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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바그다드 의료봉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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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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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민(대한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장)

한경민 대한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장이라크전쟁이 종식되고 난민을 돕기 위한 진료활동이 지난 4월 21일부터 3달여간에 걸쳐 바그다드시 주변 알사드르시티에서 있었다.

의료지원팀은 경기도의사회와 글로벌케어가 주축이 되었고, 경기도와 중앙일보가 주관,후원하여 '이라크 긴급의료봉사단'이 결성된 후 릴레이식으로 펼쳐졌다.필자가 속한 제 5차팀은 7월 11일부터 26일까지 보름간의 일정으로 참여했다.

바그다드공항이 폐쇄되어 있기 때문에 직항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방콕과 요르단의 수도 암만까지는 항공을, 암만으로부터는 육로로 이동하여 바그다드에 도착하였다. 약 1,000km나 되는 기나긴 사막의 길을 이동시에는 6인승 승합차를 이용하였다.

아직까지 치안활동이 제대로 안 되는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낮시간을 이용하여야 '알리바바'라고 하는 무장 갱단의 습격을 최소한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암만에서 새벽 1시쯤 출발하였다. 이라크와의 접경지역에 도착하니 새벽 5시경, 그곳에서 입국수속을 하는데 약 2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라크 국경을 넘어갈 때는 날이 이미 환해진 후였다. 바그다드까지의 왕복 6차선 고속도로는 우리 나라의 현대건설에서도 일정구간 참여하여 건설하였다고 한다. 참 잘 만들어지고 잘 정돈이 되어 있었으나 군데군데 전쟁의 흔적이 보였다. 교량이 파손되었거나 도로의 일부가 폭격으로 손상을 받아 우회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길가에는 불타버린 자동차, 탱크 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현지표정을 4무(無)로 요약하면 무기력, 무질서, 무정부, 무감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한낮의 기온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인 무더위는 진료봉사차 찾아온 우리 의료팀을 주눅들도록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최악의 조건 속에서 바그다드시 외곽의 알 사드르시의 주민들은 인류애를 바탕으로 찾아온 한국의료팀을 따뜻이 맞이하여 주었다. 후세인 대통령 시절 차별과 멸시를 받아 전체 시인구의 약 1/4인 50여만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이 지역은 모든 NGO들이 기피하는 위험스런 빈민지역으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역에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우리 진료팀에 대하여 현지 주민, 종교지도자들 조차도 도대체 여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표정에선 호기심과 내심 감탄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주일간 진료를 하면서 현지의 사정을 점차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질병의 유형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알사드르시 지역은 물이 귀하다. 물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며 더구나 나오는 물도 석회석층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고 하여 석회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이 물을 먹는 시민의 상당수가 신장이나 요로결석으로 고통을 받고 있음이 의심 되었다.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진료한 환자의 10%이상이 결석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고, 심지어 10여세된 어린이에서조차도 초음파검사로 요로결석이 발견되었다. 요로 및 신장결석에 대한 정확한 역학 조사가 이루어지면 이에 따른 장단기 대비책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선적으로 교육을 통하여 큰 돈 들이지 않고 유병률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여 물을 마시기 전에 여러 방법의 부유물 침전법을 이용한다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정수기를 보급하여 준다든가 하는 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쉽게 눈에 띄는 질환으로 후진국형의 호흡기질환 즉 결핵환자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미열이 있으면서 기침, 각혈 등 전형적인 결핵증상을 호소하는 수많은 환자가 있었다.

지역에 결핵관리소가 있다고 하나 시설이나 약품이 절대 부족하여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한다. 결핵관리사업은 엑스선 촬영장비 설치만으로도 크게 비용이 들지 않고 주민들에게 쉽게 접근하여 진료하여 줌으로써 바로 효과를 볼 만한 사업이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를 연상케 하는 각종 기생충질환이나 높은 영아사망률 등은 우리정부에서 시행하였던 과거 기생충박멸협회의 활동이나 모자보건사업 등의 노하우를 전수하여 주면 좋은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현안이 되는 중요한 문제이며, 앞서 언급한 요로결석이나 결핵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되는 질환으로 새로운 이라크 정부 보건담당자의 관심과 꾸준한 노력이 요구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경기도(글로벌케어 이라크 지원의료팀)와 알사다르시의 지역의회대표 사이에 체결된 양해각서에 따른 후속 조치로 사다르시 지역에 보건소를 설치하여 지역주민의 교육을 통한 자발적인 환경개선에 초점을 맞추면 빠른 시일 안에 앞서 언급한 몇가지의 긴급한 질환에 대한 조절이 가능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짧은 진료기간이었음에도 초음파 소견상 유방암, 방광암, 갑상선암 등이 의심되는 환자를 진료할 수 있었으며, 현재 지역주민의 높은 흡연율, 무기력, 영양결핍 등과 연관된 면역력 저하는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나타나는 각종 스트레스 증후군과 겹쳐 앞으로 이 나라에 다양한 종류의 높은 암발병률율로 이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대비책 역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된다고 본다. 이번 진료봉사 기간을 통하여 세계 최초로 설형문자 기록을 가진 나라, 4대 고대 문명발생지 가운데 하나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자리잡은 나라, 석유 매장량 1천억배럴 이상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 다음가는 세계 제 2위의 산유국, 최남단 바스라항부터 최북단의 모슬까지 온 나라가 역사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 바벨탑의 유적이 있고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비롯하여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역사적인 사실이 배경인 나라, 그 옛날 바빌론제국의 찬란했던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영광을 지녔던 자존심이 강한 이라크국민성을 보았다.

이들이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자존심을 접은 채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려워하지만 곁에서 인간적으로 깊이 접하고 들어가 동정심 대신 인류애로 우리의 사랑을 나누어 주었을 때 이들은 우리의 작은 도움에도 매우 고마워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현재는 전쟁의 상처가 깊이 드리워진 황망하고 척박한 땅이지만 이 땅이 조만간 믿음의 땅, 기회의 땅이 되어 이라크국민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전쟁의 상처가 하루 빨리 회복되고 그 옛날의 찬란했던 바빌론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여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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