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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1:36 (금)
얼음판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와의 싸움
얼음판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와의 싸움
  • 신범수 기자 shinbs@kma.org
  • 승인 2005.03.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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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체전 쇼트트랙 은메달리스트 김종구 원장

  2월 20일 전국동계체전 쇼트트랙 1000미터 결승. 이 경기는 전 국가대표 김동성 선수가 과연 전성기의 기량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에 관심이 모아진 경기였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이들의 관심은 엉뚱한 곳으로 집중됐다. 각종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익숙해진 사진 한 장은 과연 이날의 주인공이 누구였는가를 재미있게 보여줬다.
  열심히 코너를 돌고 있는 김동성 선수를 바짝 뒤쫓고 있는 40대의 한 남자! 이 남자가 전주에서 내과의원을 하고 있는 평범한 의사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언론은 그에게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비췄고, 올해 동계체전의 MVP는 단연 그였다. 갑작스런 유명세 후, 최근 주변으로부터 강한 은퇴압력(?)을 받고 있다는 그를 만나보았다.

▲ 전국동계체전 쇼트트랙 1,000m 결승에서 김동성 선수에 이어 2위로 질주하고 있는 김종구 원장.

- 이번 동계체전의 결과와 소감은?

500m에서 동메달, 1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사진을 보면 내가 김동성 선수를 바짝 뒤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바퀴 뒤진건데 사진이 그렇게 나왔다. 김 선수와는 작년에도 준결승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만 결승진출엔 실패했다. 무엇보다 국내 최고의 선수와 그것도 결승전에서 붙어봤다는 것이 매우 기쁘다.

연습할 때 고등학생들하고 같이 하면 스타트 종소리와 함께 '다다다다' 소리를 내면서 5m 쯤 앞으로 튀어나간다. 그런데 김 선수는 아무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더라.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였다. 그런 선수하고 같은 경기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본 자체만으로도 영광이고 기쁘다.

- 쇼트트랙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직업상 하루종일 앉아 있다보니 70㎏ 정도하던 체중이 80㎏까지 나갔다.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가족들과 실내스케이트장에 갔는데 그 곳에서 전북대 최하영 교수님 내외분의 스케이트를 타시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멋지게 코너를 돌아가는 모습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한번 그렇게 멋지게 타고 싶은 마음에 쇼트트랙을 시작했다. 그게 1998년 일이다. 처음엔 3개월정도 타면 되려니 생각했는데 잘 안되더라.그래서 6개월타고, 1년타고,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됐다.그러던 중 나를 지도하고 있던 전북쇼트트랙대표 최종환 코치의 격려로 2001년 전국체전에 나가게 됐는데, 한명이 넘어져서 꼴찌만 면했다. 그 후부터는 더 강한 도전의식이 생겼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 쇼트트랙을 하고나서 무엇이 달라졌나?

운동을 열심히 하니 체중도 원래대로 돌아갔고 체력도 자신이 붙었다. 좋아하던 술도 줄었다.쇼트트랙은 하체근육을 좋게하고 등배, 복근, 둔부 근육 강화에 좋다. 요통이 없어졌고, 지구력이 강해졌다. 쇼트트랙은 100미터 달리기와 같다. 체력적 한계를 많이 느낀다. 얼음에서 뛴다는 게 쉽지 않다. 속도와 자세를 유지하면서 마무리까지 돌려면 순발력, 균형 능력, 끝까지 힘을 안배하는 능력, 앞 선수를 따라잡는 근성과 지구력 등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게다가 스트레스 해소를 운동으로 하니 일거양득이다.아이들도 여러모로 절제하고 노력하는 본보기를 보여주니까 아빠 말을 잘 듣는다. 가족도 화목해지고 짜증도 줄고 부부생활도 원만해지고 좋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저녁에 운동하고 돌아와서 아이들과 목욕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때 운동을 참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 선수가 되겠다고 했을때 주변의 반응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취미로 할 것인가 조금 더 욕심을 부릴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됐다.처음에 체전에 나간다고 했을 때는 주변에서 긍정적인 말이 많았다.추억으로 한번 정도는 괜찮다는 반응이었다.그게 한두 해 거듭되다 보니 반응이 달라졌다. 특히 아들 성적이 떨어졌을 때는 불만이 극에 달했다.아이 엄마가 "아이들한테 너무 소홀한 것 아니냐, 왜 쓸데없는데 매달리느냐"고 하더라.게다가 큰아들 담임선생님이 내 친구인데 웬만큼 하라고 충고했다.그땐 심적인 고통이 심했다.

그래서 작년에는 좀 쉬어볼까도 했다. 어차피 메달을 딸 수 있을 것도 아닌데... 하지만 코치님이나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 그리고 지금까지 노력한 게 있는데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다시 체전에 나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니가 의사면 됐지 무슨 체전까지 나가냐.  별스러운 사람이지..."라고 하시더라.

- 체전준비로 운동을 얼마나 했나?

저녁 8시 부터 1~2시간씩 매일 스케이트 타고, 지상 운동을 한시간 정도 한다.경기가 다가오면 새벽에 한시간 추가한다. 병원은 경기 참가하는 당일만 비웠다.물론 마음에 계속 걸려서 경기장에서 휴대폰으로 진료하기도 했다.이번에 체전을 앞두고는 예선 선발전에서 3명 중 한명으로 선발됐는데, 생각보다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스케이트를 바꿔보기도 하고 노력을 많이 했다.

- 이번 결승전 상황을 설명하면?

500m 결승에서 내가 4번 라인이었는데 위치가 불리해서 불안했다. 바로 옆에 김동성 선수가 3번 라인에 있어서 심적 부담이 컸다. 스타트하고 김동성 선수가 바로 치고 나가고 1번 라인, 2번 라인 선수가 서로 경합을 하는 동안 안쪽으로 파고들 기회가 생겨서 치고 나가는데 1번 선수가 손으로 밀더라. 그때 넘어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다른 선수가 실격 판정을 받아 동메달을 땄다.

실력이 아닌 운이었던 것 같았다. 어쨌든 메달을 따고 나니 다음날 1000m 시합에는 부담이 덜했다. 김동성 선수 말고는 다 이길것 같더라. 스타트와 동시에 바로 치고 나가며 2위로 나섰다. 큰 무리없이 끝까지 돌아 은메달을 땄다. 물론 김동성 선수와는 한바퀴차이였지만...(김동성 선수 1분34초18, 김종구 선수 1분48초44)

- 체전 후 유명세를 치르게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유명해지니 좋은 점이 많다.일단 환자들이 많이 알아본다. 방송, 신문에 많이 나오고 김동성 선수 다음으로 화제가 되고 보니 인터뷰도 많이 했다.환자들이 놀라면서 자신도 운동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 의사로서 본보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 극구 운동을 강조하지 않아도 중요성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게 되어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 의사로서 스케이트를 타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처음 입문할 때는 정말 괴로웠다.약 3~6개월은 자세연습과 근육발달연습에 보낸다.그 이후 어느 정도 자세를 유지하면서 탈 수 있게 되니 마약(?)과 같이 헤어나올 수가 없더라.그만큼 스케이트를 사랑하게 된다.스케이트를 타는 동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의사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끔 너무 버겁고 무거울 때 현실에서 벗어나 스케이트를 타며 턱까지 차오르는 숨과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이겨내면서 또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내가 가진 한계점을 만나고 매일 그 한계에 도전하는 거다.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한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의사로서 환자에 대해 가지게 되는 두려움, 공포, 한계에 직면한다는 느낌에 대한 자세도 스케이트를 타면서 많이 바뀐 것 같다.'이만큼 하면 되겠지, 여기까지가 한계이겠지'하는 자세가 아닌, 하루의 성장이 쌓여서 일년이 되고 또 실력이 돼 듯,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생활하고 있다.그런 자세로 계속 살고 싶다.

- 은퇴압력을 받고 있다는데?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다칠까봐 걱정들도 많이 한다. 게다가 이번에 메달이라는 결과를 달성하다보니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고 압력이 많다. 하지만 운동이라는게 그만둘 수 있는게 아니다. 처음 가졌던 초심처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스케이트의 매력에 빠져있다 보면 취미차원으로 멀리두고 싶지 않게 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속적으로 출전도 할 거다.아름다운 스케이트의 완성, 아직도 처음에 봤던 그 매력적인 모습 만큼 타지 못한다.예술이라고 느꼈던 그 경지의 스케이팅을 할 수 있는 날이 내 목표다.죽을 때까지 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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