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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난 맛없는 커피를 먹으면 신경질이 난다"

시론 "난 맛없는 커피를 먹으면 신경질이 난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2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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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훈(강원 주문진 한정훈내과의원)

'경포호수는 달이 일곱이다'라는 말이 생각나고, 호수옆을 지나 커피 마시러 가는 나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늘상 그러하듯 파도가 닿을 듯 말 듯한 길옆에 주차하려는데 낯이 익은 누군가가 담배연기를 바다로 던진다. 그다. 그런데 오늘은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왜지? 그의 커피를 처음 맛본 것은 2001년 봄 무렵이었다. 서울이나 원주에서 모임이 있어 대관령을 넘을 때면, 난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서 오대산 진고개를 주로 이용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고갯길 옆의 현수막에 "가져가는 커피 이천원"이란 글이 보이기 시작했었다.

그러다 그곳을 처음 찾은 것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너무도 졸린 어느 밤으로 기억한다. 피곤한 몸을 소파에 기대며 커피를 기다리는데, 탁자위에 글이 적힌 메모지가 보였다. '난 맛없는 커피를 먹으면 신경질이 난다'는 제목의 집주인이 모 잡지에 기고한 글이었다.

오대산 계곡의 물소리는 적막을 부수고 나의 귀를 씻어냈고, 처음 본 그 맛은 커피에 대한 나의 기존 관념을 확 부수어 버렸다. 커피의 맛과 향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아. 그 향기! 애틋한 연인과의 첫 키스처럼 새큼상큼하고, 농익은 프랜치키스의 깊이와 강렬함이 담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분 들뜬 충격이란 이런 것이리라. 그렇게 작년 봄 이후 오대산을 지날 때면 '신경질나지 않는 커피'를 감상하곤 했었다. 그렇게 2001년이 지나갔다.

그 후 그의 맛을 대신할 커피는 찾지 못했다. 이따금 스타벅스에 들러 '에스프레소 더블'을 들이키면, 강렬함 비슷한 것을 느껴 볼 수 있다. 허나, 상큼함과 깊은 맛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 오대산의 커피하우스가 지난 늦가을 경포로 이전해 온 것이다.

그래서 난 미소짓는다. 담배를 다 피운 주인장이 묻는다. 연하게? 아니면, 진하게? 어떻게 만들어 드릴까요? 무심코, "진하게 타주세요"라며 앉는데 갑자기 마음이 아파온다. 그가 한번도 이렇게 묻는 것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필경 뭘 모르는 누구인가 "너무 커피가 진하다"고 불평을 했을 것이다.

그것에 마음이 상했을 것이리라. 그래서 깊고 어두운 표정이 묻어 있었구나. 가장 좋은 것을 주었어도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때문에 겪는 그 이유있는 아픔을 나도 익히 잘 알고있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한 주인의 노력은, 자마이카, 콜럼비아, 아프리카 등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루어낸 것이다.

커피에 관해서 그는 분명 달인이다. 3대 방송국에 출연한 커피박사이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커피학을 강의하는 프로페셔널인 것이다. 커피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 분인데. 지나던 객의 무심코 던진 가벼운 한마디로 자존심과 그 여린 마음을 심히 상한 것이리라. 난 후회했다.

주인의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한 최선의 정답은 (당신이 최고니까) 맛있는 커피주세요"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활짝 웃는 그의 미소를 덤으로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커피와 함께 한 오늘도 난 행복하다. 대학시절 춘천 바라 커피샵의 커피를 맛보면서 바다를 상상하던 시절은 멀리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다를 냄새맡으며 최고의 커피를 맛볼 수 있음이 난 너무도 즐겁다. 이 커피 향기가 아주아주 오랫동안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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