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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0 20:40 (토)
시론 의료와 상품

시론 의료와 상품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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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주 의료와 사회 포럼 정책위원회 위원장·안용항 부위원장

이글은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 권리'라는 일부 시민단체의 의료개혁 '명제'를 반박할 목적으로 '의료와 사회 포럼' 정책위원회가 계간 <시대정신>에 투고, 이번 겨울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본지는 <시대정신>과 원저자의 사전 양해를 얻어 내용을 일부 편집해 소개한다<편집자 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등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의료가 상품이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의료개혁의 주된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민중의료연합이라는 단체에서도 "의료와 건강은 상품이 아니라…"라고 말한다. 이 뿐만 아니라 일부 사회주의적 성향의 의료보건학자들과 시민사회단체 사람들도 그동안 "환자-의사관계에서 돈을 위한 동기를 없애야 한다"고 말해 왔다. 민주노동당의 무상의료 정책은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는 주장을 집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주장과 관련하여 최근 건강세상네트워크가 미디어다음과 공동기획으로 전개하고 있는 '의료소비자 권리 찾기 운동'은 여러모로 생각해 볼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여기서도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 권리이다'라는 인의협 등의 주장이 주된 이슈가 되고 있다.


'의료 소비자권리 찾기 3편'을 보면 인의협 우석균 정책위원이 "병원이 입원보증금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또 환자들은 당연하게 내는 이유는 의료를 '돈 주고 사는 상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의료서비스를 의료소비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부족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병원들이 고액수술환자들을 대상으로 고액의 '입원보증금'을 요구한다든가, 의료보험상품을 구매하는데 있어서, 특히 중질환인 경우 환자의 본인부담이 너무 커서 가계가 파산지경에 이른다든가 하는 문제는 분명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다.


국민은 바로 이 의료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의료가 너무 '상품화'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상품을 파는 병원들을 고액의 입원보증금부터 요구하는 '수전노'로 생각한다. 미디어다음의 '의료소비자 권리 찾기 운동' 사이트에는 의사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와 분노로 가득하다.


소비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올바른 '시장'을 만들고 공급자의 건전한 '상품'을 만들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미디어다음-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기획' '의료 소비자권리 찾기 운동'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병원 측의 일방적인 입원보증금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치료비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병원 측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빙자한 입원보증금 요구는 소비자 측에서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이다. 확실히 단언 하건데 소비자를 무시하고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한국의료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병원들의 운영형태는 분명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을 기획하고 있는 건강세상네트워크나,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인의협 등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의료를 상품으로 보지 않는 것만이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일까? 아픈 환자에게 고액의 입원보증금부터 내놓으라는 병원의 요구를 단순히 비도덕성의 문제로만 종결지을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비도덕성을 부추기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아닌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의문에 대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두 번째 문제의 경우 고액수술환자들은 보험 상품을 구매하는데 있어서 '본인부담금이 너무 크다'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의료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진료비할인제도'라고 비꼰다) 때문에 생기는 입원보증금 강요 현상을 '의료의 상품화'나 병원의 비도덕성 문제로만 결론짓는 것은 나뭇잎만 보고 뿌리를 보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다. 아무튼 이 문제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주제를 벗어나므로 여기서는 일단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이 글에서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것은 첫 번째 문제이다. 인의협 우석균 정책위원이나 위에 언급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도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거의 절대적 규범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주장이 과거에도 있어 왔고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러한 나라들의 의료체계가 '정부 실패'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절대적 규범'으로 정할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고에서는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검토해 보고, 과연 "의료를 상품으로 보지 않는 것만이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의협 우석균 정책위원은 거의 100% 보험 상품으로만 거래되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 의료를 돈 주고 사는 상품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의 의식'을 문제 삼고 있다. 우리의 의료 상황에서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말을 우리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는지도 의심스럽지만 받아들인다고 해도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검증이 필요하다. 아무튼 이 말이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올바르다고 가정한다면 의료는 사고 팔수가 없고 의료서비스를 주고받는데 있어서 이익(이윤)이 발생하면 안 된다. 사고 팔수 없는 의료라면 누가 의료를 공급해야 할까? 무료로 공급을 해주어야 하므로 개인이 자선사업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당연히 국가 공동체가 공급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즉, '무상의료'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의료보험과 의료보호 그리고 보조적인 형태의 민간보험들이 있다. 주된 부분은 국민이 강제 가입되어 의료보험료를 납부하여 운영되는 의료보험공단의 의료보험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무상의료는 의료보호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절대 빈곤층을 위한 것으로 과거에는 세 종류로 구분하였다가 지금은 두 종류 즉 1종과 2종으로 구분되어 1종은 완전 무료, 2종은 본인부담금만 병의원에서 1500원, 약국에서 500원을 부담하고 있다. 본인부담이외의 진료비는 국가에서 지급한다.


인의협 우석균 정책위원의 주장은 의료보험도 의료보호 1종처럼 환자의 부담 없이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무상의료로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즉, 의료소비자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이므로 '상품으로서의 의료가 아닌 무료로 공급받는 무상의료'이어야 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국가 공동체의 '무상의료'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험되었고, 현재 영국 등 사회주의적 의료를 추진하고 있는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의료시설의 국유화와 함께 의료인들 역시 국가에 고용되어 있다. 의료는 일반 시장 혹은 보험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지 않고, 의료의 생산자(의사), 공급자(정부) 그리고 소비자(국민) 사이에 '부가가치'의 교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의료재화의 공급과 소비, 가격은 시장기능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법에 의한 기구에 의해 정해진다.


이러한 무상의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무상의료 그 자체를 생각해 보고, 무상의료를 시행했었거나 시행중인 나라들의 의료실태를 이야기 한 후 우리나라 현 상황에서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순서로 적어볼까 한다.


무상의료를 지지하는 시각은 첫째, 사회계급을 유발시키는 생산수단을 국유화시켜 계급을 없앤다는 입장이 있고 둘째, 건강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입장이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경제적 부족이 없는 무계급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의료에 관한 구체적인 이론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1918년 제 5차 All-Russian Congress of Soviets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건정책 주요원칙 다섯 가지를 세웠다. 국가의 책임, 무료, 중앙 정부에 의한 통제, 노동자의 치료 우선, 예방을 중요시하는 것 등이다(Cassileth, Vlassov, and Chapman 1995 Light 1986).


그 당시의 소련 의사들은 벼락치기 교육을 받고 의사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무상의료에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좋은 치료를 받기위해 의료 종사자들에게 선물이나 뇌물을 주었다. 이것은 무상의료체계 내의 비정상적 형태의 제2 경제활동으로 발전되었다.


필드(Mark Field 1993:167)는 이러한 뇌물체계를 '소련의료의 상업주의화'라고 했다. 그리고 환자-의사관계에 '사적 이익을 배제하기 위해 도입된 무상의료체계'에서 환자와 의사간의 비정상적 뒷거래를 통한 의료비 부담이 다시 발생한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또한 러시아와 구소련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의 국민 평균수명 감소가 있었는데 이는 20세기말 세계보건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이다. 이는 현대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로 산업국가중 그 어느 곳도 평화 시에 국민 건강이 이토록 심각하게 나빠진 곳은 없었다.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는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의 건강을 증진시켜야 하는 사회 평등 이데올로기를 신봉했다. 그러나 그 목표했던 것과는 반대로 건강악화 현상이 일어났고, 국민의 수명은 그 후 삼십년 동안 점차 감소했다. 이것이 무계급사회를 추구한 국가의 무상의료 결과인 것이다.


확대된 의미의 건강 평등권을 주장하는 경우는 건강을 기본권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견해이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건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좋은 '슬로건'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여기에는 많은 문제가 숨어 있다.


건강의 평등권을 말할 때 먼저 건강의 한계를 규정해야 한다. 무엇을 '건강'이라고 하는지의 정의(definition)는 여러 견해가 있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WHO의 건강의 정의를 도입하여 이야기해 보자.


초기 WHO 헌장에서의 건강 개념은 "다만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ㆍ정신적 및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Health is a complete state of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이었다. 이후에 조금씩 변경이 있어 왔다.


이 정의에 따르면 건강을 이루기 위해서는 질병이 있는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환경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기초로 하여 건강의 평등권을 해석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다.


첫째로, 질병치료를 위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환경개선은 막대한 의료 재원을 필요로 한다. 이 막대한 의료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연관된 결과는 영국의 사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둘째로, 소수 사람들의 질병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 환경의 개선은 또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권리를 누리려면 의무를 행해야 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 의무를 행하는 것이 정부일 수도 있고 개인일 수도 있다. 한사람의 건강을 위한 정부의 의무행위가 그 사람을 강제하게 될 때 그런 강제가 올바른지의 문제도 발생한다. 반대로 정부가 그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강제하지 않았을 때 정부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의 문제도 발생한다.


그러한 예를 들면 술이나 흡연, 비정상적 음식 습취, 전혀 운동을 하지 않는 등의 문제로 인해서 질병이 발생했을 때에 정부가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 환자를 강제로 통제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또 그냥 내버려둠으로 질병이 발생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또 다른 문제로 '건강은 평등할 수가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무상의료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에서 나오는 많은 연구 결과를 살펴보아도 여전히 건강의 불평등은 존재한다고 영국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은 말하고 있다. 결국 건강의 절대 평등은 아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건강 평등권'의 확대는 무한정한 재원마련이 불가능하여 이를 현실 무상의료에 적용을 하면 질병의 치료범위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결국은 무상의료의 적용강요는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의 제한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제한시키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정부의 건강에 대한 과잉간섭도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현재 무상의료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 노동당의 최근 선거 공약은 '대기환자 10만명 없애기' 혹은 '18개월 이상 대기환자 없애기' 등으로 표현되었다. 입원 대기 환자가 116만명(97년 5월)이고 편도선과 탈장 수술은 22주 대기, 슬관절 수술은 40주를 기다린다고 한다.


이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다. 최근 언론을 통하여 보도된 이광요 싱가포르 전 수상의 가족이 차례를 기다릴 수 없어서 영국을 떠나 싱가포르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경우가 그러한 예이다. 또 영국 사람들은 몸이 아파도 그냥 참는 편이 낫다고 푸념을 한다. 이것이 영국 무상의료의 현실이다.


또 영국과 비슷한 의료체계를 가진 캐나다와 이와 다른 의료체계를 가진 미국을 SARS(사스) 발생을 통해서 비교해보면 캐나다는 257명이 발생하고 22명 사망, 미국은 63명 발생하고 사망은 없었다(Cockerham, 2003).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야 될 필요가 있다.


건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 사람보다 건강하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국가가 건강을 책임진다고 할 경우 노력하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보다 의료재원의 사용이 적어지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상대적 불평등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인의협 정책위원의 "의료서비스를 의료소비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한 말을 무상의료에 적용하면 건강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사이의 불평등이 발생함을 간과한 이야기인 것이다.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가 있으면 당연히 행해야할 의무가 생겨남을 생각하면 "건강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건강까지 지켜줄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정의로운가?"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건강은 개인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체 의료를 전적으로 '개인만의 책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치료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생명위협 책임이 자신이든 사회이든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직관주의적 입장에서 대부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질병의 치료시 국가의 책임부분과 개인의 책임부분을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W. Sadurski의 Basic need(기본적 필요)에 대한 말을 생각해볼 만하다. 그는 "기본적 필요란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삶의 기본 요건과 결부되어 있으며 이런 기본적 필요의 충족을 돕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의무라는 견해는 사회정의에 대한 지배적 신념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라고 했다.


생명과 관련된 기본적 필요는 국가가 공급하는 것이 적절할는지 모른다. 공급하는 방법은 국가가 구매하여 공급하는 방법과 국가가 직접 공급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책임을 확대시킬 경우 부도덕한 의료재화 사용자가 생겨날 것이고 개인의 책임부분이 약화됨에 따라 국가 의존적인 사람들이 생겨나서 국가라는 공동체의 발전에 해를 끼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친 개인책임 역시 국가 공동체의 발전에 좋지 않음은 누구나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 필요를 '어디 까지 할 것인가'는 좀 더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진다고 과장하거나(건강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질 수가 없음) 국가가 책임질 수도 없는 부분까지 통제를 하는 지금의 의료제도는 국민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가정할 경우 의료소비자의 권리가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권리 강화에 대한 상대적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비교 대상은 의료를 상품화시켰을 경우의 소비자 권리와 비교 가능할 것이다.


의료를 상품화 시키지 않을 경우는 물론 무상의료를 의미한다. 국가 공동체에 의한 무상의료 경우의 의료소비자의 권리란 국가에 대한 권리를 말할 것이다. 이러한 권리에 대한 의무는 국가가 지게 되고 국가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세금으로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충족시키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의료재원의 한정과 의료필요의 무한정이라는 문제 때문에 무상의료의 범위를 제한시키는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재원의 평등한 사용이라는 문제로 인하여 의료소비자의 선택권의 제한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의료의 공급자로서 국가는 독점을 하게 되므로 경쟁상대가 없어져 관료화의 필연적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의료를 상품화시켰을 경우 다수의 의료공급자로 인하여 독점이 사라져 소비자를 향해서 구애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또 소비자는 다양한 공급자중 자신이 원하는 공급자를 선택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의료상품의 선택 폭이 넓어짐으로 해서 다양한 신기술과 약품의 사용을 통한 질병치료의 범위가 한정되지 않게 되므로 소비자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게 된다.


이상을 고려하여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소비자의 권리 증진은 무상의료 형태의 '국가독점 공급' 보다는 상품으로 거래되는 '시장'에서 더 높을 수 있다.


구 소비에트연합의 경우 정부 권력의 통제 속에서 오히려 소비자의 권리가 약화되고 자신이 원하는 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 되었다. 그 결과가 부패로 연결되었음은 위에 언급되어 있다.


영국의 경우도 질병 치료의 시기가 늦어지는 등으로 인하여 의료소비자의 욕구가 충족되기는커녕 욕구를 제한받는 상황이다. 또한 국가통제체제의 공통적 문제점인 낙후된 시설문제도 나타난다. 의료기관들의 낙후로 인한 환자들의 불만이 많다.


정부라는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여 소비자의 권리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거대 정부권력 아래서는 소비자의 '선택할 권리'는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국 의료에서 소비자의 권리 찾기는 정부 관료체제에서 보다는 의료시장에서 찾는 것이 쉽다. 거대관료체제보다는 병원에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하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시장 실패'는 정부가 개입하면 되지만 '정부 실패'는 누가 막아 주고 누가 책임을 지는가?


따라서 의료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의협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는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은 어느 특별한 상황에서나 부분적으로만 성립이 가능한 말이다. 즉 '절대적'인 원칙이나 기준으로 선언하기에는 문제점이 너무나 많다. 모든 가치, 이념, 주관적 목표 등을 배제하고 순전히 의료재화를 소비해야 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의료는 갖고 싶은 '상품'이기도 하고 또 없어서는 안 될 '권리'이기도 하다.


의료재화를 스스로 구매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의료상품(혹은 보험상품)을 선호할 것이고, 보험료 부담조차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그것을 보다 크게 '권리'로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가 성립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둘 다에 대한 소비자 지향은 정의롭고 올바른 것이며, 따라서 선악의 양자택일 식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이다.


이 선택의 문제를 놓고 의료를 상품으로 인식하는 소비자를 문제 삼는 것은 온당한 것이라 볼 수 없다. 각 개인의 '선호'와 '권리'를 어느 쪽도 희생시키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시키기 위한 분배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참다운 소비자권리 찾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상의료'의 그 매력적인 이상과는 달리 그 결과는 결코 매력적이지 않는 것 같다.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여러 나라의 '정부 실패'를 보기 때문이다.


개인의 실패는 고치기 쉽지만 정부의 실패는 고치기가 힘들다. 역대 정권들에서 발생한 IMF사태와 카드남발 등과 같은 '정부 실패'시 그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분담하게 된다. 무상의료가 시행된다면 또 다른 거대화된 '정부 통제구조' 속에서 국민들의 자유가 침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건강과 생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라는 일반적인 생각만으로 '건강권'에 대한 무한정한 확대 해석을 한다든지 아니면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 권리"라는 주장은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낸다. 정부의 과다한 간섭으로 인한 자유의 제한, 지나친 의료재원 마련 문제, 개인적 건강 책임을 공동체에 책임 지움으로 인한 '무임승차' 문제, 국가 의존적 문화가 만들어져서 국가가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기 전에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율적인 노력이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유방임적 상태로 건강과 생명이 위험한 사람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자신의 힘으로 질병을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인 경우는 공동체가 보살펴 주어야 할 것이나 소비자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3%의 의료보호환자를 제외한 97%의 국민이 자유방임적 시장이 아닌, 모든 국민의 의료형평성을 위해 고안된 건강보험이라는, '보험시장'에서 보험상품을 구매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의료를 상품으로 인식하는 국민의 의식을 문제 삼으며 이미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밝혀진 무상의료만을 주장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보험시장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국가 공동체의 지원을 강화해야한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의료 상품화'의 역기능을 걱정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올바른 의료 소비자의 입장일 것이다.


또한 인의협 우석균 정책위원이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우리나라의 민간의료기관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 옳은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의협이 무상의료를 주장한다고 해서 무상의료기관이 아닌 민간의료기관에 무상의료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정당한 사익을 목표로 하는 민간의료기관에 무상의료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부를 향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해야 마땅하다. 물론 소비자의 입장을 외면한 비도덕적이고 불공정한 병원의 행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나 이를 무상의료와 연계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상의료를 정부가 시행하지 않는 현실에서 민간의료기관이 '의료를 상품으로 판매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행위 그 자체가 비논리적인 것이다.


인의협은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절대적 규범'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주장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오류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심판하고 단죄하고 비난하는 행동을 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의견주장을 넘어선 '단죄나 심판하려는 행위'는 또 다른 독선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수많은 독재자들이 그런 과오의 과정을 지나온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의협이 인도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면 '함부로 판단한 도덕성 문제'로 다른 사람들이 비인도주의적 피해를 받는다는 것을 신중히 생각하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또 자신들의 주장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판단하여 선동적인 언어보다 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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