액을 수가로 지급하나, 75인을 초과하여 100인까지는 진찰료의 10%를 차감하고, 100인을 초과하여 150인까지는 진찰료와 처방전료를 합산한 금액의 25% 차감하도록 되어 있으며, 진찰환자가 150인을 초과하는 경우는 진찰료와 처방전료를 합산한 금액의 50%까지 차감한다는 것이다.

76명째의 진찰의 질과 처방전의 질이 75명째 보다 10% 그 질이 낮거나 150명째의 진찰과 처방전 내용이 151명째 보다 질이 50% 낮다고 하는 판단을 하고서 본건 고시를 하였다면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다.

의사의 진찰시간과 질은 의료인에 따라 상이할 것이다. 의료기관의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의사가 의료기관 사무체계화와 보조인력의 효율적인 조직화로 진찰시간을 줄일 수도 있고, 진찰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임상경험이 많고 유능한 의사는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개업을 한 임상경험이 없는 의사보다 진찰시간이 짧으면서도 그 진찰의 질과 처방구성이 질병치료에 월등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진료과 간에는 진찰의 방법과 절차가 상이하기 때문에 진찰시간이나 처방전 발행시간이 상이할 수 있다.

따라서 유능한 의사일수록 차등수가제의 영향으로 부당하게 수가를 삭감당하게 되어있다. 우리나라 환자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유능한 의사를 찾아가게 되어있으며, 대기시간에 불구하고 이를 감내하면서 유능한 의사의 진찰과 처방전을 받으려 함에 따라 환자수가 많게되는 데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수가체감을 하는 것은 치료의 단순수량화 노르마화 사고방식이다.

의사들도 다른 많은 직종의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좀더 질이 높게 좀더 많은 환자에게 좀더 효과있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의 경쟁을 하므로써 좀더 많은 보수를 받는 직업인들다. 이것이 우리 시민들에게 좀더 좋은, 좀더 넉넉한 의료혜택을 받게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이러한 제도가 바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다.

만약에 1일 75명을 초과하는 76명째 이후 환자에게 똑같이 정성을 들여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센티브(물론 인센티브에 관계없거나 또 무료로 의료인술을 베푸는 의사도 칭찬받아야 하고 또 그런 분들이 있지만 이는 사회제도가 아닌 개인차원의 자원봉사 내지 자선노력임)를 삭감하기 시작할 때 우리나라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잘못되어 갈지는 자명하다.

게으름이 포상받고 열심한 노력이 푸대접받는 이른바 '형평의 사회'가 어떤 빈곤과 어떤 부패로 이어졌는지는 동서고금을 통한 실례를 열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헌법 제11조의 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사람의 소득의 똑같은 결과를 의미하거나 그런 방향으로 제도를 구축한다는 것이 아니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노력의 결과에 대하여 그 실적으로 평가를 받는 기회의 평등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년간을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의료행위를 하며 자기의 요양기관을 효율화한 의사의 1일 76번재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있고, 5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공부 덜하고 레크레이션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며 자기 요양기관효율화에 관심이 적은 의사의 1일 75번째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있다고 상정(想定)해 보자.

보험요양급여비용이 왜 획일적으로 76번째가 적어야 하나. 이는 우리헌법 제11조에도 어긋난다. 국민건강보험의 적용대상자인 시민들이 자기도 모른채 76번째 환자가 되어 75번째 순번표를 가진 바로 먼저 환자보다 무엇 때문에 싼 치료비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는가. 싼 치료비의 의료서비스와 비싼 치료비의 의료서비스는 같을 수가 없다. 이 역시 자기도 모르게 불평등의 대우를 받는 것이 된다.

어느 의사가 더 공부하고 그 요양기관의 조직과 운영을 더 효율화하며 더 많은 비율의 좋은 간호사 등 보조인원을 채용하여 혼신의 노력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보험환자들은 76번째나 101번째를 무릅쓰고 또 대기실의 지루함을 참고서도 76번째 환자, 101번째 환자가 되기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의사가 10%나 25% 저가의 보수를 받는 것도 부당하지만 환자들이 부당하게 상대적으로 저가의 대가를 받는 의사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도 지극히 부당하며 자기의 건강과 생명이 걸린 환자들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선의의 공무원'들이 저지르는 사회주의 병폐의 단적인 예들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62조 제4항, 제64조는 소득, 재산, 생활수준, 직업, 경제활동 참가율에 따라 지역가입자의 부과표준소득을 산정하도록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소득, 재산' 이외에 '생활수준, 직업, 경제활동 참가율'까지 전부 포괄하는 것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로서는 '명확성'을 결여하고 있다.

또 법 제31조 제2항은 재정운영위원회에 대하여 보험료조정반영권(보험료를 고치고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서 입법위임의 '명확성'과 '구체성'을 잃어버렸다.

시행령 제16조가 스스로 지역가입자 보험료에 관한 기준을 정하지 않고 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 '백지일임'하고 있다.

결국 지역가입자에게는 법률에서 정한 '보험료율'이 존재하지 아니하며 보건복지부장관이 임명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들이 정하는대로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관 제47조 내지 51조, 별표2 내지 별표7은 그'합리성'과 '공정성'마저 갖추지 않고 관료체제직원(공단직원) 특유의'편의주의' 계산표에 불과하다.

법률이 '명확성'을 결한채 대통령에 위임하고 대통령령은 전부 재단법인인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게 지역보험요율 결정을 맡긴 것이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서만 제한할 수 있고 법률에서 구체적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만 대통령령에서 정할 수 있다는 헌법 제37조 제2항 제75조를 위반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안 제4조 내지 제10조에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 하여금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의 기능을 대신케 한다고 하여 이 헌법위반의 점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조의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나 제32조의 재정운영위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특별법안 제5조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담당공무원인 보건복지부장관을 필두로 그가 임명 또는 위촉하는 노동조합, 사용자단체, 시민소비자단체, 농어업인단체, 도시자영자단체, 의료계, 약업계 각 대표들과 기타 관련공무원으로 구성되도록 하고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 농어민과 도시자영자, 소비자와 의사들의 대표라는 사람을 장관이 알아서 임명해놓고 중요쟁점을 합의하라는 것은, 1920년대부터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 노동조합, 기업체, 중소상인들을 묶어놓고 그 대표들의 의견을 모은 정부지시에 따르게 하면 각계 각층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변하던 Corporatism(Corporativism, 보통 조합주의라 번역하고 있음)에서 연원한다.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제도가 있고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지키는 법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은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집단주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자유롭고 융통성 있게 서로 연락하고 의사소통하는 정보화의 네트워크시대에, 시대착오적으로 피라밋 정점에 위원회를 올려놓고 Topdown방식으로 내려먹이려는 것은 결국 빈곤을 향하여 진보하는 '개혁(改革)'인 것이다. Coporatism을 공식화 법제화하면 이는 전체주의가 된다.
 
위 특별법안 제17조의 병상신,증설금지, 제한, 승인, 제18조의 특수의료장비지정등록과 중앙특수의료장비설치위원회, 지방특수의료장비설치위원회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의료사회주의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일으키게 되어 있는 국민세금낭비, 의료서비스 수혜자의 속임수,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게으름과 속임수를 막는다는 이유로 지금보다 더 많은 규정, 더 많은 위원회, 더 많은 예산소비를 정당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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